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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Dec 27. 2023

멋진 여성에 건배를!

단상

기자생활 동안 해낸 일이 꽤나 많은데, 그 대부분은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나 오늘 이런 일 있었다 하는 누구에게 그거 사실 내 덕에 생긴 거야 하고픈 생각에 근질근질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계면쩍어지는 탓으로, 나는 좀처럼 그런 얘기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만하거나 오만한 이들 앞에서는 곧잘 당당해지면서도,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할 때는 제법 깽판도 칠 줄 알면서도, 꼭 이럴 때만 겸양지덕을 갖춘 군자인양 구는 게 스스로도 못마땅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선 영 딴판이다. 윤지선 그 자칭 페미가 끝내 소송에서 패퇴한 모양인데, 왜 내게 축전이 전해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일찌감치 이것이 페미와 반페미의 대결도, 남과 여의 구도도,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저 상식과 비상식의 판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가장 알만한 이들조차 내게 부라보 정의구현을 외치는 건지.


 이건 차라리 사회가 마땅히 해야 했던, 그러나 무섭다고 더럽다고 밀어만 두었던 책임의 방기라고 불러야 한다. 논문이라 부를 수 없는 잡설을 두고서도 몇달이나 설왕설래 중계보도하던 기자들과, 그녀를 혐오의 피해자로 묘사하길 주저않던 언론들과, 돈만 내면 실어주는가 도통 아무글이나 올려대던 학술지와, 정당한 비판에도 에구머니나 문부터 닫아걸던 학자들과, 말귀를 도통 알아처먹질 못하던 그 많고 많은 작자들까지, 하나하나 쪽이 팔려서 남은 쪽을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 무슨 유튜버야 내가 알 바 아니고, 그래서 그 학계는 어찌됐고 학자는 어찌됐으며 또 논문은 어찌되었는지, 언론은 어찌됐고 기자는 어찌됐는지가 관심사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학자는 학자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하는 것인데 대체 누가 그러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논문이라 쓰고 잡설이라 읽는 그 글쪼가리 첫 문단만 봐도 가치 없음을 알 것인데, 대체 이것이 어떻게 그리도 오래 세상을 시끄럽게 하였는질 묻고 또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니냐 이거다.


 혐오하는 이를 혐오의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그 조잡한 둔갑술조차 구분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두꺼비를 두꺼비라 하는 이를 공격하는 세태가 민망하였을 뿐이다. 향후 세대가, 빈부가, 지역과 인종이 갈라져 싸울 한국에서 가장 하잘 것 없는 남녀의 차이를 갖고도 이 아사리판을 만드는데, 대체 이땅의 지각 있는 이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냔 말이다.


 가짜 학자와 가짜 기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장 진짜여야 할 것이 그러하고 있으니 나는 여기설랑 술이나 퍼마시고 짝퉁 흉내나 낼 일이다.


 무튼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일터로 나와 사회적 책임을 다한 여성들이, 그럼에도 선거권조차 갖지 못했던 차별받던 이들이 거리로 나와 쟁취해낸 날이다. 먼저 의무를, 뒤에 권리를, 직접 그 손으로 얻어냈다. 그 시절 사내라 불러 마땅한 자들은 그녀들 곁으로 나아가 손을 들어주었다. 책임을 다하고 권리를 얻어 세상을 더 낫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인간의 멋이고 도리가 아닌가.


 비록 그들 중 꼴통들이 태어나 사내들에게 술집과 술을, 멋을, 마지막 팬티 한 장까지 모두 다 빼앗고서 마침내는 요상한 걸 논문이라 디밀며 페미니즘 안 배우면 곤충인지 범죄잔지 뭣대로 씨부리고 곁에서는 우쭈쭈 님이 짱이에요 빻아대는 날이 오고야 말았지만 무튼 그 전엔 진짜이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에는 진짜들이 있으리라. 그러니 짭을 만나고서 세상엔 찐이란 없더라 하는 좆뗀 놈은 되지 말지어다. 그게 내가 하고픈 말이다 이거다.


 예부터 귀한 것엔 탐하는 자들이 꼬이는 법이다. 흉내만 낼 뿐 진짜가 아닌 사이비들은 주저없이 몽둥이를 들어 쫓아낼 뿐이다.


 자, 그럼 멋진 여성들에게 건배를!



2023. 3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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