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사랑을 덮어버리지 않도록
점점 우리의 사랑이 훼손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제 나는 당신을 떠나려고 합니다. 사랑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건네던 말들이 이제는 조심스러워지고, 당신의 표정을 먼저 살피게 되는 나를 발견합니다. 괜찮은 척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예전만큼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사랑을 둘러싼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그 미묘한 변화가 나를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습니다.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서 나누던 대화, 아무 말 없이 공원을 걷던 저녁길, 차 안에서 괜히 손을 잡고 웃던 순간들이 너무 선명해서 쉽게 등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말하기보다는, 사랑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오래 머물렀습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참으로 다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웃던 당신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우리가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와 눈빛들은 내 생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향기로운 추억들이 자꾸만 눈물에 젖어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슬픔이 추억을 집어삼키는 걸 지켜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입니다.
떠나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함께 웃던 기억보다 지쳐 있던 표정이 더 선명해질까 봐 겁이 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한정된 시간 안에 있기에 길어지는 이별의 시간이 그 시간을 덮어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서로를 기억할 때, 따뜻했던 추억보다 서늘했던 순간이 먼저 떠오르게 될까 봐 마음이 아픕니다. 나는 그 순서가 바뀌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어쩌면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붙잡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이해합니다. 더 다치기 전에 멈추는 것, 더 미워지기 전에 돌아서는 것, 그것 또한 사랑의 방식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상처로 기억되지 않도록, 그 기억들이 끝까지 따뜻하게 남아 있도록, 나는 여기서 멈추려 합니다.
당신을 놓아드리는 것은 우리의 추억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향기로웠던 것들이 끝내 향기로 남기를 바랍니다. 이별이 슬픔으로 가득하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만큼은 슬픔보다 먼저이기를 바랍니다. 비바람에 꽃잎이 속절없이 떨어지듯 우리의 계절이 짧아지기 전에, 더 강한 비바람이 치기 전에 가장 고왔던 모습 그대로 당신을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