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 속에는 사건과 사고, 갈등과 번민, 좌절과 무너짐이 곳곳에 도사리고 그럭저럭 살고 있었던 우리를 끌어잡아 내린다.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한다.
2020년 12월 10일, 출근 도중 지하철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하철 소리 때문에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아주 다급한 영어로 뭐라뭐라 쏼라 대는 소리를 대충 알아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댁의 아드님이 학교 앞에서 차에 치였습니다.' 라는 뜻이었다.
나는 일단, 지하철에서 내려서 다시 전화를 걸고 상황 설명을 들었다.
당시 아들은 여기 학제로 12학년, 고3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점심시간에 학교 근처 도서관까지 슬슬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차에 치인 것이다.그것도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머리를 땅에 부딪쳤고 구급차가 와서 옮겨 가기까지 15분 정도 도로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회복했고, 학교 이름과 자기 이름을 말해 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나는 그 때 다른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 갔다. 뇌진탕에 앞니가 하나 부러지고 쇄골이 부러지고, 몸 전체에 찰과상, 뇌 CT촬영 결과 다행히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었다.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들이 살아 있어서 감사했고 복구 불가능한 장애를 피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물리적인 상처들은 다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끈질기게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것은 외상후 트라우마다. 큰 사고 이후 심리적으로 과각성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불안 증세가 때때로 나타나고 극심한 악몽에 오래 시달렸다. 겨우 잠이 들어도 수면의 질이 떨어져 깊게 자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들기가 어렵다. 게다가 다양한 약 부작용이 일어나서 심장이 빨리 뛰기도 했고 소변이 잘 안나오기도 했고 식은 땀이 줄줄 나기도 했다. 남들은 그 정도면 큰 후유증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불행이든 내가 겪고 있을 때는 그게 가장 힘든 일이고 내 자식이 겪는 일이 제일 애닲고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일년간 골방에서 엎드려 가슴을 쥐어 띁으며 기도하며 쏟은 눈물은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라면 누구나 흘려 보았을 것이다.지난 일년 여의 투병생활은 짧은 몇 줄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도 완벽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견디고 넘어가고 있다.
그런 우리 아들이 오늘 대학교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뉴로사이언스와 심리학 분야이다. 자기의 현 상태가 신경 과학과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인간행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아들은 저런 학과들에 지원하고 당당 합격했다. 아직 합격만 하고 선택은 안 한 상태이다. 아들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는지 모르지만, 에미의 소원은 이 아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뿐이다. 아들아, 자랑스러운 내 아들. 부디 현재의 모든 후유증을 다 극복하고, 니가 겪은 그 어려움 속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렴. 세대를 거친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듯 나 역시 에미의 간절한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