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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04.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3화-

내가 삼 개월마다 쇼핑하는 이유


나는 쿠바에서 2018년 12월에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했다고 해서 내 비자 상태가 변경되는 게 아니어서 3개월마다 비자 클리어를 하기 위해서 외국을 나갔다 들어와야 했다. 그리고 외국을 나가지 않는 달에는 아바나에 있는 이민국에 가서 매 달 비자를 연장해야 했다.(쿠바 관광 비자는 최대 30일이고 90일마다 외국을 나갔다 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는 데에는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유난히도 더웠던 작년 5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할까 말까 수차례 고민을 하다가(쿠바에 계속 살지 말지 결정하느라) 결국 하기로 결정한 쿠바 영주권을 신청했다. 당시 영주권 신청 조건 중에 혼인신고를 한 후 6개월 안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결국 나는 그 6개월이 채워지기 반 개월 전에 영주권 신청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몇 달간 준비한 서류를 가지고 남편과 함께 이민국에 가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 심사를 하는데 서류 하나에 작은 문제가 있는 걸 심사관이 발견했다. 깜짝 놀란 남편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해당 서류를 들고 공증사무소로 달려갔고 나는 심사관의 요청대로 대기실에서 남편이 올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리게 되었다. 한 시간이 좀 넘게 지나자 땀으로 온몸이 범벅된 남편이 돌아왔고 아주 아슬아슬하게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며 몹시 뿌듯해했다.


심사관에게 남편이 돌아온 걸 알려주었고 우리는 또다시 기다렸다. 한 시간을 더 기다린 후 다시 심사관과 대면을 했고 그녀는 수정된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더니 나에게 쿠바에서 지금 뭐 하는지, 앞으로는 뭘 하고 살지 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나는 편안하게 대답을 잘했고 6시간이 좀 넘게 걸린 쿠바 영주권 신청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혹시나 빠뜨린 게 없나 생각하다가(질문 하나 하기가 몹시 힘들어 기회가 될 때 무조건 해야 한다) 자리를 뜨기 직전에 심사관에게 확인 차 물어보었다.


내 비자는 아직 관광 비자니까 영주권 받을 때까지는 계속 3개월마다 외국에 나갔다 들어와야 하는 거 맞지?”


아니야. 잘 들어! 작년까지는 혼인 신고하고 나면 6개월 동안 나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부터는 법이 바뀌어서 1년 간 안 나가도 돼.


(깜짝 놀라며) 뭐라고? 1년 동안 안 나가도 된다고? 나 6월에 멕시코 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아, 그래? 네 볼일 보러 가는 거지?


(순간 당황해서) 응... 그렇지... 내 볼일 보러 가는 거야...



알고 보니 남편의 친구와 초등학교 동창인 까칠했던 그녀는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했고 나는 고맙다고 하고는 남편과 이민국을 나왔다.


이게 뭔 말인가?


남편과 나는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2018년 12월에 혼인 신고를 하고 2019년 1월과 2월에 이민국에 가서 비자 연장을 했고 3월에 멕시코를 갔다 와서 4월과 5월에 또 비자 연장을 하는 동안 어떠한 심사관도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비자 연장을 할 때마다 나는 혼인 신고서 원본을 가지고 가서 보여주었고 그들은 서류 번호를 매 번 기록하였다. 남편도 늘 나와 함께 있었는데 혼인신고를 했으니 매 달 이민국에 와서 비자 연장을 할 필요도 없고 3개월에 한 번씩 외국에 나갔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아무도 해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혼인 신고를 하고 6개월 후에나 알게 되냐고? 만약에 영주권 신청을 안 했더라면, 그리고 심사관에게 그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예 이런 사실 조차 몰랐을 테고 하던 대로 계속했을 테다.


‘아… 나 지금 쿠바에 있지? 그래, 쿠바니까 이해해야지. 여기서 뭘 바래?’(욕은 속으로만...%#&!?)


남편이랑 둘이 실컷 욕을 하고는 다시 긍정의 나로 돌아왔다.(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풀린다) 3월에 멕시코를 갔던 것도 그리고 6월에 멕시코 가려고 티켓팅을 해 놓은 것도 결국은 다 잘 된 거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쇼핑도 많이 하고 콧바람도 쐬고 맛난 것도 많이 먹었으니까. 아, 근데 매 달 이민국에 비자 연장하러 가는 건 좀 별로긴 하다. 비자 연장할 때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민국에 가서는 선풍기도 없는 곳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빠르면 2시간 보통은 4시간을 하는 일 없이 앉아서 기다려야 하니까.






처음에 나의 쇼핑 여행은 3개월마다 해야 하는 비자 클리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어차피 비자 때문에 외국을 가야 하니 간 김에 제대로 쇼핑까지 하고 오는 것이었다. 쿠바에 관광비자로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비자 클리어를 하기 위해서 가는 곳은 주로 칸쿤, 마이애미 등인데 나는 멕시코 시티만 3번을 갔었다.




그러면 왜 나는 장을 보러
멕시코시티에 갔을까?



