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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Nov 20. 2024

통념을 부수는 호쾌한 솜씨, 여전한 일본 거장의 걸작

오마이뉴스 게재, <도련님> 서평

[김성호의 독서만세 165]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제일의 미덕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공공장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극장에서 통화를 하거나 전화기 불빛을 보이는 이를 보게 되면 세상에 무식하고 무례한 이를 다 보았다고 성을 내게 된다. 교통을 방해하는 집회에도, 뛰노는 아이들에게도 전보다 매서운 시선이 날아드는 요즘이다. 세상은 그토록 빠르게 변화한다.


많은 이들이 이런 변화를 당연하게 여긴다. 예의바르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품위가 있고 논리를 갖춘 사람이 더 나은 대접을 받기 마련이라고, 그렇게들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오늘날 여전한 의미를 가진 고전 한 편을 여기서 소개하려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사상 제일의 문호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인물이다. 아시아 전체로 대상을 넓힌다 해도 크게 빠지지 않는 문장가이며 사상가이고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가운데 특별히 빛나는 하나를 꼽자면 적잖은 이가 이 소설 <도련님>을 들 것이다. 어째서일까.

 

▲도련님책 표지 ⓒ 인디북관련사진보기

 

호쾌하게 깨뜨려지는 내 안의 통념들


<도련님>은 주눅들지 않고 거침없이 치받는 소세키 특유의 기세가 잘 느껴지는 소설이다. '권선징악은 촌스럽다'던 당대 문학풍조에 정면으로 반해 권선징악적 구조를 가져갔고, '시골사람은 도시사람보다 선하다'는 인식에 반해 도쿄의 선함과 시골인 시코쿠의 협잡꾼들을 대비시켰다. 배운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보다 낫다는 통념에 반하여서도 세련되고 교양있는 이들과 거침없고 사고뭉치인 인물을 대비시켜 독자의 선입견을 와장창 깨뜨려간다.

 

논리정연하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이란 법은 없다. 돈과 권력, 논리로써 사람 마음을 살 수 있다면 고리대금업자나 순경, 대학교수가 사람들의 호감을 가장 많이 사야만 한다. 중학교 교감 정도의 논법에 어떻데 내 마음이 움직인단 말인가.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에 움직이는 존재다. 논리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은 지당합니다만, 나는 승급이 싫기 때문에 아무튼 거절합니다. 생각해 본들 마찬가지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문을 나섰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한 줄기 걸려 있었다.
 -164p


소설은 기질이 남다른 주인공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천성이 사고뭉치였던 그는 온갖 말썽을 부려 부모며 형에게까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그런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이가 있으니 집안의 나이든 하녀 기요다. 기요는 주인공을 늘 도련님이라 부르며 따른다.


기요의 편애는 놀라울 정도인데, 공부도 잘 하고 얌전한 형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은 반드시 성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주인공은 스스로도 제게 그런 기질이 있는 건지 의심할 때가 없지 않지만 기요는 늘 도련님은 좋은 기질을 타고 났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한다.


마침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자 기요는 친척집으로, 주인공은 시골마을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 때도 기요는 언제고 주인공이 집을 마련하면 저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한다.


좌충우돌 초짜 교사의 시골 학교 적응기


소설은 그 무대를 주인공의 일터가 된 시코쿠로 옮겨간다. 그는 시코쿠 공립 중학교의 수학교사 자리를 얻는데 이곳에서의 적응기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그의 거침없는 품성은 교장부터 여러 선생들, 학생과 하숙집 주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부닥쳐 잡음을 일으킨다.


숙직날 무단으로 학교를 이탈해 온천으로 간다거나, 그 길에서 교장과 다른 선생을 만나 그 사실을 지적받아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 다른 교사들에게 별명을 붙이고는 다른 이들에게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 태도가 웃음을 자아낸다. 통상의 나이 어린 신입사원이 좀처럼 보일 수 없는 태도며 사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독자들은 소세키의 유쾌하고 거침없는 이야기에 쏙 빠져들고 만다.


학교엔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너구리 같은 교장선생, 빨강셔츠로 불리는 교감, 끝물이라 별명지은 영어교사와 미술교사 알랑쇠, 사나이다운 수학주임 멧돼지 등이다. 소세키는 주인공이 벌이는 일련의 소동극과 적응기 뒤로 마을의 아리따운 여성 마돈나를 등장시켜 선생들을 갈라놓고 풍자하길 그치지 않는다.


한 권 소설로 선사하는 역전의 미학


재미난 것은 교사로서 더 적절해 보이는 빨강셔츠와 알랑쇠 같은 이들 대신 부적격이 분명한 주인공과 그 친구 멧돼지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마침내 그 손을 들어준다는 점이다.


거침없고 고집세며 제멋대로인 데다 안 풀리면 직접 주먹으로 해결하는 이들의 모습을 독자가 마침내 응원하게 되는 과정이 상당한 재미를 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 끼칠 것 같은 이들의 비겁과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여기저기 폐를 끼치던 이들의 진솔함이 마침내 드러날 때의 통쾌함은 이 소설이 가진 커다란 멋이라 할 만하다.


편애에도 애정이 있고, 고집 아래 신념이 있으며, 좌충우돌하는 부적응 뒤엔 강한 자아와 타협하지 않는 사내다움이 있다는 걸 어느새 독자는 이해하게 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설 속 미덕 중 상당수가 소세키가 살던 시대에도 부인되고 무시되던 것들이란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의 반골기질과 그럼에도 마침내 설득해내는 역량이 대단하다 하겠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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