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형태였고, 나는 욕망이다
그가 도구였다고 말하면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나 역시 도구였다는 것을 안다. 욕망의 도구. 사랑이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빌린 몸.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사랑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끝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이것이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내가 흘리는 눈물의 성분을 분석한다면, 거기엔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 상실된 ‘관계의 구조’에 대한 회한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쌓아 올렸던 매일의 안부, 익숙한 농담, 그리고 '연인'이라는 견고한 틀이 무너진 것에 나는 절망한다. 나는 그를 잃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던 그 소중한 구조를 잃었기에 우는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을 사랑했고, 그는 그 사랑이 머무를 수 있는 형태였다. 그의 눈빛이 아니라 그 눈빛을 바라보는 내가 좋았고,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를 기다리는 내 심장이 좋았다.
사랑은 하나의 체제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기호와 언어, 그리고 일정한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안정적인 일상. 그 구조 안에서 나는 비로소 정의되었고,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받았다. 이제 그 체제가 붕괴했으니 나는 갈 곳 없게 되었다. 슬픔의 원인은 부재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폐허가 된 나의 세계 그 자체에 있다.
그를 잃고 나는 오래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우는지 물었다. 그의 빈자리?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내가 슬펐다. 욕망의 온도가 내려간 것이 슬펐다. 그가 없는 것보다 내가 더 이상 그 강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펐다.
나는 그를 지우려 하지 않았다. 지우는 것은 사랑을 지우는 것이었고, 사랑을 지우는 것은 내가 그것을 느낀 기억까지 지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 구조를 지키고 싶었다. 그가 없어도 작동하는 사랑의 형식을.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그를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이 슬픔인지 집착인지 나는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둘 다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사랑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욕망이 꺼지지 않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