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취할 시간이다

시계의 대답

by soominC

시계의 통제 안에서 우리는 하루를 산다. 시계는 우리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어 행동하게 한다. 1분은 60초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누구에게나 같은 양이 주어진다고 시계는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기다림 속의 1분과 포옹 속의 1분이 같은 길이일 리 없다. 시계는 시간의 양을 잴 수 있을지 모르나, 시간의 질은 세지 못한다.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시간은 오직 숫자로만 존재한다.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잣대 아래, 향기롭던 오후의 햇살은 건조한 기호로 치환된다. 감정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분침이 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은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강박 뿐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 쓰려 애쓰지만, 역설적으로 아낀 시간만큼 삶의 밀도는 희박해진다. 숫자에 매몰된 일상에는 '살아있음'의 감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는 '정각'과 '약속'이라는 이름의 질서 속에 스스로 결박한다. 시계는 우리에게 질서를 선사하는 대가로 우리의 본성을 빼앗아갔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인간이 계절의 변화와 해의 길이에 몸을 맡겼다면, 현대의 인간은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하며 이 기계 장치에 영혼의 리듬을 맞춘다. 이 질서 정연한 통제 속에서 우리는 점점 효율적인 기계가 되어가고, 뜨거운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시계의 노예로 전락하기 직전, 시계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를 옥죄던 금속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는 외침이다. 시계는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취하라, 시간의 고통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술이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원하는 것에." 보들레르가 간파했듯, 시계는 우리를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몰입해야 할지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시계가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새벽에 한 문장에 몰두하다 고개를 들면 동이 터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침묵 속에서 한 시간이 한순간처럼 지나간다.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잊는다. 그 순간, 시간은 눈금이 아니라 밀도가 된다. 촘촘히 쪼개진 숫자 대신, 살아 있다는 감각만이 시간을 채운다.


결국 시계의 통제를 벗어나는 방법은 바늘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에 흠뻑 취해버리는 것이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는 순간, 시계는 비로소 감시자이기를 멈추고 해방을 선고하는 자가 된다. 즉 '취기'야말로 시계의 압박을 무력화하는 최고의 반항이다. 시간의 주인은 시계가 아니다. 그것은 취해 본 사람만이 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