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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nity Lee Mar 15. 2019

내비게이션 엄마

  내 자식이 이럴 리가 없다. 가슴 속에서 번진 불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아무리 유능한 교사라도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땐 손이 몇 번이나 올라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풀이한 문제 수만큼 아이 등을 내려치고 있었다. 직업이 교사일지라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별 수 없다는 씁쓰레한 생각이 쏴~ 하고 지나간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가 해야 할 숙제는 수학 1단원 총복습이다. 개념 설명이 잘 되어있고 기본적인 내용을 배우니 어려움 없이 잘 따라가려니 여겼다. 게다가 부모가 고등교육을 무난히 마쳤으니 기본적인 학습 능력은 자연스럽게 대물림될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보아도 쉬운 문제인데 내 아이는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첫 단원부터 꾸물거리면 다음 단원을 어떻게 따라가지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조곤조곤 다시 설명했지만 아이는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지 엉덩이를 연신 들썩였다.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기만 해도 부리나케 문 쪽을 쳐다보았다. “나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몰라.” 천연덕스러운 표정이 강아지 저리 가라이다. 당연히 호통과 잔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딴에는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하는데 내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문제를 풀 때마다 아이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 언성이 높아질수록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 들어갔다. 연필을 쥔 내 손이 교과서 위를 냅다 달렸고 목소리는 쇳소리를 냈다. 나는 한 대 더 때렸고, 아이는 한 대 더 맞았다.

  며칠 뒤 엄마표 영어모임이 있었다. ‘엄마표’란 자녀들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가정에서 힘을 키워보자는 뜻 있는 엄마들의 움직임이다. 영어교사인 나는 국영수 보충학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에 아이는 일주일에 한번 해금과 로봇교실을 간다. 석 달 만에 엄마표 모임에 나갔다. 나는 이 모임에서 가장 느슨한 엄마답게 아이에게 영어만화를 꾸준히 들려주고 아주 쉬운 영어를 짧은 시간 안에 가르친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몇몇 엄마가 ‘영어 선생님이 자기 애를 저렇게 가르치면, 우린 걱정 안 해도 되겠네.’하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모임에 나가지 않은 석 달동안 내 처지가 달라져 버렸다. 아이를 다그치는 못된 엄마가 된 것이다. 공부 습관을 자연스럽게 키워주겠다는 초심은 사라지고 영어 학습 내용을 꼼꼼히 점검하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닦달하는 잔소리 엄마가 되었다. 격려는 없고 지적과 잔소리만 쏟아내는 엄마로 변해버렸다. 

  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엄마이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가 입력되면 최적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운전자의 생각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기계가 설정하여 목적지로 가는 길이 많지만 지시에서 1m라도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도 풀 오토매틱 내비게이션이다. 주어진 해결방식에서 아이가 조금만 벗어나면 삑삑 경고음을 울린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길이나 꼬불꼬불한 사잇길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은 교육 방법일텐데 ‘경로 이탈’이라고 외쳐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속도가 느려질수록, 쉬어 갈수록 도착 예정시간이 뒤로 미루어지기 마련이다. 공부의 경우도 게으름을 피우면 이렇게 성적이 낮아진다며 예상점수를 보여주는 꼴이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내비게이션 엄마는 아이의 성적 데이터를 자동 업데이트한다. 오늘 90점을 받았다면 내일은 1점이라도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을 다시 달리게 한다. 요즘 새로 나온 내비게이션은 주행이 끝나면 ‘잘 했어요.’라는 칭찬 메시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칭찬하는 법이 없다. 이것이 세상 엄마들이 지닌 결정적인 흠이고 약점이다.

  나는 정말 나침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나침반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만 알려준다. 길을 잃었을 때면, ‘네가 가던 길은 이 길이었어.’라고 무언으로 가리켜줄 따름이다. 나도 방향만 제시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낯선 길일지라도 우선 가보라고 말하고도 싶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엄마라는 이름을 가슴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등받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초심은 어디로 가고 아이를 다그치기만 하는 엄마가 되어버린 걸까.

  놀이터에서 놀다온 아이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가 불쑥 한 마디를 했다. “엄마, 나 왜 ‘엄마’라고 부르는지 알겠어. 엄마는 ‘엄~청 마녀’야. 그래서 짧게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마녀’라는 말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마녀란 다름 아닌,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아이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마녀처럼 멋진 작전을 짜고 아이 마음에 들도록 변신을 해야 한다. 멋진 엄마는 변신의 귀재다. 

  아이를 위해서 평소에는 나침반 엄마였다가 필요할 때면 내비게이션 엄마로 변신할 수 있는 마녀 엄마가 되면 좋겠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서서히 나침반 엄마로 변신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손을 잡고 이끌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아이의 성장통을 지켜보는 나침반,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격려하는 역할만으로 충분하리라.

  나는 여전히 내비게이션 엄마에 머물고 있다. 불가피하게 선택한 일시적인 역할이다. 세상에 갖가지 위험이 있다는 걸 알 때까지는 부모의 깐깐한 고집이 아이를 위한 단단한 바탕이라고 믿고 싶다. 

  나도 아이와 함께 큰다.



제목 사진출처:https://blog.naver.com/ideartist/100176339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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