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교실, 부담 교실
나는 W시의 한 중학교에 근무한다. 우리 학교는 담벼락 하나 사이로 고등학교 두 개, 초등학교 1개에 둘러싸여 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부모와 선생님을 잡아먹을 듯이 눈 흘기는 나이, 그 무서운 중학생들이 나의 학생들이다. 여기서 나는 영어를 가르친다. 아니, 가르쳤다.
올해만큼은 나는 영어교사가 아니다. 한국어학급 담임 선생님이다. W시에 중학교만 300개 정도라는데, 한국어학급이 설치된 중학교는 3개밖에 없다.
한국어학급은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청소년의 한국어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교실이다. 교육청이 이주배경(다문화) 청소년이 많은 학교를 지정하여 학교 안에 한국어학급을 운영한다. 한국어학급은 일반학교에 다니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장애학생도 여기에 포함된다)들이 공부하는 도움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 대상자들이 하루 일과 중 몇 시간은 도움반에서 특수교육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원적 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한국어학급도 운영된다.
우리 학교에서도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은 하루 중 1~3시간은 한국어학급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기가 소속된 원적 학급에서 일반 교과 수업에 참여한다. 그러다보니 이 학생들에게는 한국어학급과 원적학급의 시간이 섞여있는 시간표를 따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속한 반마다 시간표가 다르고, 한국어 수준도 모두 다르고, 좋아하는 과목도 다 다르다. 학생 개인별 시간표를 짤 때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설명보다는 비교적 활동이 많은 음악, 미술, 체육 시간에는 원적 학급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야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도 반에서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어학급에 왔을 때는 한국어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아서 수준별 학습이 되도록 시간을 맞추어야 하고, 시간강사인 한국어 강사의 시간표도 중간에 비는 시간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학생 개인별로 한국어학급 수업 시간이 모두 다 다르게 시간표가 짜이고 한국어 진도도 다 제각각이다.
시간표 만드는 일이 여간 머리 아픈 작업이 아니다. 그래도 며칠 머리를 싸매면 어떻게든 시간표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더 난감한 것은 학생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모두 다 엎어버리고 시간표를 다시 짜야한다는 점이다.
한국어학급 학생에 관련된 모든 일은 다 내 몫이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한국어학급 교실 앞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은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교과서, 교복에 대한 안내, 생활 지도, 인사, 가정통신문을 챙기는 일, 학부모에게 중요사항을 연락하는 일 등 끝도 없이 밀려든다. 보통 학교에서는 교복 담당 선생님 따로, 교과서 담당 선생님 따로, 출결 담당 선생님 따로... 이런 식으로 업무가 다 나뉘어있는데, 나는 한국어학급 학생에 관한 한 이 모든 일을 다 챙겨야 한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말이다. 거기다가 한국어 수업까지 맡아서 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상한가를 경신하던 체중계 숫자가 요즘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도입국 청소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학생들이 공교육에 진입할 때 학부모가 희망하는 경우 통역을 부르기 위해 교육청에서 마련한 1년 치 예산이 불과 한 달 반 만에 바닥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정도이다. 어떤 초등학교는 이주배경 학생 수가 너무 많아 한국어학급 교실 한 개에서 두 학급이 중간에 커튼을 치고 공부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W시의 전체 중학교 중에 한국어학급이 세 개, 그렇다면 만 명 정도의 중학교 교사 중에 한국어학급 담임이 고작 3명이라는 뜻.
올해는 내가 그중 1명이다. 귀하고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