위치상으로 쿠바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144km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이다.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래서 마이애미에는 1959년 1월 1일에 쿠바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카스트로 체제를 반대하는 쿠바인들이 꾸준히 이주를 하여 현재 그곳에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150만 명이 넘는 쿠바인들이 살고 있다.


예전에 미국에 살 때 나도 마이애미의 그 유명한 사우스비치 근처에서 5개월가량 살았더랬다. 그때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같이 살던 미국 언니들(흑인 1, 백인 1)이랑 조식으로 2.99달러짜리 쿠반 브렠퍼스트를 먹고는 사우스비치에 선탠을 하러 갔었더랬다. 나에게 그런 추억을 돋게 하는 마이애미는 가장 가깝다는 이점이 있고 항공권 가격이 저렴하지만 그 외 모든 게 비싸다. 특히 한인마트가 멀리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고 가게 되면 택시비도 장난이 아니고 물건 가격도 저렴하지가 않다고 했다.


쿠바에서 마이애미 다음으로 가까운 곳은 칸쿤이다. 그래서 칸쿤을 가볼까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항공권 가격은 멕시코 시티행 보다 저렴하고 거리도 가까우나 그곳에는 한인마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관광지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쇼핑의 폭이 그리 넓고 다양하지가 못하다. 물론 물가도 멕시코 시티보다 비싸다.


아, 토론토도 있었지? 에어캐나다로 아바나에서 3시 30분이면 가는 그곳은 일박을 해 보니 일단 도시가 너무 컸다. 그러니 이동할 때마다 택시를 타면 교통비도 만만찮을 텐데 토론토의 물가가 그동안 꽤나 많이 올라서 마이애미와 별반 다를 게 없을 듯했다. 그리고 난 추운 건 딱 질색이다.


그럼 멕시코 시티는 어떨까? 마이애미나 칸쿤에 비해서 쬐금 더 멀고(항공으로 2시간 30분 소요) 항공권 값도 좀 더 비싸긴 하나, 나머지 웬만한 게 다 저렴하다. 특히 교통비가 아주 저렴해서 그곳에서는 쇼핑을 위해서 택시(우버)를 마음껏 타고 다녀도 크게 부담이 없다. 게다가 음식값도 저렴하고 쇼핑할 데도 많다. 한인마트도 여러 군데가 있으며 물건들도 꽤나 다양해서 웬만한 건 다 구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멕시코 시티에 밥(한식)을 맛나게 잘해주는 한인 민박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에 혼자 여행 다닐 때에는 주로 유스 호스텔에서 외국인들과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는 한인 민박에서 숙박해 본 경험이 몇 번 없었다. 그때는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여행을 많이 안 다녀서 내가 가는 곳에 동양인 여자는 늘 나 혼자였었다.(그래서 우대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에는 여행 중에 꼭 한국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목적이라 음식도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현지식을 즐겨 먹었더랬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한국음식이 점점 더 당기게 되었다. 특히나 나는 한식 재료를 구할 수가 없는 쿠바에 살다 보니 한국음식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을 만나서 쫑알쫑알 한국말로 얘기하는 것도 무척이나 그리웠었다. 쿠바 살이 초반에는 한국말을 까먹을 정도로(과장 좀 보탬)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비자 클리어 겸 쇼핑을 하러 멕시코 시티에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멕시코 시티 한인민박을 검색해 보았다. 2군데가 있었다. 몇 개의 후기를 읽고 나는 둘 중에 좀 더 마음이 끌리는 곳에 연락을 했고 바로 5박 6일간의 숙박 예약을 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 불편할 것 같긴 했지만 일단 나는 백수라 그런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대신 매일 아침 조식이 한식이라는 조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밥이 맛있다는 후기에 몹시 기대가 되었다.


남편도 같이 가면 참 좋을 텐데 남편은 멕시코에 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쿠바 국적인 남편은 멕시코를 가기 위해서 멕시코 비자가 필요한 데 쿠바인은 멕시코 비자를 받는 것도 아주 어렵다.(쿠바인은 쉬운 게 없다 정말!) 쿠바를 벗어나려는 쿠바인들이 어떻게든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불법 체류) 멕시코를 통해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쉬운 멕시코 비자도 쿠바인들에게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랑 같이 멕시코에 가면 혼자 무거운 걸 낑낑대며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물건도 두 배로 사 올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이점이 많다.(게다가 남편은 나의 영원한 보디가드이다) 그래서 남편의 멕시코 비자 신청을 위해서 은행에 일정 금액을 예치하는 것부터 해서 필요한 조건은 다 맞춰 놓았었다. 그런데 갈수록 비자받는 게 힘들어지더니 작년부터는 비자 인터뷰를 받게 해 주는 대가로만 미화 500불(안전하게는 1,000불)을 뒷돈으로 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자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까지 비자를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국 늘 혼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매일 같이 있다가 혼자 콧바람 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좀 좋기도 했다. 호호호


드디어 3월이 되었고 나는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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