(13) 사랑의 시작은 욕망

불씨같은 것

by soominC

사랑은 욕망의 완성이 아니다. 그러나 욕망 없이 시작되지도 않는다


뇌 과학은 사랑을 화학 물질의 불꽃놀이로 기꺼이 정의한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빠졌다’는 생물학적 선언을 내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악기의 떨림이 소리를 만든다는 사실이 그 소리가 왜 누군가의 영혼을 울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듯, 이 선언은 현상의 언어로 경험의 언어를 대신하려는 시도다. 참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욕망에는 목적지가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욕망은 사그라들거나 다른 대상으로 이동한다. 결핍의 언어이고, 채워지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욕망은 마치 도착할수록 출발점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언제나 조금 외롭다. 사랑이 욕망과 다른 것은, 사랑은 상대를 얻은 이후에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이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혀 몰랐던 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낯섦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다. 상대가 좋아한다던 노래가 길에서 흘러나올 때 괜히 걸음이 느려지는 일이고, 맛있는 걸 먹을때 가장 먼저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르는 일이다. 아프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발이 먼저 움직이는 일, 오늘 하루 어땠냐는 말 한마디에 하루치 긴장이 풀려버리는 일. 그가 웃을 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두었다가, 다음에 또 써먹는 일. 사랑은 그런 작고 반복적인 행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습관이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의지였는지 감정이었는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된 성실한 습관.


욕망이 타자를 내 안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이라면, 사랑은 그 중력을 인식하면서도 상대의 궤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긴장이다. 나를 채우려는 충동과, 상대를 온전히 두려는 의지가 한 몸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사랑이 피곤한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해소가 아니라 유지를 요구하는 감정이니까. 욕망이 불꽃이라면 사랑은 불씨다. 덜 화려하지만, 꺼뜨리지 않으려면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비논리적이라기보다, 다른 논리 위에 서 있다. 욕망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 아무 이유 없이 기다리고, 손해를 감수하고, 떠난 뒤에도 잘되기를 바라는 것들이 사랑의 문법이다. 그 문법은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는 것이다. 욕망이 불을 지핀다면, 사랑은 그 불이 꺼진 자리에서도 온기를 기억하는 일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