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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19. 2020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외국이라고 다 예뻐?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을 밟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Swan Falls Loop Trail in Buntzen Lake Park, 번천 레이크에 있는 스완 폴스 루프 트레일, 고도 1,283m, 왕복 8시간가량 소요되었고, 총 24.85km를 걸었다. 아쉬운 마음에 연신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보지만, 수묵 산수화처럼 색을 입지 않는다. 하늘과 산과 호수, 이토록 산수화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희뿌연 연기가 뒤덮은 날의 산수화 풍경은 문명의 역습처럼 회색빛으로 남았다. 세계 최악의 공기를 가진 밴쿠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슬픈 재앙이 되고, 미국의 산불이 밴쿠버의 공기를 바꿔버리는 세상사를 우리는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 100여 군데에 산불이 난 미국 서부보다, 국경 너머 북극 쪽에 더 가까운 밴쿠버의 공기 질이 더 나쁘다. 담배 40개를 핀 것과 같다고 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고 밴쿠버에 돌아오면 공항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이민 초기에는 흰색 와이셔츠의 목덜미가 먼지에 더러워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걸레로 자주 차 외관을 닦았던 한국과 비교하면 세차할 일도 별로 없었다. 구두도 대충 닦으면 반짝거린다. 농담 삼아 캐나다 로키산맥의 공기를 담아 파는 시대를 예측하기도 했다. 공기를 담아 파는 상상만 해도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물을 사서 마시지만, 나는 지금도 물을 사서 마시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 나라는 사람이 그만큼 느리게 바뀌는 탓일 것이다.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처음 편의점에서 물을 팔 때만 해도 물을 사서 마신다는 것을 강박증처럼 거부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물을 끓여 먹었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지금도 겨울이면 난롯불에 엄마 품에서 잠든 젖먹이 동생처럼 새근거리며 끓고 있는 노란 주전자가 그립다. 습관처럼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마음을 적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또 공기를 사서 마시는 시대를 경험하게 될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나는 너무 느리게 변하고 있다.


 이민 초기에는, 밴쿠버는 무조건 멋있고 예쁘고 좋다고 생각했다. 자연환경도 좋고, 인종 차별도 없고, 복지도 좋고, 특별한 재난도 없고,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에 하나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착각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캐나다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코를 푼다. 처음, 캐나다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진 날이었다. 나의 사전에 이토록 무례한 사람들이 또 있었던가. 나는 밥상머리에서 코를 풀지 않는다고 배웠다. 물론 재채기나 트림도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배웠다. 나는 끔찍하게 느리게 변하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도 모르게 미제 연필에 길들여진 감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외국이라고 다 예뻐?” 


 외국에서 찍은 사진은 다 예쁘다. 풍경을 찍든, 음식을 찍든, 사람을 찍든 그만큼 멋있고, 맛있는 풍경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사진이다. 그런데 실상은 밴쿠버도 흐린 날이 있고 비 오는 날도 있다. 그림 같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상은 좋은 면만 있지 않다. 모두 어둡고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면서도 애써 접어두고 사는지도 모른다. 짧은 여행에서 굳이 힘들고 예쁘지 않은 순간들을 남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밴쿠버에서 산을 오르다 보면 때로는 평원 지역에서 사슴, 코요테 등의 야생동물을 볼 때가 있다. 우연히 곰이라도 보는 날에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내 사진첩에는 곰을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다. 마치 훈장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금방이라도 곰을 만난 무용담을 풀어놓을 것만 같다. 산 정상을 밟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산꼭대기는 곰도 힘들어서 올라가지 않을 것 같다. 산꼭대기에는 곰이 살지 않는다.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 힘든 짓을 하는 것일까. 심장 박동의 정상 범위를 넘기고,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풀려서 발을 헛디뎌 가면서도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는 해발 8,848m, 전 세계 알피니스트들의 꿈이자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다 끝내 실종되었다. 75년이 지난 1999년 5월 1일 영국의 BBC 다큐멘터리 팀이 눈 속에 파묻힌 그의 시체를 찾아내었다. 나는 왜 산을 오르는가. 나는 어떻게 나의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또 한 번 가을의 문턱을 조심스럽게 넘어서는 오늘 같은 산행에서 만나는 독버섯의 존재 이유처럼 애매하다. 독버섯은 색깔도, 모양도 화려하다. 밤 기온이 차가워져 풀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되면 버섯들이 생육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는 토양에서 송이나 능이, 싸리버섯 등이 자란다. 때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해도, 아니 모든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독버섯도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피었다가 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였던가.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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