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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14.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4화-

쿠바에는 소고기가없다구요?


분명 06시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비행기에 탑승하니 오전 9시가 훌쩍 넘었다. 아바나 공항에서 3시간이 넘게 연착이 된 것이었다. 때는 3월이었다. 쿠바는 더운 나라인데 그때 아바나 공항의 새벽은 몹시도 추웠다.(특히나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자 갈 곳 이라고는 아바나 공항 2층의 유일한 카페테리아(카페) 밖에 없었다.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카운터에 가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사 가지고 와서는 자리에 앉았다. 몸을 녹인답시고 따뜻한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여행 갈 때 늘 챙겨가는 긴 스카프가 내 목에 둘려져 있었고 그 스카프를 완전히 펼쳐서 다리까지 덮으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러다가 비행기를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옆을 보니 어린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창가여서 왼쪽 옆에만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자다가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와 내가 얘기를 하게 되었고 멕시코인인 그녀는 치과대학 마지막 학년의 학생이라고 했다. 쿠바에는 학교 친구 몇 명과 학교 일로 처음으로 오게 되었는데 기간이 너무 짧았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그녀와 쿠바 얘기를 주고받다가 치과대학교 학생이라는 말에 내가 질문을 했다.


내가 듣기로 멕시코에는 충치 치료 재료인 레진을 파는 데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너 멕시코 시티에 레진 파는 데 알고 있어?


응, 한 군데 알고 있어. 그런데 거기 가는 길이 복잡하고 가더라도 판매하는 데를 찾기가 힘들어서 혼자서는 못 갈 텐데.


아 그래? 그래도 일단 주소 좀 알려줄래?


응, 정확한 주소는 모르는데 여기로 가면 돼.


라고 하며 그녀는 그 지역의 이름과 어떻게 하면 찾아갈 수 있는지 적어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충치 치료 재료를 물어본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의 어금니가 썩은 데다가 상태가 안 좋아서 딱딱한 것을 잘 못 씹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레진 재료가 없어서 치료를 못한다고 하면서 재료를 구해오라고 한 것이었다. 먼저 한국에 알아보았더니 치과 재료는 일반인이 함부로 구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멕시코에서는 판매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던 것이었다.


그녀와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되었고 고맙게도 그녀는 레진을 판매하는 곳에 함께 가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녀의 집은 멕시코시티가 아닌 다른 도시여서 공항에서 바로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는 일정이었다. 물론 티켓 예약도 미리 해 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항에서 함께 버스터미널에 가서 그녀의 티켓을 늦은 시간으로 변경한 다음 나의 숙소로 가서 내 짐을 놓아두고 치과 재료를 사러 가기로 했다.


각자 입국 수속을 하고는 입국장에서 만났다. 입국장으로 나오니 수많은 환전소들이 나를 반겼다. 자본주의답게 은행마다 환율이 조금씩 달랐다. 불과 3개월 만에 느껴보는 자본주의 느낌에 조금씩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제일 가까운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하고는 그녀의 도움으로 멕시코 심카드를 구입했다. 쿠바는 심카드가 5만 원이 넘는데 멕시코는 심카드가 6천 원 정도(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로 아주 저렴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졸래졸래 따라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혼자였으면 무서워서 못 타 봤을 지하철을 그녀 덕분에 처음으로 타 보았다.


그녀는 티켓을 늦은 시간으로 변경하였고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그리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멕시코도 한국처럼 교통체증이 꽤나 심해서 가는 데 한참 걸렸다. 드디어 택시가 아주 깔끔한 건물 앞에 도착을 했다.


티켓을 바꾸고 수하물을 맡기는 멕시코 친구의 뒷 모습


내가 예약한 민박집은 안전하고 좋은 동네에 24시간 보안요원이 있는 아파트였다. 관리인 아저씨가 민박집에 전화를 하자 민박집 남자 사장님이 나와서 우리를 에스코트하였다. 민박집 사장님에게는 아침에 도착 예정이라고 했는데 비행기가 연착이 된 데다 터미널까지 다녀오느라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도착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민박집에 들어가자 여자 사장님이 있었다. 작고 귀여운 커플이 운영하는 한인민박이었다. 여자 사장님이 조용조용하게 민박집 사용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을 해 주었다. 그동안 함께 간 멕시코 친구는 거실에 잠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친구도 배가 고프다고 했다. 민박집 사장님께 근처에 음식 잘하는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어보고는 트렁크만 방에 두고 나의 새로운 멕시코 친구와 밥을 먹으러 갔다.


