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May 19. 2023

초록색의 아이들이 있어요  

얼마 전부터 하나의 글에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고, 조회수가 증가하였다. 그러더니 그 글에만 좋아요가 500개를 돌파하는 게 아닌가! 요즘 나는 브런치에 글도 올리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쿠바에서 매일 글을 쓰던 그때였지.

지금은 발행 취소 글에 들어가 있는, 나의 첫 책 <어쩌다 쿠바>의 2장에 있는 <45살에 결혼하면 좋습니다>라는 글이 빛과 같은 속도로 조회수가 1만이 되고, 5만을 넘더니 15만까지 올라갔더랬다. 모든 게 더디게 흘러가던 시간이 멈춘 나라에서 갑작스러운 글 한 편의 조회수와 띵띵띵 소리를 멈추지 않던 좋아요 수는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명상을 하던 나를 멈추고는,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3G 핸드폰만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결국 나를 브런치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에린이가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간 것을 발견하였고,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 나는 그저 신기함에 웃고만 있었다. 남편에게 10만이 넘은 조회수를 보여주자 트레이드 마크인 함박꽃 웃음으로, "축하합니다 자기!"를 연발하며 나보다 더 신나 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 중 그 글이 역대 조회수가 최고였다. 첫 책을 탄생시킬 때, 편집을 하면서 수도 없이 읽었는데도 지루하지가 않았을 만큼 재미가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 년 반 전에 쓴 글이 잠잠하던 나의 브런치에 숨을 불어주고 있어 독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강력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45살에 결혼해서 안타까운 딱 한 가지>를 읽으시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2022년 5월 25일 저녁, 월급날이라 팀원이랑 함께 저녁을 먹던 그 식당에서 발생한 일로 내 생애 처음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고,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원해도 이번 생에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자궁이 사라져 버렸으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걸 경험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알고 보면 수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내 것이 되었을 때에는 남들에게 듣던 일과는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린다. 큰 일 앞에 덤덤하고, 그걸 큰 일이라 여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우선적으로 찾는 나에게 수술은 너무 쉬운 결정이었고 사고 일주일 만에 수술을 하면서 그동안 잘 있던 자궁을 제거해 버렸다.


쿠바 남자와 결혼해서 결혼하고 바로 쿠바로 이민을 갔던 내가 코로나로 잠시 쉬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결국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게 되면서 새로운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내 몸이 견디지 못할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밥을 먹는데 심각한 하혈이 시작되었고 식당 의자가 시뻘겋게 물들어 버렸으니,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어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밤에 또다시 시작된 하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가서 밤새 검사하고, 수혈을 받았더니 나에게는 수술이라는 결정밖에 내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마음에 여유가 생겨나니,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순간이 왔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그런 서글픈 안타까움이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게 더 이상 나의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걸 깨닫자 내가 한 선택이 맞는 건지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 조금 더 알아볼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발생해도 내 성격상 나는 수술을 택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그 생각은 거두어내었지만 말이다.


사고 일주년이 되어 가니 조금만 머리가 아프거나 몸이 지치면 두려움이 살짝 감싸기도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남편이 옆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두자. 아직은 한국말을 잘 못해서 119에 전화도 못하고 병원에도 못 데려가겠지만, 그래도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내 편이 있으니 혼자일 때보다 백배, 천배, 만 배는 좋다.


요즈음 나의 가장 큰 낙은, 매일 초록초록한 나의 아이들이 쑥쑥 크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온 것이 이렇게 크나큰 기쁨을 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남편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게 또 다른 낙이라면 낙이라고 할까. 우리 집 옥상이 남편의 손 끝으로 매일매일 변신하고 있으니. 오늘은 또 무슨 변신이 있을지 남편의 손끝에 기대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얼른 나의 그리고 우리의 초록색의 아이들을 보러 가야겠다.


저의 초록이들을 일부만 소개할게요. 이쁘게 봐주세용:)

남편이 종이컵에 심은 씨앗들이 쑥쑥 자라남-상추, 양상추, 얼갈이, 해바라기
당근 씨앗이 이렇게 자랐어요
토마토와 딸기는 모종을 사서 키움
매일 조금씩 쿠바로 변신중인 옥상에서 잠시 휴식중인 귀여운 내편


좋아요 500개 돌파한 글

https://brunch.co.kr/@lindacrelo/170

작가의 이전글 잘 자라줘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