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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채식인 Oct 29. 2020

참 많이 아픈 엄마

왜 하필 채식 [1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유난히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 치과는 극도로 가기를 싫어했다. 소독약 냄새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모두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이가 혹시 썩은 곳이 있는지 검사 한번 받으러 가자는 엄마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왜 이가 아프지도 않은데 나를 데려가려고 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결국 아빠한테 혼이 난 뒤에 반강제로 끌려서 치과에 갔지만 가는 길 내내 엄마가 미웠다. 이런 병원에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아들에 비해 엄마는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왜냐면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중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엄마는 참 건강했다. 엄마 말로는 첫째인 나를 출산하고 몸조리도 잘해서 항상 기운이 넘쳤단다. 옛날 사진 앨범을 봐도 엄마의 두 눈은 초롱초롱했고 두 볼은 발간 것이 혈색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러다 둘째인 내 동생을 낳고 조금은 소홀히 한 몸조리 때문에 조금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강했다. 그런데 엄마가 지금 내 나이 30살 후반이 되던 해 손목에 작은 검은 반점 하나가 생겼다. 첨엔 점이 생긴 건가 하고 그냥 넘겼다. 그리고 조금 간지러워서 긁기 시작했는데 반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 새끼손톱보다 더 작았던 것이 어느새 5백 원짜리 동전만큼 커졌다. 색깔도 점점 더 검 해져만 갔다.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느꼈던 엄마는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엄마의 손목에 생겨난 검은 반점을 이리저리 보더니 알레르기 같다고 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했고 안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이 지나도 그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덩달아 몸이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시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피검사를 해보더니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뿔싸! 뭔가 잘못되었구나.' 그제서야 엄마는 이것이 단순한 알레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며칠 뒤 대학 병원을 다녀온 엄마와 아빠는 시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께 결과를 알려드렸다. "어머님, 재성이 엄마가 만성신부전증에 걸렸다네요." 아빠는 엄마의 병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할머니께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엄마가 감기와 같은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내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성 신부전증은 우리 몸에 콩팥이 제 역할을 잘 못하는 병이다. 콩팥은 우리 몸에 생긴 노폐물을 걸러서 몸 밖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데 제 역할을 잘 못하니 결과적으로 몸 안에 노폐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쌓이는 것이다. 엄마 몸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몸 안에 생긴 노폐물이 피부를 통해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엄마의 몸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철이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큰 병에 걸린지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 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집안에 웃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시장 일을 이젠 혼자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바빠졌고, 아버지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엄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약초를 캐느라 산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어머니는 남은 힘을 짜내서 집안일을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굴에 들어온 듯했다.


재촉하지 않아도 금세 흘러가버리는 것이 시간이라 했던가. 만성 신부전증에 걸린지도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병원 의사들의 말과 달리 엄마는 기적적으로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훗날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프다는 사실 하나로 인생을 우울하게 보내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자신이 아프다는 생각을 잊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의 회복과 동시에 한때 떠나갔던 웃음도 우리 집에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몸을 잘 관리한 덕분에 엄마는 생활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신장 수치를 잘 유지하고 있다.


짧게 소개했지만 이렇게 엄마가 만성 신부전증에 걸리고 회복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8년 정도가 된다. 그 안에는 당시 정말 심각했던 일들도 제법 많이 일어났으며, 특히나 엄마의 몸 상태에 따라서 집안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도 큰 화두 하나가 들어왔다. 그건 바로 "건강"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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