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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채식인 Dec 17. 2020

채식도 급하면 체한다

채식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가장 많이 부딪힌 사람은 바로 아내다. 아내의 갑상선 암 치료를 위해서 시작한 채식이었는데 아내와 갈등이 있다는 게 의아하지만 사실이다. 나의 급한 성격 때문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성격이 급했다. 좀 차분해지라며 엄마는 나를 서예학원에 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서예 실력은 좋아서 전국 대회에서도 입상을 했지만 급한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연치유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암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매 순간 그리고 매일 고민하던 때였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은 책 속에서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시 아내가 건강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날로 커졌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읽은 내용에 대해서 아내를 앞에 앉혀놓고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아내도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새롭게 알게 된 건강 관련 정보를 유익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내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졌다. 때로는 아예 듣고 싶지 않아 할 때도 있었다. 이때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나름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시작한 건강 공부와 채식인데 정작 아내는 관심을 덜 갖는 듯했다. 그리고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들도 가끔 먹기도 했다. 난 급해졌고 그런 아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여보! 내가 지금 나만 건강해지자고 하는 거야? 왜 여보는 관심이 없어? 이러다가 잘못되어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려고 해?" 처음에는 아내를 설득하고자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가끔은 목소리가 커지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의 급한 성격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질 않았다는 것이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비난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변화를 원한다면 잘못을 일러주는 대신 칭찬을 많이 하라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천이 쉽지 않았다. "저러다 건강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독극물이나 세균 감염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급한 내 성격 탓에 아내가 하는 행동들이 조만간 아내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재워놓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요즘 너무 힘들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몸이 안 좋은 것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모두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장 힘들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그게 뭔데?" 짧은 내 질문에 아내는 "당신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만큼 아내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믿었는데, 아내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 아내가 나한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여보, 난 당신에게 고마운 것이 하나 있어. 당신은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 돌이켜보니 나의 급한 성격은 일방적으로 아내를 바꾸려고 했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한 행동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아내에게 책에 나온 이야기를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 집에서 힘들게 육아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채식까지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 일이 있고 2년 뒤 지금 아내는 감사하게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 함께 있다. 채식도 꾸준히 하고 올해로 4살, 6살 된 아이들까지도 채식으로 챙겨주고 매일 회사에 챙겨가는 내 도시락도 아내가 채식으로 챙겨준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채식도 그렇다. 수십년 길러온 기존의 식습관이 어찌 한 번에 바뀔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은 물론 그런 사람을 옆에서 돕는 사람도 모두 차분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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