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환락극혜애정다

찬란한 소멸의 기억

by soominC

환락극혜애정다 (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면 슬픈 정이 많아진다‘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이 가장 붉은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저묾을 온 힘을 다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 또한 그러했다. 헤어지기 직전, 이별을 예감하던 그 즈음의 우리는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뜨거웠다.


가장 뜨거웠던 밤을 기억한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손이 손을 놓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잠깐 울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안다 그것은 이미 끝의 예감이었다는 사실을.


환락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많아진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순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쁨이 다 소진되면 슬픔이 온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슬픔은 기쁨이 끝난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가장 충만한 순간에 이미 그 안에 있었다. 환락과 애정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서로 공존한다.


그래서 그 밤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이미 슬픔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은 감정을 증류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밤의 온도만 남고 맥락은 흐려지는데, 온도만 남은 기억은 더 아프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놓아버릴 수도 없다.


기억은 그래서 잔인하다. 가장 환했던 장면들을 가장 선명하게 남겨두면서, 그것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새긴다. 빛과 상실을 한 자리에 묶어둔다. 그 기억을 꺼낼 때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쏟아진다.


그럼에도 그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 슬프더라도. 그것이 내가 살았던 증거이기 때문에. 그 빛 안에 내가 있었고, 그 온도를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새겨진 것이다. 기억은 소유의 다른 형태다. 돌아갈 수 없어도, 가졌던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으려 한다. 끝이 있었다 해도 그 빛 안에 내가 있었다는 것. 가장 뜨거운 순간이 이미 끝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해도, 나는 그 걸음 위에 있었다는 것. 타고 남은 것도 사랑이다. 소멸을 품은 채로 환했던 것도, 사랑이었다.


환락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초라한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숭고하기까지 한 애도의 시간이다. 기쁨이 짧고 강렬했다면, 슬픔은 길고 은은하게 내 남은 생에 스며들 것이다. 나는 이 슬픔의 양이 내가 그를 사랑했던 환락의 총량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몸서리친다.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뜨거운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두려운 날도 있고, 이상하게 평온한 날도 있다. 절정을 살았다는 것. 그 순간이 이미 끝을 향하고 있었다 해도, 나는 그 순간에 존재했다는 것. 가장 환한 것이 가장 빠르게 소멸한다면 나는 한번, 정말로 환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