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9)
흐린 날이다. 어제 회식 탓에 숙취가 좀 남아있다. 몸이 힘든 건 아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와인을 마셨고. 분위기도 훈훈했다. 서로 띄워주고 다독여주고 그 사이 뼈 있는 말들도 녹였고.. 비교적 기분 좋게 끝난 회식인데도. 마음은.. 좀 그랬다. 내가 분명 열심히 하고 있고 선배들이 그것도 알고 있고. 칭찬이 쏟아졌으나. 나의 툴툴거림 역시 눈치채고 있으신 걸로. 이렇게 훈훈한 회식 후에도 뒷맛은 역시 공허함이다.
숙취와 함께 감정의 잔재가 남아있다. 새벽 요가 대신 조금 더 자는 쪽을 택했다. 그야말로 뒹구르르... 그렇게 푹 자고 출근. 오늘은 그렇게 바쁜 날도 아니다. 바쁜 날이 아니라서 더 그런가.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갑자기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요가를 하고 왔어야 하나.
주중에는 주말이 오면 좋겠다. 사무실에선 퇴근하면 좋겠다. 퇴근하면 와인 마셔야지. 요가하러 가면 좋겠다.가족 보러 가면 좋겠다. 그림 보러 갈까. 산책을 좀 할까. 도서관에 소설책 빌리러 갈까. 좋아하는 분들과 약속을 잡아볼까. 여행이라두 갈까... 공허할 때는 공허함이 밀려올세라, 일을 벌리고 계획을 짜고. 기대를 하고 그렇게 버텨보는 편인데. 뭐랄까.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달까. 오늘이 가면 또 그저 그런 내일이고. 주말이고. 그러면 나는. 그냥 회사 가고 요가하고 집에서 쉬는 그런 루틴을 그냥 반복하고 있는데. 그러면 나는. 행복한가. 괜찮은 건가. 어떤 날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데. 오늘은 좀. 공허하다. 자극이 필요한 날이다. 쏟아지는 행복감 설레임 뭐 그런 감정이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