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얼마 전에 영유아검진을 받으러 가서 간호사 선생님께 "여기는 몇 차 병원이에요?"라고 질문을 했다. 병원과 관련된 책에 잠깐 나왔던 내용이 궁금했던 차에 선생님께 바로 질문을 했던 것이다. 간호사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시면서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만 5세가 된 아이는 "말을 참 잘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궁금한 건 바로 묻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표현도 잘 써먹는다("기대하시라~"이런 말들). 두 돌 무렵에 두 단어를 이어 말하기 시작했던 때와 비교해 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의 말이 트인 시점 전후로 아이의 상호작용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만5세가 된 아이는 "말을 참 잘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두 돌 무렵에 두 단어를 이어 말하기 시작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의 말이 트인 시점 전후로 아이의 상호작용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무조건 행동이 먼저였다. 뭐랄까... 산책을 나가면 일단 돌진하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많으며 외향적이고 승부욕이 강하다. 반면 두려움이나 걱정,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은 다소 낮은 편이다. 한마디로 '불도저' 스타일이다.
말이 트이기 전에는 이러한 기질이 단점이 되었다. (이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아이는 엄마가 주도한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떴고, 내가 말을 유도하면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내가 언어재활사임에도 본의 아니게 욕심을 많이 내려놓고 엄마로서 가장 기본적인 애착과 최소한의 훈육에 집중했었다.
그러다가 24개월이 지나면서 아이의 기질이 장점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말을 걸면 저 사람이 반응을 해주는구나!'를 알게 된 순간, 풍부한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아이에겐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 후로 아이의 언어 발달은 날개를 달았다.
아이는 두려움이나 걱정도 덜한 편이라 주저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엘리베이터에 탄 이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앞서 몇 발 걸어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에 냅다 "아녕하쩨요~"라고 인사를 걸기도 했다(덕분에 내향적인 나는 반강제적으로 이웃들과 안면을 텄다). 어린이집에서는 스피치 시간마다 자기가 나가서 하겠다고 자원했다.
특히 아이는 책이나 영상에서 봤던 내용을 기억해 뒀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래보다 키가 작아 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이를 보고 사람들은 "똑똑하다"라고 칭찬해 주고, 아이는 '나는 말을 잘하는 아이'라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는다.
다만 계속 관찰을 하다 보니 아이가 가진 기질이 의사소통에 미치는 단점도 보인다. 언어병리학에서는 언어를 살펴보는 틀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언어의 요소를 나누는 것이다.
1. 음운: 말소리를 이해하고 발음하는 것과 관련
2. 형태/구문: 언어의 형식, 즉 문법형태소나 문장의 길이 등과 관련
3. 의미: 낱말(어휘)의 이해 및 표현과 관련
4. 화용: 사회적 상황에서 언어의 실제 사용과 관련
아이는 1,2,3번에 강하다. 특히 어휘력은 또래와 비교해서 2세 정도는 높은 편이다. 반면 4번(화용)에서는 아이의 불도저 성격과 낮은 사회적 민감성이 문제가 되는데, 대화를 할 때 자꾸 자신이 먼저 말하려 하고, 주제도 자꾸 바뀐다. 이 부분은 만 5세가 된 지금도 또래보다 좀 약하다.
3돌을 전후로는 "엄마가 언어재활사라 아이가 말이 빠른가 봐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두 돌 전에 아이 말이 늦어 전전긍긍했던 때를 생각하면 실로 상전벽해 같은 변화이다. 실제로 내가 배웠던 언어 촉진법을 아이에게도 적용하려 노력했었고, 도움이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또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약간 결이 다르다. 이전의 나는 언어재활사로 일을 하면서 언어의 '발달', 특히 구어(말)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언어치료실에는 참 다양한 아이들이 온다. 구어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무발화' 상태에 있거나, 이해하는 바의 10%도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 반면에 발달은 느려도 대화하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언어치료실에서는 입을 닫고 있지만 노래나 악기 연주에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각자가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송현 생각>이라는 책을 쓴 작가 송현 씨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그녀는 특수학교 전공과 수업에서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소 수줍고 느릿한 성격이지만 '글'이란 수단으로는 자신있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범위 내에서, 각자가 편하고 잘하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소통하고자 한다. 그게 우리 아이에게는 '말'이고 나나 송현 씨에게는 '글'이며, 누군가에게는 '그림'이나 '음악'일 것이다. 그러한 차이를 발견하고 적합한 소통방식을 찾도록 지원하는 것도 언어재활사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또 내가 만나게 될 이들이 세계와의 소통 방법을 찾고 나름의 기쁨을 느끼길... 이를 통해 그들의 세상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