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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정원 May 30. 2021

우리 집에 왜 왔니. 고맙게.

아메리칸 로빈

캐나다는 겨울이 추워서 유명하다. 겨울이 춥기도 하거니와 얼마나 길고 긴지 거의 일 년의 절반은 겨울이다. 그에 반해 봄이나 가을은 얼마나 짧은지 잠깐 스쳐가는 이 삼주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제 5월 말이 지나면 바야흐로 캐나다의 황금계절인 여름이 도착한다. 여름의 캐나다는 풍성한 숲과 겨우 내 쌓였던 풍부한 수량, 아름다운 자연생물들로 만물이 그 생명의 기운을 폭발하듯이 뿜어낸다.  


난 여름이 되면 우리 집 뒷마당에 들여놓은 흔들 그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아침부터 나 앉아서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듣고, 와이파이의 은혜로 드라마나 유투브도 본다.꿀잼!  캐나다 여름은 비가 많이 없고 일조량이 높아서 그늘에만 나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있으라 해도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하다. 기온도 아침저녁으로는 신선하다. 


앞마당에 심어 놓은 화초들이 쑥쑥 자라나는 것 바라 보고, 한국에서 가져온 봉숭아, 채송화 씨앗 움트는 것 바라보는 낙에 아침마다 마당 문안이 모닝 루틴이다. 게다가 작년에 심어 뽕을 뽑았던 꺳잎에서도 자연스럽게 떨어진 깨가 싹을 틔워 보란 듯이 늠름하게 자라나고 있어 '아침 마당'에 나와 있는 게 얼마나 즐거운 하루의 시작인지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올 해에는 더욱 기쁜 손님이 찾아 드셨다. 한 쌍의 귀한 새 손님이 우리 집에 터를 잡았는데 그건 바로 북미의 텃새 중 하나인 로빈이다. 로빈은 북미나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사람에게 아주 친근하기로 유명하다.  붉은 가슴 울새라고 한국 이름으로 번역되어 아이들 동화 '비밀의 화원'에도 나오고, 크리스마스 카드에도 종종 등장한다. 생김새는 가슴이 짙은 주황색이고 머리는 검고 눈동자 주위로 흰 자욱이 있다. 크기는 머리부터 꽁지까지 대략 한 20센티미터 정도 된다. 


요 새들이 얼마나 맹랑한지 사람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무슨 닭도 아니고 길을 가다가 때론 사람에게 다가들기까지 하는데 참 맹랑하구나 니들. 하며 눈여겨 보곤 했다. 울음소리도 아름다워서 마당 담벼락에 올라앉아 지들끼리 소통을 하는 겐지 뭔지 삐이익 삑삑 뽀로로 롱 거릴 때는 참 듣기도 좋다.  


이 새 한 쌍이 우리 뒷마당 계단 참 밑에 둥지를 틀었다. 

어느 날 우리집 마당 울타리 위로 로빈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입에다 지푸라기를 물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설마 니네 우리 집에 둥지 트냐? 하고는 가만히 관찰했더니 과연 그러했던 것이다. 계단 참 밑에 동그랗고 야무지게 둥지를 틀어 놓았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우리 집에는 가끔 길고양이 집고양이들이 들락 거리곤 하는데, 혹시라도 해를 당하면 어쩌려고 여기다가 집을 지었누...하며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우리집을 낙점해 준 것이 고맙기 짝이 없었다. 무슨 큰 길조도 아닌데,나는 그저 저 자연의 생명체가 우리집 식구들이 지들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줘서 그게 그저 고마웠다. 마치 흥부라도 된 양 새들한테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곤 한참이 지났다. 우리가 문을 열고 나오면 후드득득 날아 도망치고 조용해지면 다시 집을 찾아 들어오곤 했다. 내가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나갈 때 요놈들이 후드득 날아 오르면 혹시라도 당황해서 내 치맛 속으로 날아 들까봐 치마단을 오므리고 내려오곤 한다. 우리가 나오면 자기들도 날아 나와 담에 올라앉아 삑삑 우는데, 나는 그 소리가 "우리 둥지 건들지 마숑". 하는 경고성 울음으로 들렸다. 그래서 나 역시 걱정 마, 안 건드릴게. 하면서 대꾸해 주곤 했다. 


그러다가 엊그제부터는 그 두 녀석이 입에 벌레를 물고는 연식 들락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 수컷 로빈의 입에는 벌레가 물려 있었고, 내 거동을 살피다가 안전하다 싶으면 날래게 둥지로 날아들었다.. 두 마리가 서로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리가 둥지로 날아 들어가면 교대로 다른 한 마리가 날아 나가고...  나갔던 녀석이 벌레를 물고 들어오면 또 교대로 다른 마리가 날아 나가고.


새끼를 깠나 보다. 새끼를 먹이나 보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쭉 같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들여다봤다가 사람한테 들켰네, 사람 냄새나네, 사람 손탔네 하면서 집을 이동할까 무서워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오늘 아침에는 거의 내 발치 앞 30센티미터 앞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담에 올라앉아 있을 때도 내가 30센티 앞까지 다가가도 꼼짝 않고 나를 바라 보며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릴 때면 "요런!" 하면서 머리를 콩 쥐어 박아 주고 싶을 만큼 얄밉게 귀엽다.  


오래오래 머물다 가렴. 

새끼 잘 키워서 같이 도란도란 살다가 너네들 뜨고 싶을 때 뜨렴.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맙고 나에게 니들 바라보는 재미를 선사해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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