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그가 그립다.
어떤 땅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피부에 꼭꼭 눌러 박은 문신처럼 기억의 무늬가 너무나 또렷해서 땅의 타고난 운명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다. 그 무늬는 스며들고 또 배어 나오면서 땅을 휘감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한 영웅이 신출귀몰한 지략과 정성스러움으로 망국으로 가던 나라의 운명을 돌려놓은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산도로 간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로 간다.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거대한 동상으로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높은 분이 아니라 무섭고 막막한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절망 속의 비범함을 만나러 그곳으로 간다.
비가 내린다. 세상이 물에 잠긴 듯 세찬 빗속에서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한산도 앞바다를 지나간다. 근본 없이 출렁이고 뒤집어지는 물의 광야에서 거짓말 같은 승리를 거두었던 그 바다를 나아간다.
배는 이내 선착장에 닿는다. 제승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은 장군의 비상상황실이었고 야전병원이었다. 부하들을 먹이고 길러야 하는 집이었고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던 군수공장이기도 했다. 백성들은 한산도에서 출발하는 장군의 병선에 희망을 걸었고 목숨을 의지했다. 장군이 구했던 수많은 목숨과 베어낸 수많은 머리가 뒤범벅이었을 이 길에서 나는 장화 신은 발로 일없이 빗물을 튀기어본다.
임진왜란에서 땅의 전쟁은 전쟁도 아니었다. 임금은 피난을 떠나 명나라로 망명을 하려 했고 정부는 그들끼리 말의 전쟁에 갇혀 적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 속에서 백성들은 죽어 나갔다. 그때 그곳에 존재했다는 것이 백성들의 죄였다.
이순신 장군은 계사년(1593년)에 한산도로 진을 옮겼다. 한산대첩, 부산승첩, 웅포승첩 후 명과 왜의 강화협상으로 전쟁은 소강상태였다. 이곳에서 장군은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수장,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전쟁은 소강상태였지만 장군은 전쟁 재발을 염려해 이곳에 통제영을 설치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초비상 상황에서도 조정은 속수무책의 언어 다툼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고 장군을 함거에 실어 압송해버리고 만다.
정유년(1597년) 2월 죄인이 되어 한산도를 떠날 때까지 3년 8개월 동안 장군은 오직 혼자 힘으로 책임과 정성을 다해 적을 저지하고 이 바다를 지킴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제승당은 장군의 위용을 뽐내고 전투에 지친 장군의 휴식을 위한 집이 아니었다. 견내량을 통해 남해에서 서해로 넘어가려는 왜군을 감시하는 초소이자 공격본부였다. 꾸미고 다듬는 공간이 아니었다. 적에게 패하면 언제든 짓밟혀야 하고 전략이 바뀌면 버리고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집은 주인이 몸을 눕히는 그릇이다. 나무 한 그루에도 주인의 마음이 담겨있다.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면 주인이 보인다. 제승당은 집으로 들어가는 길부터 그러하다. 반달처럼 육지 쪽으로 굽어진 길에는 기품있는 소나무들이 밀려오는 바닷물을 품어 안는데, 소나무는 세찬 빗속에서 오히려 맑고 강건하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다는 우물을 왼쪽에 두고 대첩문을 지나면 정갈한 돌담과 돌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내 충무문이 나타난다. 이 문은 길을 따라 들어오는 이를 향해 서 있지 않고 왼쪽으로 몸을 돌려 바다와 바다 너머의 땅을 향해 서 있다. 제승당 마당에서 장군의 시선은 이 문을 드나들 수 있는 가까운 이들이 아니라 바다와 그 너머의 땅에서 장군을 믿고 의지하며 전쟁을 대비하던 군사들과 백성들을 향했던 것이다.
지휘 본부인 운주당과 활터 한산정, 장군을 모신 사당 충무사까지 돌아보고 나오면 걸음은 자연스럽게 수루로 향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장군의 마음을 나타낸 유명한 시조의 무대이기에 냉큼 올라본다. 이곳은 처연하면서도 극적이다. 수루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땅이 양쪽에서 커튼처럼 밀려 나와 있고 커튼 가운데 틈 사이로 물의 무대가 펼쳐진다. 장군은 저 무대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계획도 연출도 불가능한 무대에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임금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장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49세에서 53세까지, 하늘의 뜻을 헤아릴 만큼 원숙한 나이에 장군은 이곳에 머물렀다가 죄인이 되어 떠나갔다.
우리도 이제 한산도를 떠난다. 배는 선착장을 밀어낸다. 비가 점점 더 굵어지고 무거워진다. 거세지는 바람에 우산을 두 팔로 감아 안고 울렁이는 갑판 위에서 한산대첩 기념비를 올려다본다.
서늘한 시선이 뒤통수에 와닿는다. 뒤돌아본다.
한 남자의 환영이 수루에 서 있었다. 가장 멋지고 중후한 나이에 아비규환의 현장을 수습하고 다독이던 남자, 그 남자가 세포 하나하나마다 긴장감을 가득 채우고 털끝까지 곤두선 채 짐승 같은 비장함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이 바다는 빗속에서도 참 무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