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유(15)-우아한 취향
흐린 날이다. 몸이 무겁기도 했고(아니 마음이 무거운 건지) 새벽 요가를 가지 않았다. 좀 느지막이 일어났다. 잠이 온전히 깰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거실엔 늘 매트가 깔려 있다. 인센스 스틱을 피우고, 싱잉볼 사운드를 틀어놓고, 명상 방석에 앉았다. 흐린 날이라는 건. 새벽이 연장되는 기분이라. 뭉클한 날씨에 뭉클한 마음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호흡을 고른다. 명상을 좀 하고 나니 움직일 힘이 생겼다.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 5분부터 시작. 스트레칭 루틴을 이어갔다. 아쉬탕가 마이솔을 가지 않았지만. 이런 날씨엔 이렇게 집에서 고요하게 몸을 좀 늘려주는 것도 참 좋다. 명상적이다. 요가원에서는 요가매트만큼이 나의 공간이라면. 집은 그냥 이 전체가 나의 공간이라. 확장되고 뻗어나가는 느낌,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더해본다. 다행이다. 마이솔은 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채웠다.
출근길. 시간 여유가 있다. 스타벅스로 향했다.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회사 지하에 더 저렴한 테이크아웃 카페도 있고, 회사 안에서 커피를 내려마실 수도 있는데. 굳이 오늘 같은 날은 스타벅스로 향한다. 위안. 같은 게 있다. 아주 잠깐 실오라기 정도의 외쿡 바람이 부는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달까. 익숙한 공간에 바글거리는 젊은 사람들. 책을 읽든 대화를 하든 출근길이든. 그냥 좀 여기는 정신 차리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도심에서 스타벅스 정도는 들고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이야. 같은. 5000원의 위안(카페라떼 톨사이즈 기준). 나 지금 직장생활 잘하고 있고. 좀 더 우아하게 세련되게 살 여지가 있다. 같은. 그러니까 기분이 거지같이 느껴질 거 같은 위기나, 스트레스가 날 짓누를지도 모른다는 위기 경보가 울릴까 말까, 우려가 될 땐. 스벅 카페라떼 우유거품의 부드러움 같은 것이. 내가 미국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스타벅스 여인의 웃음. 같은 것이. 너 괜찮다. 힘을 내보자.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아마 시작은 주문부터일 거다. 환영합니다. 내 취향은 다 맞춰주겠다는 자세.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숏,톨,그란데. 우유는 저지방이냐 아니면 오트밀이냐. 라떼도 카페라떼냐 플랫화이트냐. 샷은 추가할 거냐 말 거냐.. 등. 내 취향을 다 맞춰주겠다며 주문을 받는 점원.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면. 커피 가져가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다정함이나. 나의 결핍의 지점들이 여기서는 다 보이는구나.
커피를 받아 들고 고요하게 어디 구석에 앉아서. 책이나 보면 좋겠다 싶은데. 우산을 들고 커피를 들고. (아 비 오는 날 테이크아웃은 손이 부산하구나..) 종종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한다. 아침부터 소박한 우아를 떨고. 커피가 남아있는 한 위안은 좀 이어질테니. 오늘도 잘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