사장님이 알려준 곳을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오후 네시쯤 되다 보니 중간 휴식을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걸었고 마침 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도 문이 닫혔길래 ‘여기도 닫혔나?’ 하면서 문을 슬쩍 밀어 보았는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느 신사분이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딱 봐도 멕시코 인인 그 남자는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랐는지 단정한 모습이었다. 마치 레스토랑 주인 같아 보이는 그는 알고 보니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그는 자신의 일행이 아직 아무도 안 와서 혼자인데 합석을 하면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나의 멕시코 친구는 괜찮다고 했고 나도 그 남자가 예의가 발라서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합석을 하게 되었다. 


곧이어 종업원이 우리를 자리로 안내하였다. 걸어가면서 보니 이 레스토랑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손님들도 다 들 점잖아 보였고 서빙을 하는 분들도 아주 프로페셔널했다. 일단 기분이 좋았다. 오픈된 공간도 있고 초록 초록한 인테리어 모두 다 내 맘에 들었다. 알고 보니 그 레스토랑 근처에 무역센터가 있어서 대부분 손님들이 비즈니스맨 아니면 회사원들이었다.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내 복장이 살짝 민망하기는 했으나 신경을 끄기로 했다.


셋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일행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일행은 5명이었고 우리까지 해서 총 7명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내 멕시코 친구와 나는 그곳에서 뭐를 시켜야 할지 몰라서 메뉴를 이리저리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이것저것 시켜서 같이 나눠 먹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좋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테이블에 접시들이 하나씩 놓이기 시작했다.(나는 멕시코 음식을 꽤나 좋아해서 예전에 멕시코에 살 때 역대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더랬다.) 접시에 놓인 모습만 봐도 맛있게 생겼었다. 조금씩 덜어서 먹어보니 역시 다 맛있었다. 처음 보는 분들과 있어서 나름 체면을 차리느라 조금씩밖에 안 먹은 게 후회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레스토랑은 꽤나 괜찮은 곳으로 알려진 데였다.


사진을 올리다보니 또 군침이 돈다


날씨는 화창했고 분위기는 좋았고 음식은 맛났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가 있나! 멕시코인들도 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갖출 건 갖춰야지. 그리고 잠시 후에 라벨에 토끼 그림이 있는 술이 나타났다.


흔히들 멕시코의 술이라고 하면 용설란(아가베)으로 만든 증류주인 떼낄라(Tequila)를 떠올리지만 원래 용설란 증류주는 메스깔(Mezcal)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블루 아가베를 재료로 해서 떼낄라 라는 이름의 지역이 속해 있는 할리스코 주에서 만들어지는 것만 ‘떼낄라’라고 부른다. 마치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 프랑스의 샹빠뉴 지방에서 만든 것만 샴페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토끼 그림의 술은 오아하까 지방에서 만든 메스깔이었다. 데낄라를 좋아하지만 그 전날 잠을 잘 못 잔 데다가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 나는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 본 내 또래 혹은 더 어려 보이는 아저씨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예의상 잔만 받았다.(이런 건 한국이랑 비슷한 듯) 나의 새로운 멕시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술보다는 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지라 술은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조금씩 마시다 보니 맛이 좋았다.


한 잔을 다 마셨고 천천히 또 한 잔을 마셨다. 나와 그녀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마시고 있었는데 우리의 멕시코 아저씨들은 40도가 되는 메스깔을 소주 마시듯 원샷을 참 잘도 하셨다. 그러다 보니 한  병이 두 병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었다. 맛난 밥에 독한 술에 마리아치 노래까지 듣고 나니 내가 멕시코에 있다는 걸 제대로 실감하게 되었다. 


토끼 그림 메스깔 그리고 나의 새로운 멕시코 친구


웃고 즐기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일행 중 한 명이 일이 있다며 먼저 일어나서 갔다.(제일 바빠 보였음) 곧이어 회사 대표인 다른 일행 한 명도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가장 젊잖아 보였던 그분은 술을 엄청 마셨는데도 말도 안 되게 멀쩡했고 게다가 다시 일을 하러 간다고 해서 나와 내 친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계산서가 나왔고 우리를 초대한 그 아저씨가 카드를 꺼내었다. 그가 초대한 한 자리였는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씩 웃고만 있었다. 참 민망한 순간이었다. 그에게 계산서를 보여 달라고 한 후, 내 몫을 대충 계산하고는 그의 테이블에 현금을 살포시 내려놓았다.(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리고는 남은 술병을 챙겨서(술이 반이나 남아있었다) 레스토랑을 나왔고 2차를 가자는 멕시코 아저씨들과는 쿨하게 연락을 단절했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이라 레진을 사러 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남편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떠 올랐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어린 멕시코 친구는 터미널로 가서 가방을 찾고 버스를 타야 했다.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는 그녀에게 나는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비와 터미널에 맡겨둔 가방을 찾는데 필요한 비용을 넉넉히 계산해서 그녀의 손에 살며시 쥐어 주었다. 그녀는 살짝 놀라더니 고맙다고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헤어진 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나에게 연락을 했고 레진 판매상에 확인을 해 보니 배달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몹시나 고마워 배달을 하려고 했는데 주말이 끼면서 시간대가 맞지 않아 결국 그때에는 레진을 못 사고 그냥 돌아오게 되었다. 레진은 6월에 다시 멕시코에 장 보러 갔을 때, 3월에 한인민박집에서 만났던 우남대 학생이던 동생 윤희의 도움으로 학교 근처 치과 재료상에서 결국 구입을 하게 되었다.






