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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채식인 Aug 11. 2020

넌 원래 식탐이 없지?

음식을 마주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10년, 나는 올해 여름휴가라는 것을 처음 써봤다. 나는 태생이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다들 떠나는 7월과 8월에 여름휴가를 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 보다 이른 5월이나 그 보다 늦은 10월 즈음 주말에 잠시 가까운 곳을 다녀가곤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그들의 방학에 맞춰 여름휴가를 가게 됐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두 식구도 함께 했다. 에어비앤비를 사용해서 강릉 횡성의 큰 숙소를 예약했다. 세 식구가 들어가서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가 되는 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한테 물었다. “너는 원래 식탐이 없지?” 평소 내가 채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막상 함께 지내면서 나 먹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나보다. “식탐? 먹는 것도 좋아하고 잘 먹는데, 왜?”, “아니, 너 어릴 때도 그렇게 많이 안 먹는 편 아니었나?”, “뭐...많이 먹을 때도 있는데 특별히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했지.”, “그치?” 친구는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은 없다는 내 말에서 원하는 답을 들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도 다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 시작 이후 처음 보낸 여름휴가도 끝이 나고 이번 주말에 아내와 함께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불현듯 그 친구의 질문이 다시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왜 평소에도 그렇게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하면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의 훈육을 아버지가 도맡았다. 아마 우리 집 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집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정말 무서웠는데 특히 밥상머리에서는 더욱 그랬다. 밥상에서 반찬투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에 대해 감히 평가 할 수 없었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물론 가끔은 나 보다 3살 어린 남동생이 무엇을 먹고 싶다 또는 반찬이 맛이 없다는 말을 해서 집 밖으로 몇 번 쫓겨난 적이 있었다.


당시 엄마가 만든 반찬들도 거의 대부분 손수 만든 음식이었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냉동식품이나 완전 또는 반조리 제품이 슈퍼마켓에 있었지만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경우는 없었다. 그 이유도 아버지 때문인데 아버지는 그런 음식이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고 절대 먹여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 하셨다. 사실 나도 당시에는 학교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싸오는 동그랑땡, 햄, 소시지를 정말 부러워했었다.

꼭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본성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무서웠던 아버지에게 혼이라도 날까 싶어서 그런 반찬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도 못했고 어느 날부터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 아버지의 밥상교육이 지금도 평소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금 하게 만든 주요 원인인 것 같다. 당시는 두려움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 나의 채식 습관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으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루는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셔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어릴 적 나와 동생한테 했던 밥상교육을 자신도 아버지, 그러니까 나한테는 할아버지한테서 받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는 인자하기로 소문이 났지만 반면에 본인만의 삶의 원칙이 있을 만큼 엄한 분이셨다고 한다. 그 원칙 중에 하나가 “음식이 부엌에서 나오면 일절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을 준비할 때는 그 일을 도맡는 사람들 간에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음식이 완성이 되어서 부엌을 나와 상에 차려지면 먹는 사람들은 음식을 두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시는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각이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동시에 버리는 음식 또한 넘쳐나는 요즘 당시에는 무서웠지만 아버지가 해주신 밥상교육에 감사하고 또 그 교육을 삶의 원칙처럼 간직하며 아버지에게 물려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한다. 그 덕에 내가 아직 건강하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있으며 이젠 다른 사람의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라서 사진 속 얼굴 밖에 아는 것이 없지만 오늘은 유난히 할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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