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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un 01. 2022

'엄마표'가 안 되는 아이도 책육아가 가능할까?

아이를 존중하며 함께 책을 읽는 방법

소위 '육아서' 분야 저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관련 분야에서 오랜 연구나 경험을 쌓은 전문가, 두 번째는 실전 육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끌어낸 양육자. 특히 두 번째는 '엄마표 ○○'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로도 엄마로도 일정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에겐 모두 대단한 이들이다.


사실 난 아이를 낳고 몇 달 동안까지도 '엄마표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불타올랐었다. 특히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책육아'였다. 왜냐하면,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아이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7살 때였던가. 작은방에 들어갔는데 종이박스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엄마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네 책이야."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촌언니가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신세계 창작동화> 전집을 물려준 것이다.


변변찮은 오락거리 없는 시골에서 너무 심심했던 나는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그 책들을 읽었다.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아직도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거듭된 이사로 어디론가 사라진 책들을 그리워하다 헌책방에서 다시 사 모았을 정도로...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아이에게도 그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오래된 벗들


그러나 이 '책육아 로드맵'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아이는 주도성이 강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했다.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극명하게 갈렸다. 두 돌 전까지 '엄마표'는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이는 엄마 하기 나름'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한 케이스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뿐이었다.


활동적이고 바라는 바가 확실한 아이에겐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노하우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환경 조성: 일단 책은 열심히 사 모았다. 우리 아이는 집중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건 잘 들고 온다는 점을 노렸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전면 책장을 주로 활용하는데, 우리 집은 좁은 편이라 전면 책장을 놓을 벽이 많지 않았다. 대신 선택한 것이 회전 책장이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회전 책장만 세 개가 있는데, 아이는 세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정된 책장보다 회전 책장을 훨씬 좋아한다(뭔가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에 잘 맞기도 했다).




책 선택: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찾으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아이는 먹는 건 좋아하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음식이 나오는 그림책은 좋아했다. 그래서 음식 관련 그림책을 찾아보고 구입했고, 도서관에서 빌려 아이의 기호를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구해오면, 열 권 중에 두세 권은 얻어걸렸다. 전집, 단행본을 가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고가의 전집에 눈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아이의 성향과 관심사를 관찰하다 보니, 가격을 떠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어느 정도 분별해내는 신공이 생겼다.


책 상견례(?). 이중에 하나쯤은 취향이 있겠지...


반복 독서: 주도성이 강한 아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엄청나게 반복해서 본다는 점이다. 아이는 내가 고른 책에는 (서운하리만큼) 큰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이 고르고 재미있었다고 느껴진 책은 계속 들고 왔다.


읽어주는 입장에선 솔직히 매우 힘들다. 5번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영혼을 잃고, 10번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내일은 그냥 이 책 숨길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냥 읽어주었다. 향후 10년 정도만 기다리면 아이가 알아서 읽는 날이 오고, 그때는 오히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날이 그리워진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생각하면서...


아이의 간택을 받은 책들


책육아의 단점: (책값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고) 책 육아의 단점이 있을까? 온 집안을 굴러다니는 책들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가 스스로 정리를 하지 못하는 나이라면 더더욱... 눈에 보이는 빈칸에 꽂아 넣어보기도 했는데, 아이가 찾는 책이 그 자리에 없어서 엄마한테 찾아달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세돌이 지나니 조금씩 아이의 협조를 받는 게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정리는 어른의 몫으로 남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의점,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뇌발달의 적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등의 문구처럼 부모를 현혹하는 문구를 많이 만난다. 나도 처음엔 팔랑팔랑거려 정보를 찾다가, 가격에 호다닥 놀라 접었던 적이 꽤 많았다.


고가의 전집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책값만큼 기대를 걸게 되는 소위 '본전 생각'이 문제이다. 애써 구입한 고가의 전집을 아이가 외면하면 엄청 상심이 된다. 나는 이게 잘 안 되었기 때문에, 좀 비싸다 싶은 전집은 당근마켓이나 개똥이네 등을 통해 중고로 구했다. 그러니 본전 생각을 좀 덜 하게 되었다.


육아는 팔 할이 '부모 마음 다스리기'이다. 책육아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을 받아들이고 선호를 결정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한다.




세돌이 지난 지금, 아이는 책을 엄청 좋아하고 그런 편은 아니다. 워낙 활동적이라 바깥으로 뛰어다니며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아이이다. 그래서 요즘은 바깥 활동을 더 많이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이 거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아이에겐 책 말고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기꺼이 반기며 읽어준다. '엄마표' 부담을 내려놓고 아이의 주도에 따라간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냥 '책을 읽으면 재미있었고 엄마와 함께 해서 즐거웠다'는 기억을 많이 많이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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