멕시코 친구를 보내고는 레스토랑에서 챙겨 온 술병을 가지고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밥만 먹고 온다며 가방을 두고 나갔던 내가 저녁이 다 되어 술이 반 병쯤 채워진 술 한 병을 가져오자 민박집 사장님이 ‘저 사람 뭐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민박집 사장님 커플과 처음 만난 민박집 손님들에게 자초지종을 신나게 얘기해 주었다. 다들 ‘저 언니 오자마자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듣는 것 같았다.


새벽부터 설쳐대서 피곤한 데다 술까지 한 잔 들어갔더니 에너지가 소진이 되어 첫날의 남은 시간은 조용히 침대에서 보내기로 했다. 자본주의 국가답게 wifi 가 방에서도 되었다.(이런 거 하나하나에 감동이다) 그 당시 쿠바는 핸드폰에서 3G를 할 수 있는 패키지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때였고 나는 여전히 인터넷 공원에서만 가끔씩 인터넷을 할 때였다.(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인터넷이 되니 몸은 피곤한데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할 게 너무 많았다. 이것저것 다운을 받고 그동안 못 봤던 유튜브(유튜브는 데이터가 많이 소모가 되어 지금도 거의 못 본다)를 맘껏 보기 시작했다. 밤새 핸드폰을 옆에 두고 자다가 보고 자다가 보느라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한식 조식을 먹는 날이었다. 슬슬 일어나 부스스한 몰골로 거실에 나가 보았다. 사장님이 상에 반찬을 몇 군데 나누어 놓아두면 각자가 알아서 부엌에 가서 밥과 국을 떠 와서 먹는 형태였다. 부엌을 가 보니 한국 밥솥 안에 찰진 흰쌀밥이 가득했다. 너무 그리웠던 하얀 찰진밥이었다. 원래 밥을 많이는 안 먹는데(반찬을 많이 먹는다) 오랜만에 한국 밥을 보니 욕심이 생겨 밥도 한가득 뜨고 국도 가득 담아와서 이것저것 반찬과 먹어보았다. 정말 꿀맛이었다. 밥도 맛있고 국도 맛있고 반찬들도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사장님들에게 ‘이렇게 다 맛있으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호들갑을 떨고는 담아온 밥과 국을 싹 비웠다. 그랬더니 너무 배가 불러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앉아서 사장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커피까지 한잔 하고는 거의 점심때가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했다. 각자 밥과 국을 챙겨 먹고 나서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아주 깔끔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민박집 사장님 커플은 둘 다 작고 귀여워서 각자 큰 꼬망, 작은 꼬망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민박집 이름도 ‘꼬망스네’였다. 이름도 귀여웠다. 사장님들에게 장 보러 멕시코에 왔다고 얘기를 하였더니 코스트코를 가는데 같이 갈 건지 물어보셨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당연히 같이 가겠다고 했다. 멤버십 카드가 있는 사장님 커플과 코스트코를 가니 또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일부러 나를 배려해서 코스트코를 간 것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이 좀 지났을 뿐인데 물자가 너무나도 부족한 쿠바에 살다 보니 이런 자본주의 마켓을 가면 나는 그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난 마켓을 아주 좋아한다.



멕시코에 오면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소고기를 먹는 거였다.






소는 태어나자마자 신고대상이라 국가에서 관리를 하고 소를 죽이면 20년간 감옥에서 징역을 살아야 하는 쿠바에서 소고기를 먹는 건 금기사항이었다. 하지만 지하경제가 발달한 쿠바가 아니던가? 먹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구해서 먹는다는 뜻이다. 쿠바에서 소고기를 먹는 경우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소고기 요리를 판매하는 몇 안 되는 비싼 레스토랑에 간다. 그런 곳은 대부분 정부 고위 관리와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이다. 아니면 소고기를 구할 수도 팔 수도 없을 테니. 그런 레스토랑에서 파는 소고기 요리를 몇 번 먹어보았는데 질겨서 내 입에는 안 맞았다. 그래서 가끔 소고기가 그리울 때 나는 특급호텔에 가서 쇠고기 패티 햄버거를 먹으며 기분을 달랜다.

