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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Dec 15. 2020

#01 잘 쉬는 법을 모르겠어요

진짜 휴식이 필요해


지난주 엉덩이와 등의 경계 부위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가렵기도 하고 오돌토돌하게 부풀어올라 다 겨울에 진드기에라도 물렸나 싶어 괜시리 털찐 순심이를 흘겨보았다.


‘잡풀 속에 들어갈 때부터 불안했다. 너.’


주말을 보내고도 붉은 반점이 사라지지 않아 비염 약을 타러 간 김에 선생님에게 엉덩이를 깠다.


“이거 좀 보세요. 피부병이 생겼나 봐요. 이거 뭐예요?”

“피부병은 아니고 대상포진이네요.”


대상포진?!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긴다는, 꽤나 아프다는 그 대상포진이었다. 작년에 작은 고모가 대상포진으로 두 달 누워있던 게 생각나서 덜컥 겁이 났다. 각종 잔병으로 동네 병원에 단골로 부상한 내가 대상포진까지 생기다니. 선생님은 드레싱을 해주며 무엇보다 잘 쉬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잘 쉬셔야 해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


재택근무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넘은 상태라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잘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쉰다는 것 자체가 비단 그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과 열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산 지 꽤 됐다. 암 환자가 되고부터 왠지 더 바빠졌다. 죽을까봐 겁이 나서가 아니라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편집자로도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고, 나만의 콘텐츠와 창구도 마련해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나이는 드는데 도퇴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종일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회사 일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일하는 작가님들을 생각하고, 거래처의 문의에 응대한다.


잠시 짬이 나면 강아지 배변을 위해 집밖을 기어나가고 밥을 차려먹고 치우면 한 오백년이 지난 것만 같다.


유튜브 홍보와 구성을 위해 인터넷을 배회하고, 글을 쓰고, 쌓여있는 책들을 읽기 위해 마음이 바쁘다. 자려고 누우면 각성이 된 상태라 쉬이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검색을 하고 또 한다.


나는 지금 잘 쉬고 있지만 잘 쉬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잘 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해보기로 했다. 그 첫 일환으로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의무에 쫓기지 않고, 나를 채찍질하지 않고, 강아지 산책도 가볍게 하고, 핸드폰을 끄고 쉬어보려고 한다.



이 와중에 내일 할 일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바빠지는 나. 머릿속으로 체크리스트를 짜고 있는 나. 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오늘만은.





*출판사 편집자로 글을 쓰고 영상 편집을 합니다. 놀러오세요.


https://youtu.be/T8cpvdEY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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