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Jun 01. 2023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였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온 게.

첫 번째는 출판사를 통해서 모 방송국 TV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고, 이번에는 나의 개인 SNS를 통해서였다.

첫 번째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남편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 프로그램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거라 나도 망설이긴 했는데, 남편의 결사반대로 곧바로 죄송하다는 말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내용을 떠나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아볼 테고 본인은 그런 게 싫다고 했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평소 때에도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동네를 선택한 것도 남산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남편이 외국인이 많은 동네에 살고 싶다고 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외국인들이 많은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본인이 덜 눈에 띌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쿠바에서도 함께 길을 걸으면 외국인인 나보다 큰 키에 누가 봐도 운동선수 같은 피지컬을 가진 남편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더 가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쿠바는 본인의 나라여서 그나마 눈에 띄는 게 덜하겠지만, 서양이 아닌 동양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는 얼굴 색깔도 완전히 다르고 키도 몹시나 크다 보니 외국인들 중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본인이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다.


어제 연락이 온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나도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이라 남편이 출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또다시 거절했다. 이번에는 복잡한 이유였다. 쿠바에 있는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서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의 문화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므로 남편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내용을 전달했는데, 처음에는 좋아하는 듯하다가 잠시 후 안 되겠다고 했다. 만약 친구들이 한국에 오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다시 쿠바로 돌아가면 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남편보다 더 많은 인생경험을 한 나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 오는 게 쿠바에서 일을 그만두고 다시 찾는 것보다 친구들에게 더 많은 인생 경험을 줄텐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이 정말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쿠바에서만 살았던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쿠바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만의 하나 그게 현실이 되면, 모두에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남편은 그런 일을 처음부터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았다.


한국 음식을 한국인들보다 더 맛있게 잘 먹는 남편을 보며 SNS에 먹방을 찍어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한국 음식을 먹는 걸 본 친구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더니 남편의 대답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노'였다. 쿠바에는 먹을 거 구하기가 힘들어서 사람들이 말라가는데, 본인은 한국에서 잘 먹는 걸 SNS에 올려서 쿠바인 한 명이라도 보게라도 된다면 못할 짓이라는 거였다. 남편의 말에 바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에 있을 때 내가 그랬으니까. 쿠바에서 살기 전까지 나는 식탐이라는 걸 경험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더랬다. 그런데 쿠바에서, 식탐이라는 걸, 그리고 음식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구차해질 수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해 보았다. 물론 쿠바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아주 잘 먹고 살이 찌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남편은 얼마나 친구들이 그립고 보고 싶을까?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는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도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행복한 짧은 순간이 지나면 한여름밤의 꿈처럼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 친구들의 마음이 어떨 거라는 것을 잘 아는 남편은 그것이 친구들의 행복보다는 크나 큰 고통이 될 수도 있기에 감히 친구들을 선뜻 초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와 달리 남편은 미리 걱정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반대 성향인 내가 보면 몹시 답답하기도 하나, 자본주의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나와 우리들은 사회주의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을 이해하기 힘든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다.


본인의 조국이 참 아름답고 그립지만, 현실은 우리가 아는 쿠바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남편은 그러한 힘든 현실이 본인을 통해서 한국에 전달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친구들에게 쿠바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면, 친구가 돌아간 후 남편은 그런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며 나에게 조심스레 얘기한다. 내가 하는 남편 욕은 괜찮아도 다른 사람이 내 남편을 욕하면 듣기 싫은 그런 상황과 비슷한 걸까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 걸까?


남편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존중해 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내가 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아... 애증의 쿠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