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정함의 그림자

거절할 수 없는 선물

by soominC

그의 다정함은 선물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마다 묻는 안부, 내 말끝까지 기억하는 세심함, 내가 지칠 때 먼저 내미는 손. 그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순수한 호의로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그 선물 앞에서 감사했고, 감동했고, 결국 빚을 지게 되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번 말한 꽃 이름, 내가 무심코 흥얼거린 노래, 내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그가 그것을 기억하고 돌려줄 때마다 나는 감동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해지니까.


그가 건네는 말들은 전부 부드러웠다. 밥은 먹었냐는 말, 오늘 힘들지 않았냐는 말, 예쁘다는 말. 그 말들이 쌓이면 나는 따뜻해졌고, 따뜻해질수록 그에게서 멀어지는 일이 두려워졌다. 따뜻함에 젖은 몸은 추위를 더 크게 느끼는 법이니까.


그러나 교양과 유머로 포장된 그의 배려는 나를 찬란하게 구속했다. 나는 그가 주는 사랑의 확신에 중독되어, 나의 주체성을 조금씩 깎아 그에게 바쳤다. 다정한 그에게 화를 내거나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의 친절은 나의 목소리를 지우는 가장 부드러운 도구였다. 다정함은 그렇게 나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나를 그의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그 다정함에 길들여진, 자발적인 노예였다는 사실을. 다정함이란 거절할 수 없는 방식의 마취다. 무결한 선의(善意) 앞에서 반항은 배은망덕이 되고, 나의 주권은 서서히 그의 손길 아래로 양도된다. 다정함은 사실 그의 친절함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그의 다정함, 그 친절한 통제 아래에서 비로소 복종의 의미를 배운다. 나는 그의 다정함에 포획된, 가장 불행하고도 행복한 노예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