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먼저 살고, 나중에 생각하기

사유는 경험의 그림자

by soominC

우리는 상처를 피하려는 마음을 ‘신중함’이라 부른다.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 결과를 예측한 뒤에 시작하는 것. 이 모든 태도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관계 앞에서 가장 정교한 형태의 회피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모른 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관계의 본질은 결과에 있지 않다. 헤어짐이 실패를 증명하지 않고, 오래 지속됨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는 짧고 강렬하게 타올라 사람을 바꾸어 놓고, 어떤 관계는 수십 년을 지속하며 두 사람을 서서히 지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관계 앞에서 멈추는가. 관계가 우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꾼다는 것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 돌이킬 수 없음을 두려워한다. 실패를 허락한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변해버릴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삶을 향한 가장 적극적인 태도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걷는 것,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지는 것. 이 용기는 무모함과 다르다. 무모함은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돌진이고, 용기는 불확실함을 껴안은 채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사유는 경험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실체를 따라갈 수 있을 뿐, 먼저 도착할 수 없다. 머릿속에서 수천 번 시뮬레이션한 포옹은 실제 온기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진다. 우리가 상상으로 미리 겪은 상처는 진짜 상처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의 그림자일 뿐이고, 우리는 그 그림자를 피하려다 실체를 통째로 잃는다. 사유는 안전하지만 차갑고, 경험은 위험하지만 뜨겁다.


본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생생함에 있다. 비틀거리는 순간, 말이 엇갈리는 순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 그것들이 관계의 골조를 이룬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완성해야 할 무언가로 여기지만, 관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는 계속 미완인 채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먼저 살고,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은 충동이 아니라 철학이다. 경험 이전에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론보다 먼저 신뢰하겠다는 것. 상처는 피할 수 없겠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안전하게 늙어가는 것은 더 큰 실패다. 나는 그 실패를 가장 두려워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