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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Aug 06. 2021

내 시간의 침입자

나는 오늘도 내 시간을 잃었다

3주 정도 끌었던 원고 수정이 끝나고, 팟캐스트 준비나 업무와는 무관하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서를 하려는데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은 12시쯤이었나.


그는 캐나다에 살고, 나는 한국에 사니까 대개 이 시간에 통화를 하니 별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났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수다를 떠는 남친에게 모질게 나 지금 혼자 느긋하고 편안하게 창의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전화기 뒷편에서 넘기다만 책을 바라보며 연거푸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일에 대한 부채감으로 저녁과 주말마다 괴로움에 시달리던 것에서 겨우 해방되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시간을 무해하다지만 이렇게 무의미하게 보내고 이제 잠이 온다는 사실에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무언가와 누군가에 떼어주며 산다. 그래서 내 시간이 찾이오면 완벽하게 혼자이고 싶다. 나를 나누는 것은 공공의 시간 안에서 소비를 마쳐달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애정과 무관하게.


하지만 꾹 참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남자친구에게든, 쉼 없이 울리는 회사 호출에든. 그 소리를 해대면 상대에게는 수도의 버튼을 잘못 눌러서 의도치 않게 샤워기에서 물이 머리 위로 우두두 떨어지는 황당한 경우 같아서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시그널이라는 게 있는 건데, 안티깝게도 남자친구는 몇 년째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고 회사 역시 그 시간에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며 아랑곳하지 않고 내일 아침 8시부터

울리기 시작하겠지.


그리하여 오늘 나는 실실 내적 웃음을 지으며  책이다, 독파해주마 하며 열었던 책을  페이지 남짓도 읽지 못하고 쓸쓸하게 덮으며 김에 순심이 배변이나    하자 싶어 새벽에 집을 나선다


내 의식이 닫히기 전까지 아낌없이 나를 주었다.

그러니 내일은 나 좀 내버려두는 건 어때?


(낮 동안의 내 모습을 대변하는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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