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치열하고도 게을렀던 20대 시절이 그립다. 마음껏 공상하고, 이상을 꿈꾸며, 영성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며, 어디든 자유롭게 다녔던 때였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에는 마치 무거운 추들이 달려 현실이라는 땅에 디딘 느낌이 든다.
마치 닻을 내리고 정박한 배처럼 휩쓸려가지 않는 안정감은 생겼지만, 현실을 살아내느라 너무 바쁠 때면 어딘가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계산을 해야 할 세금과 가스비와 고지서가 없고, 챙겨야 할 아이의 가방이나 물통과 알림장이 없는 세상으로 말이다.
40이 된 지금의 나는 20대 때 내가 읽었던 그들나 가르침들을 몸으로 복습하고 있는 느낌이다. 책 속의 활자나 여러 만남 속에서 다듬어져 왔던 내가 추구했던 가치, 꿈꾸었던 이상과 목표, 진정한 사랑과 행복, 삶과 죽음의 의미를 매일 연습하며, 살아내는 것만 같다.
@사진첩에서 찾아본 20대 때 사진들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싶어, 때론 체한 듯이 고장 났던 청춘이 지나고 나니,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중년이 시작되었다. 여러 역할들 속에서 때론 버겁지만, 때론 그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고 길이기에 받아들이고자 한다.
한계를 넘어설 때 숨을 고르며 모든 것이 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허용하다 보면, 마음은 마치 강물처럼 점차 넓어지고, 깊어진다. 모든 것이 변하고 흐른다는 진실 속에서 나라고 하는 것들이 녹아내린다.
뒤돌아보면, 이 생에 참 여러 생을 산 것만 같다. 그만큼 여러 번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들을 해왔던 삶이었다. 많은 나라에서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직접 다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출가를 하려 했다가 엄마가 되는 선택을 했다.
지금 보니 죽을 뻔한 경험도, 환희의 순간도 씨실과 날실처럼 그저 삶의 무늬로 남아있다. 그 흔적들과 궤적들은여전히 사랑이라는 이정표로 향해있다. 정말인지 내가 왔던 세계로 돌아가는 날, 미련 없이 훌훌 떠날 수 있게,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심수봉님의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내가 세상에 나올때/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백만송이 피워 오라는/진실한 사랑 할 때만/피어나는 사랑의 장미/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20대 때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현재가 나의 과거를 깊이 끌어안는다. 아련하고, 애틋한 청춘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짙게 퍼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