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책 나오면 후배들한테 돌리려고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너무 우울해서 못주겠어 라거나 책 읽는 내내 너무 답답해서 어디 추천하기가 그렇더라 거나 기자지망생에게 한 열 권 쯤 보내는 이벤트를 해볼랬는데 내용이 너무 그래서 못하겠더라 라거나 졸업한 학교 학보사에 몇 권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내용이 너무 어두워서 뭐 그렇고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하나같이 언론계 종사자인 이들은 내 책으로부터 꽤나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낀 모양인데, 이건 의도하지도 심지어는 예상하지도 못한 반응이라 당혹스럽다.
그러나 수사관이나 형사, 국회 보좌진이며 변호사, 의사, 의료범죄 피해자, 기타 공뭔 그리고 나의 애정하는 뱃놈들 중에서는 이 책을 기자들이, 또 기자를 꿈꾸는 이들이 읽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들이 본 것을 왜 현직에 있는 기자들이 보지 못했는지, 나는 문득 그 사실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를 따지려다 보니 양쪽 모두 독자를 기자나 예비 기자, 적어도 언론계에 관심이 있는 이로 한정한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이게 어딘지 낯설다. 나로선 책을 쓸 때도, 쓰고난 지금까지도 기자며 기자지망생을 독자로 염두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실 관심을 두었던 건 오로지 이 시대 에세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쓴 책이 팔리고 읽혀서 마침내 기억되는 일이었다. 그건 내가 수필이라는 글의 형태를 애정하기 때문이며, 요즈음 에세이 시장의 참담한 수준 저하를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쓰나마나한 기사를 쓰는 걸 꺼려왔듯, 쓰나마나한 에세이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며칠 걸러 한 놈씩 내 글을 기자나 언론 지망생에게 권할 수가 없겠다고 하니, 도무지 이에 반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돼버렸다. 도대체 기자들의 문해력이 얼마만큼 떨어졌기에 벌써 다섯이나 되는 이가 이 책으로부터 절망이며 우울만을 읽었다고 씨부려들 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채플린의 비극은 눈물 위에 쓰여서 아름답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갈등 위에 세워져 강건하다. 카프카며 도스토예프스키, 오스카 와일드와 샐린저, 디킨스와 헤밍웨이, 말루프와 트웨인도 마찬가지다. 절망과 분노와 우울과 무력감과 슬픔과 고통따위로부터 이들은 그 너머의 희망이며 명랑함, 선함과 의지를 빚으려 했다. 이들의 작품으로부터 오로지 절망만을 읽는다면 그건 결코 작가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토닥토닥 하는 위로며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공감, 어떤 불편도 주지 않는 무해함과 무책임한 해방 어쩌고 하는 것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문학적 가치가 이들의 작품에 깃들어 있다.
내 글에서 위로와 공감, 무해함과 해방을 찾지 못했다는 흔한 비판들과 마주하여 나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 뿐이다. 내가 쌓고자 한 것은 위로로 달성되는 위로도 공감으로 얻어지는 공감도 아니라고, 유해한 것을 격파함으로써 달성되는 무해함과 옭아맨 것을 찢어발겨 획득하는 해방감이라고 말이다. 그럼에 내 글이 부족한 건 더 다가서지 못함에 있지 너무 나아간 탓은 아닌 것이다.
세상에 그런 수준의 독자만 있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겐 이기심을, 샐린저에겐 절망을, 카프카에겐 부적응을, 오스카와일드에겐 우울만을 읽게 될 뿐이다. 뭐 사실이 그러해서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칸트는 꼰대로 남은 것이겠지만서도. 나는 서둘러 솟구쳐 오르는 화를 비싼 술 한 잔으로 씻어내리곤 나머지 글을 계속 써내려간다.
이를테면 이 책은 절망보단 희망을, 자포자기보다는 자기긍정을, 도망보다 승부를, 패배보단 승리를 이야기한다고. 이는 나의 자세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지난 시간 수없이 얻어왔던 성취로부터 강화돼온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두 분께선 술을 사주셨으니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지만서도 나머지 세 놈은 어째서 귀한 시간을 빼앗고서 이치에도 닿지 않는 소리만 골라 씨부린 뒤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고 떠나가는 건지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씀이 쪼잔하니 희망이며 긍정을, 당당함과 패기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세상은 어찌하여 짭들이 저 잘났다 하는 데는 박수를 치면서도 나의 겸손일랑 알아주질 않는 걸까. 이처럼 비좁은 마음들이 들썩일 때는 빈 술잔을 매만지며 주문을 외워본다. 누가 알아주지 아니해도 성내지 아니함이 군자의 도리니라. 도리니라. 도리니라. 2차는 닭도리탕에 쏘주 한 잔 땡겨야것다.
2023. 3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