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가 안 되는 아이도 책육아가 가능할까?
아이를 존중하며 함께 책을 읽는 방법
소위 '육아서' 분야 저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관련 분야에서 오랜 연구나 경험을 쌓은 전문가, 두 번째는 실전 육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끌어낸 양육자. 특히 두 번째는 '엄마표 ○○'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로도 엄마로도 일정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에겐 모두 대단한 이들이다.
사실 난 아이를 낳고 몇 달 동안까지도 '엄마표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불타올랐었다. 특히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책육아'였다. 왜냐하면,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아이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7살 때였던가. 작은방에 들어갔는데 종이박스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엄마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네 책이야."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촌언니가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신세계 창작동화> 전집을 물려준 것이다.
변변찮은 오락거리 없는 시골에서 너무 심심했던 나는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그 책들을 읽었다.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아직도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거듭된 이사로 어디론가 사라진 책들을 그리워하다 헌책방에서 다시 사 모았을 정도로...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에게도 그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오래된 벗들
그러나 이 '책육아 로드맵'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아이는 주도성이 강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했다.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극명하게 갈렸다. 두 돌 전까지 '엄마표'는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이는 엄마 하기 나름'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한 케이스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뿐이었다.
활동적이고 바라는 바가 확실한 아이에겐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노하우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환경 조성: 일단 책은 열심히 사 모았다. 우리 아이는 집중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건 잘 들고 온다는 점을 노렸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전면 책장을 주로 활용하는데, 우리 집은 좁은 편이라 전면 책장을 놓을 벽이 많지 않았다. 대신 선택한 것이 회전 책장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회전 책장만 세 개가 있는데, 아이는 세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정된 책장보다 회전 책장을 훨씬 좋아한다(뭔가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에 잘 맞기도 했다).
책 선택: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찾으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아이는 먹는 건 좋아하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음식이 나오는 그림책은 좋아했다. 그래서 음식 관련 그림책을 찾아보고 구입했고, 도서관에서 빌려 아이의 기호를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구해오면, 열 권 중에 두세 권은 얻어걸렸다. 전집, 단행본을 가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고가의 전집에 눈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아이의 성향과 관심사를 관찰하다 보니, 가격을 떠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어느 정도 분별해내는 신공이 생겼다.
책 상견례(?). 이중에 하나쯤은 취향이 있겠지...
반복 독서: 주도성이 강한 아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엄청나게 반복해서 본다는 점이다. 아이는 내가 고른 책에는 (서운하리만큼) 큰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이 고르고 재미있었다고 느껴진 책은 계속 들고 왔다.
읽어주는 입장에선 솔직히 매우 힘들다. 5번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영혼을 잃고, 10번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내일은 그냥 이 책 숨길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냥 읽어주었다. 향후 10년 정도만 기다리면 아이가 알아서 읽는 날이 오고, 그때는 오히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날이 그리워진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생각하면서...
책육아의 단점: (책값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고) 책 육아의 단점이 있을까? 온 집안을 굴러다니는 책들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가 스스로 정리를 하지 못하는 나이라면 더더욱... 눈에 보이는 빈칸에 꽂아 넣어보기도 했는데, 아이가 찾는 책이 그 자리에 없어서 엄마한테 찾아달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세돌이 지나니 조금씩 아이의 협조를 받는 게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정리는 어른의 몫으로 남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의점,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뇌발달의 적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등의 문구처럼 부모를 현혹하는 문구를 많이 만난다. 나도 처음엔 팔랑팔랑거려 정보를 찾다가, 가격에 호다닥 놀라 접었던 적이 꽤 많았다.
고가의 전집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책값만큼 기대를 걸게 되는 소위 '본전 생각'이 문제이다. 애써 구입한 고가의 전집을 아이가 외면하면 엄청 상심이 된다. 나는 이게 잘 안 되었기 때문에, 좀 비싸다 싶은 전집은 당근마켓이나 개똥이네 등을 통해 중고로 구했다. 그러니 본전 생각을 좀 덜 하게 되었다.
육아는 팔 할이 '부모 마음 다스리기'이다. 책육아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을 받아들이고 선호를 결정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한다.
세돌이 지난 지금, 아이는 책을 엄청 좋아하고 그런 편은 아니다. 워낙 활동적이라 바깥으로 뛰어다니며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아이이다. 그래서 요즘은 바깥 활동을 더 많이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이 거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아이에겐 책 말고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기꺼이 반기며 읽어준다. '엄마표' 부담을 내려놓고 아이의 주도에 따라간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냥 '책을 읽으면 재미있었고 엄마와 함께 해서 즐거웠다'는 기억을 많이 많이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