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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Feb 15. 2022

번데기에 얽힌 몽롱한 의식의 경계선에서

사실 그보다 앞선 기절의 역사가 있다.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랐고, 바람처럼 휘몰아쳤던 세월을 돌려세우고, 지나쳐버린 순간으로 무심코 이끌어가는 냄새가 있다. 빛바랜 추억 한 자락을 다시 불러와서 당장 내 앞에 세워놓는 냄새가 있다. 아련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끌렸는지 그리움의 실체를 나는 모른다. 냄새가 끄집어내려고 했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단지 잠들어있던 기억의 편린을 움찔거리도록 만든 것이 냄새였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서울대공원 입구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번데기 냄새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렇다고 연탄난로 위, 노점상의 깊게 파인 주름만큼 졸여진 번데기를 사지 않을 것이다. 먹을 수 없는 번데기를 사 들고 다시 고민하고, 화해를 시도해 볼 만한 성격이 아니다. 단언컨대, 나는 냄새와 맛의 유혹을 구분할 것이며, 어디까지 넘어갈 수 있는지, 그 몽롱한 의식의 경계선에서 번데기를 입에 털어 넣고 기절을 대가로 치러야 할 정도로 무모하지도 않다. 번데기에 대한 나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 번데기에서 비롯된 그 날의 기억조차 어느새 배어버린 냄새를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맛보다 냄새가 더 은은하게 남는지도 모른다. 


 특히 당뇨에 특효가 있다는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는 벌레. 누에, 비단실을 만드는 원료. 누에나방의 고치 안에 들어 있는 번데기. 누에나방은 농약에 민감하기 때문에 양잠 시설에서는 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담배 연기는 물론 뽕나무를 재배하는 땅 근처에는 담배를 재배하지도 못한다. 담배 성분이 축적된 뽕나무 잎을 먹으면 연약한 곤충 누에는 바로 죽어버린다. 질 좋은 비단실을 뽑아내기 위해서 양질의 먹이를 공급받고, 생육에 최적화된 시설에서 자란다. 번데기를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누에나방이 변태 하려고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을 삶고,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면 비단실의 원료가 된다. 그때 같이 삶은 번데기는 고스란히 남는다. 번데기는 벌레라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사용되었지만, 한국에서 번데기의 식용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한국 전쟁 이후에 무엇이라도 먹고 버텨야 하는 시기에 번데기를 식용으로 먹기 시작했다. 급성장을 이뤘던 1,96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번데기는 간식으로 대중화되었다. 고소하고, 담백하다. 입안에서 톡 터지는 식감이 좋다. 번데기의 영양 성분은 단백질을 포함한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올레산과 리놀산으로 구성된 지방은 소화와 흡수에 적합하다. 벌레는 인류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또한 미래의 식량난을 타개할 수 있는 차세대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번데기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몸이 붓거나, 발진이 생기면 즉시 섭취를 중단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많은 양을 섭취하면 복통, 설사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치악산에서 먹은 번데기가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번데기는 아버지의 특별 술안주였고, 지극히 서민다운 우리 집 간식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시장에서 생 번데기를 사 오셨고, 직접 삶고, 졸이는 동안 집 안에는 온통 번데기 냄새가 났다. 굳이 종이를 고깔처럼 말아서 번데기를 담아주면, 우리 사 남매는 나팔을 쥐듯 번데기를 손에 들고, 옆집, 뒷집 가릴 것 없이 동네 친구들에게 달려갔었다. 그러나 그날 치악산에서의 번데기는 달랐다. 그날의 몸 상태가 나른했던 것일까. 번데기를 먹은 내가 달랐던 것인지, 아니면 내 몸을 탐했던 번데기가 달랐던 것인지 지금도 풀 수 없는 숙제로 남았다. 번데기를 먹은 후에 온몸이 붓고, 간지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길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두 번째 기절이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 순간의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치악산 입구에서 번데기를 먹은 후에 우리는 산 정상을 밟기는 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산을 올랐던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다시 산에서 내려왔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깨어났을 때는, 친구 한 명은 머리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응급 상황에 대처할 만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을 만한 나이였다. 긴급한 구조 요청을 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다. 지금처럼 전화 한 통이면 구급차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깨어났다. 그들은 내 생명을 담보로 누구와 담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내 생명과 바꾼 그 날의 비장했던 각오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을까. 한 번만 살려주시면 무엇을 하겠다고 기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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