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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Sep 27. 2024

발목 골절 사건

나는 에너자이저 아줌마였는데..

오늘 골절 사고가 난 지 정확히 4개월이 되었다. 지난달에 3개월 동안의 깁스를 풀고 보호대 부츠로 한 2주 동안 절뚝거리다가 주말에는 그 두터운 부츠를 신기 답답해서 살살 빼고 걸었는데 괜찮아졌다. 그리고 주중에도 계속 목발 빼고 두 발로 걸어 보았더니 나쁘지 않았다.

정형외과 의사와 오늘 내진 스케줄이 있어서 병원에 방문하여 최근 찍은 왼쪽 발목 엑스레이를 보여주더니 4개월 사이에 뼈가 많이 붙었다면서 축하해 주었다!

"이제 저를 다시 보러 6개월 후에 오세요!"

아.. 나에게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두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술받은 지 8주가 돼 가는 시기라  당연히 깁스를 풀을 줄 알었다. 하지만 엑스레이와 내 발목을 살펴보더니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깁스를 다시 한 달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아.. 내 나이를 생각 못했네. 50살이 넘어서 이제 뼈가 어린애들처럼 빨리 붙지 못하는구나..

절망적인 상황인지라 집에 돌아와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다리는 언제 좋아질까? 이 긴 여름 깁스에 쌓여 있는 내 왼쪽 다리는 점점 더 말라비틀어지고 있는데..

7월 말 폭염의 날씨 속에 나는 주말이 되어도 계속 침대에서 뒹굴며 의욕도 없었고, 내 진짜 모습이 아닌 것에 더 우울했다.


나는 최근 아이들이 둘 다 대학을 간 후라 엄청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전엔 헬스장에 가서 기구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땀을 흠뻑 내며 몸을 풀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골프장으로 달려가서 내 체력을 마구마구 뿜어 냈었다.

일요일도 스케줄은 만만치 않았다. 가끔은 부부동반으로 일요일 오후에도 티업 할 때가 있었다. 아침 7시부터 교회에 가서 1부 성가대 연습하고 예배 보고 다시 성가대복을 벗고 주일 한국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그렇게 교회 1,2층을 뛰어다니며 교회 Duty를 마친 후 다시 골프복으로 갈아입고 필드로 나가는 나를 보며 혼자 읊조렸었다. 나는 정말 못 말리는 에너자이저 아줌마다!


그런 나의 주말이었는데.. 골절 사고 후 모든 것이 All Stop이 되었다. 혼자 목발을 짚고 화장실 겨우 가는 게 내 움직임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다. 울 남편이 내 수발을 다 들어주고 밥을 삼시 세끼 다 챙겨주고 완벽한 간병인의 자세가 돼 있었다. 무뚝뚝한 남편이었기에 거의 기대를 안 했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나는 집안일을 1도 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남편이 방으로 밥을 챙겨 다 주고 집안 살림도 척척 해 나갔다.

빨래도 해서 햇볕에 잘 말린 후 반듯하게 잘 개 놓고, 강아지도 챙겨서 어느새 울애견은 아빠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예전에는 엄마 바보였는데~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우리 남편의 살림솜씨! 정말 칭찬해! 알라뷰 남편~


그리고 우리 아들도 달라졌다.

대학교 졸업 후 집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는 중인데 대학 4년 동안 너무 공부가 힘들었다면서 좀 쉬고 싶다고 한다.

나는 잔소리도 하고 싶고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 다리가 더 절박한 상황이고 내 코가 석자라 아들에게 뭐라 못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교회에 다시 나가고 싶은데 운전 좀 해달라고 해보았다. 남편이 1부 예배를 드리지만 너무 꼭두새벽시간이라 그때는 같이 못 가고 아들에게 이 핑계로 같이 2부 예배를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아들은 흔쾌히 아침 8시 반에 일어나서 교회 갈 준비를 했다. 가끔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고 늦게 들어왔을 텐데 군말 없이 일요일이면 교회에 같이 갔다. 처음에는 몇 주만 이러다가 다시 못 일어나겠지 싶었는데 이제 4달째 되는데 점점 습관이 돼서 주일날은 교회 같이 가는 날로 자리를 잡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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