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퇴사만화 Jul 16. 2021

내 몸과의 대화

여름 감기는 적응이 안 된다

폭염에 감기에 걸렸다.


기어서 병원에 다녀오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전봇대에 기대 서서 왠지 울고 싶어졌다.

문득 한 노견이 다리에 힘이 없어서 발목이 돌아가는데도 걷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영상이 머리에 스쳤다. 육체의 힘이 빠져나기면 생명체는 가장 먼저 힘차게 걷는 감각을 잃는지도 모르겠다.


폭염 속을 걸었다.

티셔츠가 열기로 푹삭 젖었다.

나는 열의라고는 그다지 없는 무릎을 느슨하게 접어 감자베이컨 수프와 베이글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처음 만난 의사는  목과  속을 불을 켜고 들여다보았다. 붉고 울퉁불퉁한 나의 표면은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음을 자명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코로나일까요?라는 내 질문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귀에서 콧물이 나는 것 같아요.’

그는 나의 이런 고통을 이해할까.

말하지 않았다.


내 감기의 8할은 알레르기 비염에서 시작해 오른쪽 귀가 뜨거워지고 그로인해 목이 퉁퉁 붓고, 열감이 머리통을 휘감는 형태로 찾아온다. 늘 이런 과정을 통해 감기가 오기 때문에 나는 기계처럼 내 증세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귀’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 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귀가 아파요”라고 얘기하면 그제야 카메라로 내 귀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면서 “오랜 비염으로 천공이 보여요.” 정도의 진단을 내려줄 뿐이다.


내가 귀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도저히 이 비염을 안고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수술이라도 불사하겠다며 ct를 찍은 이후다. 하지만 코는 구조상 멀쩡했다. 알레르기 검사 결과도 깨끗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내 코는 수시로 콧물을 흘리고 가렵고 뜨거운 것일까. 선생님은 ct를 다시 보면 이런 이야기를 툭 던졌다.


“오른쪽 코와 귀로 연결된 관이 막혔어요. 아마 오래 비염을 앓아서 그럴 거예요.”


이후 내 부비동의 열감과 부비동에서 느껴지던 꽉 막힌 교통 체증의 원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면 귀가 찢어질 듯 아팠던 것도, 그것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도 모두 그 관이 막혀서였던 거다.


그것을 안 이후에는 나는 오른쪽 귀가 수시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더욱 예리하게 느끼게 되었다. 아픈 장기는 늘 존재감을 드러낸다. 유방암 초기 증상을 느꼈을 때는 오른쪽 가슴이 나에게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 “야, 나 이상해. 점검해봐.” 그리고 매달 자궁도 자신이 주기별로 일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위장은 매운 것과 술은 넣지 말라고 경고한다. 내 몸으로 산 지 꽤 되다 보니 이제 그 패턴을 어느 정도 알겠다.


나는 지금 누워서 오른쪽 귀의 열감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아마도 3일은 족히 잔소리를 해대고 떠날 것이다. 위장 건강은 먹는 것으로 다스릴 수 있다지만 바이러스들을 튕겨내는 건강한 면역체가 되는 방법은 도무지 모르겠다. (속은 나약 그 자체)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이번 주말 내내 아플 예정이라는 것 정도.


열심히 아프고 돌아올수밖에.




(아파도 먹겠다고 속으로 한 오백 번 징징대며 사온 감자수프가 날 위로하네)






작가의 이전글 물컹한 기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