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Sep 13. 2020

이눅슈크

유난히 떠나온 것들이 그립던 풍경에도 이눅슈크가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그곳에 가을이 서 있을 것만 같은 밴쿠버의 들꽃 길을 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으로 본 풍경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땀과 고통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날 동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리 뛰고 다리가 풀려서 서 있을 힘조차 없을 때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Garibaldi Lake and Panorama Ridge


 캐나다에서 혼자 산을 오르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낯선 땅, 언어와 문화가 오롯이 나의 것이 아닌 땅, 직감할 수 있는 본능만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읽어야 할 때가 있는 땅, 숨만 쉬어도 문득 누군가 어깨를 건들며 자기 땅이라고 우길 것만 같은 땅, 나에게 캐나다는 거대하기까지 한 문외한의 땅이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나아가기 위해 불면의 밤을 새워야만 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영어 사전으로 정확한 뜻을 공부하고, 마치 내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만 같은 생생한 사진 한 장, 마음을 적시는 문장 한 마디를 곱씹으며 나만의 지도를 그린다. 그러나 막상 야생의 자연 앞에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옆에서 스치듯 지나간 작은 소리에도 순간 야생 곰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그럴 때는 자연은 결코 낼 필요가 없는 그러나 곰의 나라를 찾는 방문객에게는 누군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람의 흔적을 찾게 된다. 


Golden Ears Trail


 그 사람의 성별조차 짐작할 수 없는 누군가가 무심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나칠 수도 있는 누군가를 위해 남겼을 작은 분홍색 마크 하나가 이토록 반가울 수 있을까. 커다란 바위 위에 쌓아 둔 누군가의 이정표로 남아있는 돌탑은 생각해 보면 길이 아닌 곳에 있던 적이 없다. 실제 이눅슈크(Inuksuk)는 북극권에 사는 원주민들이 이정표나 음식 저장고를 표시하기 위해 돌로 쌓은 조형물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공식 로고였기 때문에 더욱 친숙한 이 돌탑의 모형은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이누이트 원주민 원어로 친구라는 뜻을 가졌다. 유난히 떠나온 것들이 그립던 풍경에도 이눅슈크가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8월이 되어서야 이제 겨우 눈이 녹아내린 길은 진흙탕이 된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간혹 넘어지기라도 하면 몸에 묻은 흙을 툴툴 털어내고 다시 일어났을 누군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미끄러지지 않고 밟고 지나가기 위해 나는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자국을 남기고 살았던 것일까. 바위나 쓰러진 나무통 위에 석공의 정에 맞은 것처럼 새겨진 자국들처럼 나 또한 한나절을 정을 치고 앉아 있어야 할 때가 있었으리라. 길을 막고 쓰러진 나무에 겨우 한 사람 지날 수 있는 길을 내기 위해 무수히 찍었을 도끼질 자국들.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도 되었을 길 위에 누군가를 위해 새겨놓은 사람의 흔적들이 나의 길잡이가 된다.


Saint Mark's Summit and Panorama Ridge



 때로는 바로 눈앞에서 길을 놓칠 때가 있다. 그때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바라본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굴러서 지형이 변했을지라도 그런 세월 동안 또 누군가는 묵묵히 밟고 지났을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막고 있는 방해물을 묵묵히 헤져나갔을 흔적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에 분홍색 마크를 붙이고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길이 점점 선명해지면 누군가가 걸었을 그 길이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훗날 누군가 걸어야 할 길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이 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도 누군가를 향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이눅슈크처럼 살아온 날들이 있기는 했던 것일까. 나는 지금 기꺼이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지친 영혼을 맞아줄 이눅슈크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심금을 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