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면 장가가고 시집가지 않는 이유
누가복음 35-36절,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을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구절에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아브라함 및 모든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말씀,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말씀과 상충되어 의문이 생겼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너희는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사물을 지배하라" 축복하셨다.
그 축복이 왜 우리가 천국으로 가 부활할 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처음에 나는 마태복음 24장 37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니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의 구절을 생각하며,
이제 심판받고 갈 저 새 하늘, 새 땅엔 시집가고 장가가고 없다면 , 장가가고 시집가고 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고 가정했다. 그 저주를 통해 우리가 남편과 부인의 관계와 자식과 부모로서 이렇게 괴로움과 힘겨움, 또 희생을 겪으며 깎여져서 결국 이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봤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 분명히 하나님 형상으로 짓자마자 하신 축복인데, 분명히 벌로, 저주로 주신 것이 아닐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신약 마태복음 13장 24-30절 말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말씀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창세에는 하나님 닮은 사람,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해 땅을 가득 채워 땅을 정복하고 사물을 지배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죄로 오염되지 않는 주님과 온전히 연합된 상태였기에 그렇게 하나님과 연합된 하나님 형상을 닮은 자식을 낳을 수 있었기에 창세기 1장부터 장가가고 시집가고 자식을 낳는 것은 축복이 맞다.
하지만 창세기 3장 죄가 우리 조상 아담과 이브에게로 들어왔고 그들의 자녀가 이제 모두 죄성을 가진 자녀로 태어났고 이브는 출산의 고통까지 더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죄가 없었으면 하나님의 형상 닮은 택하신 자를 다 낳았겠지만,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밭에 난 가라지처럼 다 같은 자녀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형상대로 선택하신 자가 있고 가라지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 32절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렇다면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구원을 얻고 영생을 가는 자들, 즉 좋은 씨 뿌려 거두게 된 곡식이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모두 이 세상에 출산되고 그 죄성을 회복해 처음 주님 형상대로 깨진 정체성에서 자기의 정체성과 주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연합할 때까지 이 세상은 역사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이유이고 목적은 우리가 왔던 그 하늘나라로 잘 회복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심판을 받을 때, 우리가 다시 부활할 때는 이제 생명책에 기록될 자가 더 이상 없기에 장가가고 시집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의 가정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출생을 하니 낳고 기르고 말씀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죄를 타고 난 사람들이기에 회복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노아의 방주 사건 전에 사람들이 '장가가고 시집가고'라는 마태복음 24장 37절, 구절은 이렇게 하나님 형상 닮은 사람들이 회복하고 축복하신 것처럼 하늘나라의 국민으로 번성하고 양육하며 가정과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뉘앙스가 아닌, 육체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방탕하게 쓴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죄에서 구원을 받고 창세기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내 존재를 알며 우리는 연합체로 만들어졌구나를 아는 과정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인생이다.
그리고 아직 그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태어나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삶에서 온전히 그들의 주님이 되어 연합할 때, 이 세상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의 신앙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하고 주님 주신 축복, 시집가고 장가가서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며 가득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그 자녀를 주님 아는 메신저 역할로 잘 가르치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이 된다.
자녀란 그렇게 내가 낳은 자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 영적으로 낳은 자녀를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