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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Mar 08. 2024

5. 정말 친구로 충분해?

끊어낼 수 없는 깊고 친밀한 관계에의 갈구


친구만 있으면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친구들 다 나이들면 안본다 그랬지만, 그렇게 꼰대같은 말을 하던 우리엄마도 내 친구들을 보고선 친구들이 참 착하다. 그래 어쩌면 너희 세대는 결혼 안하고 같이 놀면서 나이들어도 되겠다 라고 말하곤 했다. 때는 비로소 4B movemen가 첨 나온 시절. 비섹스, 비연애, 비결혼, 비출산을 통해 가부장제와 남자와의 고리를 확실히 끊자는 운동이 태동한 시절이었다. 한국의 가부장제에 질릴만큼 질린 한국여성들이 자연스레 택하는 조류였고, 나도 저 길을 대충 따라가고 있었다. 사실 어렵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연애 해보셨나요? 연애하고 싶은 남자를 찾기가 척박하기 이를데 없다. 당신이 아무리 남미새여도, 연애 하려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참 많이 해야한다. 성애적 관계를 끊으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연히 양질의 인간관계인 친구들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나저나 요즘 4b movement 외국에서 핫한거 아시나요? 트위터에서 보니까 해외 미디어에서 기사도 나오고, 일반인들도 코멘트도 많이 달더라. 간지나긴 해 확실히. 




위키피디아에도 나온다 이거에요




사람은 오롯한 개별적인 욕망을 가진 개별적 주체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특정 환경의 특성을 받아들여 그것이 발현되기도 한다. 어떤 개별적 욕망은 어떤 환경에서는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혹은 아주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와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예전의 모든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아주 새로운 상황 속에 나 자신을 위치시켰을 때야 비로소 어떤 욕망은 한국사회의 것이었는지,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것이었는지, 또 어떤 것은 나의 개인적 욕망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또 동시에 새로 생기기 시작한 욕망들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나의 개인적 욕망들이 캐나다 사회와 반응하며 강해지고 있는지, 어떤 것들은 아무리 캐나다라해도 나를 자극시키지 않고 잠잠한지, 그런걸 지켜봤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전의 내 피부가 충분히 두껍지 않아서 내 외부의 경계들로 내 피부를 대신삼고는 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내 욕망이 뭔지 모르겠어서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갖다가 내 것으로 삼았던 시절들을. 그것이 나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들이었건, 혹은 가장 멋진 ism이였건 던걸 모두 떠나서, 어찌되었건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을 조금 멀리에 앉아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캐나다에 와서 나는 가졌는지도 몰랐던 특권을 잃어보았다. 더 이상 모국어가 통하지 않았고, 언어가 능숙하지 못하니 제 아무리 스스로 똑똑하다 생각해도 그걸 자랑할 수도 없었다. 어느 정도 괜찮은 직장이던 전 직장의 이름들도, 학교 이름들도 여기 사람들은 몰랐고, 무엇보다 지척에 든든한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없었다.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를 주문할려 해도 how are you?를 먼저 말해야 하는데 그게 입에 붙지 않아 무례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일쑤였고, 한국에서는 예의바름으로 통하던 미소들은 이상한 억지 표정으로 여겨졌다. 캐나다에서 가장 처음으로 조금 안정감을 느꼈을 때는, 일을 하기 시작하며 월급이 통장에 꽂히기 시작할 때였는데 돈을 쓰기만 하던 사회가 나에게 돈을 주기 시작할 때 나는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받는구나, 일이라는 것은 정말 한 '자리'를 받는 일이로구나 라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 항상 내내 가지고 있던 그 직업이, 그 월급이 그동안 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약해져봤다. 한국에 있을 때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싶었던 마음들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너무 추운 눈오는 겨울 밤 누군가가 날 데리러 와줬으면 하는 마음, 취업이 너무 안 될 때 누군가 나를 추천해줬으면 하는 마음, 돈이 너무 없을 때 누가 나에게 음식을 사줬으면 하는 마음, 이런 저런 기대고 싶은 마음들, 누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너무 가진 것이 없고 불안하면 별거아닌 가진 것을 더 자랑하고 싶어지고, 괜히 어깨를 부풀리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이 나를 재수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더 고립시키는 것도 경험했다. 데이트 하면서 한번도 상대의 직업을 본 적이 없었는데, 돈을 잘 벌고 안정적인것 같으면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이건 내가 아는 내가 아니었는데, 또 이것도 나였다. 스스로에게서 처음보는 모습을 참 많이도 봤고 나도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까지 멋진 척하던 나도 그냥 한 인간이구나. 나도 그냥 힘들때 옆에 있어줄 딱 한 사람만 필요하구나. 





캐나다의 추위가 없었다면 온기의 소중함을 알았을까요




내가 캐나다로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나 자신이 단 하나의 특권도 없는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이 없었다면, 스스로가 정말 약하고 또 동시에 무엇이든지 해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한 사람을 사랑해서, 평생 쉽게 끊어지지 않을 지독하도록 끈질긴 인연이라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경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약할 때도 내 곁에 있어줄 사람, 누군가가 가장 약할 때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이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어쩌면 반대로, 나도 몰랐던, 어떤 일이 있어도 끊어지지 않을 관계를 향한 그 욕망이 언제나 내 속에 깊게 존재해왔고 그것이 나를 캐나다로 오게했던 것은 아닐까? 




친밀한 관계가 왜 필요한건지 몰랐던 나로서는, 이런저런 길을 이상하게 많이 돌아온 셈이다. 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어딘가로 계속 가고 있는 것이 인생 아닌가. 애정이든 무엇이든 한 바구니에 넣지말라고 하지만, 또 리스크를 지고 한 사람에게 투자해야만 가볼수 있는 지평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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