두 번째, 큰 시장 돼지고기 파는 곳에서 뒤로 몰래 파는 쿠바산 쇠고기를 산다. 불법으로 판매하고 불법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비싼데 비해서 고기가 너무 질겨서 미역국을 할 때 넣어서 푹 끓여서 먹으면 딱 좋은 수준이다. 이것도 늘 있는 건 아니다. 요즘은 돼지고기조차 없어서 고기 파는 매대가 텅텅 비어 있다고 남편이 말했다.

세 번째, 브라질산 냉동 쇠고기를 파는 슈퍼가 아바나 시내에 한 군데 있는데 가끔 판매를 하므로 운 좋으면 살 수가 있다. 1킬로에 2만 원 정도인데 고기가 생각보다 많이 질기지는 않다. 쿠바 소고기보다는 품질(?)이 낫다.(오래되긴 했지만) 그리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슈퍼에서 파는 거니까 이건 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남편에게 저 세 가지 방법 외에 혹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경우가 있는지 물어보니 시골에 직접 가서 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물론 불법이다.


예전에 남편이 소고기에 관해서 해 준 이야기가 있었다. 소를 키우다가 송아지가 두 마리 생기면 한 마리만 국가에 신고하고 한 마리는 몰래 키워서 잡아먹는다고 했다.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먹는 거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소고기를 먹으려고 기차가 오는 철길에 소를 데려가서 기차에 받쳐서 죽게 한 다음 정부에는 소가 뛰쳐나가서 기차에 받쳐서 죽었다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기관사가 내려서 기차에 받친 소는 내 거라고 하는 바람에 소 주인이랑 네 거니 내 거니 하면서 싸우는 웃픈 일이 있었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소가 너무 불쌍한데 고기를 좋아하는 쿠바인들이 소고기를 못 먹으니 저렇게 해서라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쿠바에서 소를 정부에서 관리를 하고 도축을 개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곳에서는 아직도 소가 밭을 가는 일을 하고 있어서 소는 농사를 함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는 아주 귀한 존재이다. 쿠바에서는 우유도 아주 귀하기 때문이다. 며칠째 남편이 우유(액상 우유 혹은 탈지분유)를 사려고 여기저기 다 가 보았는데 우유가 꽁꽁 숨었는지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고 했다. 우유는 평상시에도 사기가 쉽지 않다.


이건 여담인데, 남편이 한국에 도착하고 며칠 후에 친구들이 을지로에 있는 고급 한우집에 초대를 했었다. 남편이 한우를 먹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소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운 거냐고! 그 얘기를 들으며 너무 짠했는데 내가 쿠바에 살아보니 남편의 말이 백번 이해가 되었다. 외국에서 소고기를 안 먹어 본 쿠바인들은 아마도 소고기는 원래 질긴 거라고 생각하며 살 것이다. 질기더라도 먹을 수 있음 다행이다.






(다시 코스트코로 돌아가서)
그래서 나는 등급이 높은 좋은 소고기를 샀다. 그리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도 한 단 샀다. 그것도 유기농으로. 생필품들도 이것저것 샀다. 코스트코는 대량으로 판매를 하는 데라 내가 살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휴대용 클리넥스와 건전지, 일회용 면도기는 아주 좋은 가격으로 잘 산 것 같았다. 특히 품질이 좋은 일회용 면도기는 쿠바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아주 좋아서 남편이 아주 좋아했다.


그 날, 두 꼬망 사장님들은 쿠바에서 온 고기에 굶주린 가엾은 나를 위해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일차로 사장님이 사 온 삼겹살을 먹고는 이차로 내가 사 온 소고기를 먹었다. 삼겹살에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버섯을 함께 구워서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거기에 김치까지 구워서 먹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멕시코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 말을 실컷 하며 한국 음식을 원 없이 먹으니 어찌나 좋은지. 끊임없이 먹으며 얘기하다 보니 사장님 커플이랑 또 죽이 왜 이렇게 잘 맞는지. 그렇게 우리는 새벽 4시 넘어서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뽕을 뽑을 만큼 놀고는 조용히 각자 침대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또 한식을 먹었다. 


아 지금도 생각난다. 귀여운 두 꼬망 커플(지금은 친한 동생들이 되었다)이 섹시한 현아의 ‘트러블 메이커’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춤을 따라 하는데 어찌나 귀엽든지! 넘나 귀여워서 증거도 잘 남겨놓았다.


신나게 먹고 놀며 오래간만에 회포를 푼 다음날에 나는 또 다른 쇼핑을 위해 출동을 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 볼까? 쿠바에 없는 게 또 뭐가 있을까?(없는 거보다 있는 거 얘기하는 게 빠르다고 쿠바인들은 농담조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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