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롭지엥 Oct 31. 2020

Why를 배운 아이, Yes를 강요하는  엄마

너도 크고, 나도 성장하자.

"어른이 물어보면 네! 하고 대답해야지, 꼬박꼬박 어른한테 말대꾸를 하다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


흥분하여 호통을 치는 엄마를 물끄러미 보던 딸은

"엄마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라고 대답을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왜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였습니다.


토종 엄마 vs 영국 물 먹은 아이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권위'란 없는 건가?

엄마가 하는 말마다 꼬박꼬박 말대꾸를 합니다.


어른이 하는 말에 수긍하고, 네!라고 대답하라고 교육받은 한국 엄마는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이 맘에 들지 않았고, 그런 아이들을 잔소리로 들들 볶기 시작합니다.


육아서에서 나오는 '귀감'이 되는 엄마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엄마, '공감해' 주는 엄마였습니다.


저는 육아서를 찾아 많이 읽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육아서에 나온 엄마의 모습을 흉내만 내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에게 늘 본인의 의사를 물어봐주는 의견을 '들어주는' 엄마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의견을 '말하는' 엄마, '강요하는' 엄마였습니다.


한국 토종 엄마와 어설프게 영국 물?을 먹은 아이와의 사고방식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 갔습니다.


저는 Yes를 가르치는 한국 엄마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Why를 외칩니다.


Yes와 Why는 다른 영어 철자만큼이나, 극과 극의 커다란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저 또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 저의 여자 중학교 수학선생님의 별명은 얼룩말 스타킹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무조건 Yes로 대답해야 했는데, 왜요?라고 대답을 했다가는 회초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종아리를 보기 좋게 때려놓아서, 위에 스타킹을 신으면 얼룩말 스타킹이 된다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자란 엄마는 무엇이든지 왜!라는 접근법으로 따져보고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집니다.


영국 교육이 그러하더군요. 따져보고 타당한 이유를 확인해봅니다.


그리고 어른이라도 다 완벽한 존재는 아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묻고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무조건 Yes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집에서 부모의 행동이 이상하면 직접 부모를 경찰에 신고라고 가르칩니다.





한국적 사고를 가진 엄마와, 영국에서만 '학교를 다녀 본 아이'는 늘 부딪혔습니다.


고단한 해외 생활의 외로움만큼이나,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의외로 첫째 아이와의 갈등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또래 아이들과 늘 비교해서 아이의 학업의 진도에 대해 늘 채근했던 엄마.

들어주는 엄마가 아닌, 엄마의 권위를 찾으려 했던 엄마.

4살 차이가 나는 동생의 응석은 늘 받아주면서, 첫째라고 의젓함만 요구했던 엄마.


그런 엄마와, 그걸 용납할 수 없는 저의 첫째 아이는 서로에게 상처를 내가며 시린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겪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적 사고를 가진 엄마와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자녀의 갈등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해외 주재원의 자녀 혹은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입니다.



너도 크고, 나도 성장하자.


비록 엄마가 아직은 부족하지만,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엄마가 되도록 계속 노력할게.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언제나 네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기다릴게.


엄마는 네가 키만 훌쩍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커다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도 마음을 열고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해 줘라.


그렇게 우리 손잡고 같이 성장하자.






이전 14화 진짜 영국여우를 마주친, 그 할로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