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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Jan 08. 2024

언제까지 삶을 낭비할 것인가

단상

아파트 한 동만큼 커다란 쇠배를 두동강 낼 것 같은 파도가 있었다

고래만한 엔진이 비명을 질러가며 종일을 밀어도 늘 제자리인 뱃길도 겪었다

저어기 파도와 파도 사이 달음질쳐 추락하는 선수를 보았다

작은 선박 에스오에스 치는 풍랑 가운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밤도 지냈다

그리고 그 모두가 거짓 같았던 고요한 새벽을 맞았다

밥과 계란에 고추장을 얹어서 쓱싹쓱싹 비볐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며 두고 온 것과 간직한 것과 얻어갈 것들을 몇번이고 헤아리는 적막을 견뎠다

그저 다가서고 머무르다 지나가는 것들과 만났다

손을 뻗어 어루만지고 싶었던 그 모든 존재가 작은 의미조차 없어지는 때와 닿았다

마셔도 취하지 않아 받을 이 없는 번호를 누르다 말다 주저하던 시간들이 흘렀다

너의 고통이 너에게만 닿기를 기원하던 시간 또한 지났다

무너지는 담벼락을 어깨로 지탱하고 부서지는 햇살을 가만히 쬐었다

언제까지 삶을 낭비할 것이냐 소리치는 이들을 지난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구하지 못한다는 중얼거림을 듣는다

그래도 잘 한 것이 몇개쯤은 있겠다고 나는 저 맑고 밝던 날을 생각하는 것이다



2023. 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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