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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an 25. 2024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의사가 건넨 첫마디

<아름, 다운 증후군>을 읽고

몇 달 전,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의 1,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결과를 받았다.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가 정상보다 많이 발현될 경우에 나타나는 질병이다. 1866년에 이 병을 발견한 영국인 의사 존 랭던 다운(down)의 이름을 따서 'Down syndrome'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장 흔한 염색체 질환으로, 약 700-80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 신체 기형 또는 기능 저하, 인지를 포함한 전반적 발달 지연 등이 나타날 수 있으나 사람마다 양상이 다양하다.


나는 언어재활사이고,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의 언어치료를 맡은 경험이 있다. 또한 지인 중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있다. 그래서 다운증후군은 적어도 내겐 낯선 이름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가 설령 다운증후군이라 한들 내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별도의 선별검사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진짜 둘째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면, 미리 잘 키울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더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자."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운증후군은 선천적 심장 기형 등 동반 문제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기에,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본 검사보다 더 정확하다고 알려진 추가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이미 나는 고위험 산모라 의사가 다운증후군을 확진할 수 있는 침습적 검사(양수검사)는 권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NIPT(Non-Invasive Prenatal Test)라는 혈액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과는 '저위험군'이었다. 


지극히 드문 확률이긴 하지만, NIPT에서 '저위험군' 결과가 나왔더라도 실제로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이전까지 장애인과 그 가족의 '조력자'로 살던 내가, '당사자'의 심정에 깊숙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 몇 달 후, 2024년의 첫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어쩌면 운명적인 끌림이었다.




한없이 말간 아이의 일러스트가 포근한 분홍빛 책, <아름, 다운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부제를 갖고 있다.


장애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엄마, 동생, 의사가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행복 이야기



이 책의 저자는 셋이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키우는 '엄마', 다운증후군 언니를 둔 '동생', 산전진단을 받은 엄마들과 함께 하는 산부인과 '의사'. 마음 같아서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뜯으며 각주를 달고픈 마음이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첫 챕터를 여는 최은경 작가는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아동간호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 중에 첫 아이를 낳았다. 출산한 그날 새벽, 간호사로부터 "아이가 다운증후군의 소견을 보여 염색체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검사 결과를 듣는 날, 미국인 신생아 전문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첫마디를 건넸다.


"조슈아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요! (Congratulations on birth of Joshua!)"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당시 이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첫마디가 얼마나 듣기 힘든 말이었는지를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만난 다운증후군 부모 모임의 한 어머니는 출산 후 아이의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때 "키우실 거예요?" 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사실 외국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이 첫 장애 진단을 받은 부모를 대하는 매뉴얼>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수정을 거듭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단계이다.


내가 현장에서 만난 장애아동의 양육자들도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많았다. 전문가로서 마음이 무겁고, 늘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이 마음은 더 커졌다.






내가 둘째가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휘감았던 감정에 선뜻 이름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충격'이나 '좌절' 이런 것이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태아는 어떤 의사표명을 할 수 없으므로, 최종 선택은 오롯이 여성에게 있다. 낳거나, 그렇지 않거나. 선택지는 둘 뿐이지만, 선택의 경중은 다르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낳으면 축하는커녕 설익은 동정과 무지한 말들에 부딪힌다. 하물며 임신 전에 그 사실을 알고도 낳기를 결정했다면 더 그러하다. '장애인은 일단 불행을 깔고 태어날 것'이라는 가정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의 생존권과 여성의 선택권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 사회는 특별한 필요를 지닌 아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모나 아이의 잘못이 결코 아님에도 말이다.


다운증후군은 현재 산전에 진단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발달장애이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의 출생률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책 속 루스 허버트의 말처럼, 만약 사회가 이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책 속 내용은 마냥 동화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하지도 않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같다. 처음에는 '다운증후군'이라는 개념이 크게 다가오지만, 계속 읽다 보면 주성, 선쁘, 노을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과 그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언어재활사라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면 미처 몰랐을 것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각양각색이며, 하나의 진단명으로 정의할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낮은 코, 낮은 코, 올라간 눈꼬리, 넓은 미간... 언뜻 보면 비슷비슷한 외양이지만 사실은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많이 닮았다는 것도 말이다.



'-다운(-답다)'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들을 보면, 그 뜻이 결과적으로 어근의 긍정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다운', '정다운, '아름다운' 등...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든다. '-다운' 앞에 붙을 수많은 긍정적인 어휘를 떠올려 본다. 내가 만난 이들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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