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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바나 Aug 03. 2024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 사실 충분한 건데...

저명한 상담심리학자 칼로저스는 모든 유기체는 변화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걸 실현화경향성이라고 하는데 그의 긍정심리학 전체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생각해 볼 만한 견해이고 어쩌면 사실이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유기체 (그러니까 나무, 꽃, 강아지, 벌레와 같은 식물, 동물, 곤충)에게도 이 경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아기가 걸으려고 발버둥 칠 때,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라나는 소나무를 볼 때 우리는 실현화가능성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생명은 참 품이 많이 든다. 우리 생명 하나 지키자고 몸의 장기와 뇌가 얼마나 치열하고 철저하게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알게 된다. 집이라는 것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관리해주지 않으면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진다. 환기도 시켜주고 먼지도 쓸어주고 고장 난 곳은 그때그때 고치고 해 줘야 집이 집 같아진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운동과 샤워로 주기적으로 노폐물을 배출해줘야 하고 근육을 적절하게 써서 약해지지 않게 유지해줘야 하고 아픈 곳은 그때그때 치료받아야 한다. 이사를 하다 보면 겨우 인간하나 사는데  필요한 것도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수고하는 이유우리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수고가 때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 몸의 에너지가 떨어지고 나면 생명의 무게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당연해 보였던 건강한 삶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냥 생명과 삶을 현상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성장했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도 높은 기준을 들이미는 사회때문에 무시해 왔던 작은 성취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이 깨달음은 에너지가 적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몇 안 되는 이점인 듯싶다. 에너지가 충분할 땐 너무 당연하기에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요즘 나는 가까운 이의 투병기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좀 오래된 투병기이고 병마와 싸우기도 벅찬데 해야 할 과제마저 산더미인 상황이라 사실 답이 없는 그런 현실이다. 그렇게 많은 기능을 잃고 잃어가는 그 사람을 볼 때면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상태 그대로 버티어 나가아 가는 것만으로 훌륭하다. 그걸 많은 사람이 알고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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