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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16. 2020

무작정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산하고 바람났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처음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캐나다에서 무림의 고수가 도장 깨기 하듯 비장하게 산을 하나 정하고 나면, 손바닥이 까지고 무릎이 멍드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기어이 정상을 밟고 사진 한 장 찍고 내려오는 식의 무모한 등정이었다. 어쩌다 아내가 산에 쫓아오는 날에는 조금 쉬었다 가면 산이 없어지기라도 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한마디로 미친 등산, 크레이지 하이크(Crazy Hike)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도 없고, 생각이 점점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질 때 혼자 산에 오르기로 했다.


Golden Ears 정상에서


 Golden Ears Trail, 골든 이어스 트레일. 왕복 거리 약 25km, 9시간가량 소요, 고도 1,716m, 등반 고도 1,627m. 노을에 젖은 산 정상의 모습이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 한다. 처음 이 산을 찾은 것은 서둘러 내 손을 잡아끌고 그곳에 데려다 놓을 것만 같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얘기를 토해 놓을 것만 같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있는 무채색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 깊은 산속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건물 하나가 신비롭게 놓여 있었고, 높은 산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구름에 둘러싸여 있었다. 도대체 왜, 누가 이 높은 산에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건물을 짓기 위해 사람들은 걸어서 그 먼 길을 오갔던 것일까. 건물을 짓기 위한 자재들은 어떻게 날랐을까. 무작정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Golden Ears Trail


 캐나다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등산로를 빼면 대부분의 등산로는 좁고 거칠다. 야생의 숲에 크레파스 하나 들고 선을 그린 것처럼 풀이며 나무를 꼭 집어내어 길을 내놓은 것처럼 좁다. 어쩌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으면 또 그 길만큼을 집어내어 길을 낸다. 모든 길은 정상에서 만난다는 한국의 등산로처럼 여러 개의 등산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등산로에는 주로 3가지 내용의 팻말이 있다. 방향이나 장소를 설명하거나, 야생 동물의 출현을 알리거나,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경고문이 적힌 팻말이다.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힌 팻말은 비교적 편안한 길에나 세워져 있다.


 도중에 지나치게 되는 알더 플랫(Alder Flats)은 숲 속의 작은 캠핑장이다. 음식 냄새를 맡고 접근하는 흑곰을 막기 위해 음식물이 담긴 배낭이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야생의 자연에서 인간은 조심스럽게 곰의 나라를 방문하는 순례자이고 다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나야 하는 나그네일 뿐이다. 사람들은 몸에 방울을 달고 다닌다. 방울 소리를 내는 것으로 곰의 접근을 막는 이유겠지만 나에게는 그 소리가 반갑다. 내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친구의 소리처럼 설렌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방울 소리가 들리면 가까운 곳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안도한다.  


 캐나다는 정말 뉴스가 될 만한 사건들이 비교적 적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얘깃거리가 적기 때문에 캐나다 생활이 더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산책길에서 처음 만나는 할머니가 동양인인 나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어쩌면 그냥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집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곰 한 마리의 사진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등산로에서 맞닥트린 곰 새끼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기사의 내용은 자신의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곰의 본능이 사람에게는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30대의 남자는 곰과 사투를 벌이면서 팔과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구조되었다. 자연보호국은 이 사건을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곰의 보호 본능으로 규정하고 곰을 추적해서 사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대한 곰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술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캐나다의 자연은 인간과 그렇게 공존하고 있다.


 나는 캐나다에 살아도 아직 캐나다 사람이 아니다. 빙하가 녹은 호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영을 할 수 있거나, 곰이 나올지도 모르는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야영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에 들어있다는 아이러니를 나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계곡 물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는 백인 남자를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유전자와 백인의 유전자는 다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심스럽게 발을 담그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차가움에 몸서리를 쳤다. 시원하다는 그의 웃음에 나는 한낱 메뚜기처럼 작게 느껴졌다.



 그 미지의 건물에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 신비한 건물이 화장실이었다니. 화장실 하나를 짓기 위해 사람들은 이 먼 길을 오고 갔으며, 재료들을 나르고, 바람과 햇빛과 외로움과 싸웠을 날들을 묵묵히 견뎠던 것일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나의 치졸한 대답이 앞에 보이는 깎아지른 듯 위태하게 서 있는 돌무더기 정상처럼 금방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에게 코로나와 등산은 서로 닮았다.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는다는 것.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과 악수를 할 수도 없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2m의 사회적 거리가 점점 다가갈 수 없는 심리적 거리로 남을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지금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묻는다.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무릎을 손으로 짚고 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얼마큼 온 것이고, 도대체 얼마나 남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버텨야 정상을 밟고 내려갈 수 있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정상을 밟기 위해 돌무더기 길을 밟을 때마다 무너져버리는 탓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도 방울 소리가 들렸다. 웃통을 벗은 사내의 그을린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상을 밟고 집으로 향하는 한 사내의 가는 길을 축복했다. 9월의 뜨거운 햇빛에도 아직 녹지 않은 눈밭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뜨거웠고 황홀했다.


제목 부분 사진 출처 https://www.vancouvertrails.com/trails/golden-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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