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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y 29.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2화-

어리둥절했던 첫 번째 쇼핑


20여 년 만에 밟아 본 멕시코 땅이었다.


아바나에서 출발한 아에로메히꼬(Aeromexico) 항공은 멕시코 시티 공항에 무사히 도착을 하였고 입국장으로 가는 길은 아주 깨끗했다. 그리고 입국 심사 장소가 꽤나 널찍하고 도우미들도 많아서 입국 심사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깜짝 놀랐다.


여기가 내가 알던 그 멕시코라고?






11월 30일에 한국에서 출발한 나와 남편은(함께 한 첫 번째 비행이다) 모스크바에서 14시간 경유라 그곳에서 일 박을 하고 12월 1일에 아바나에 도착하였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 후 삼일 동안 짐 정리를 한 다음 나는 12월 4일에 멕시코에 갔다. 쿠바 혼인 신고 서류에 영사 인증을 받는 게 목표였다.


대한민국 대사관이 쿠바에 없는 설움으로 모든 서류는 멕시코에 가서 멕시코 시티에 주재한 대한민국 영사관과 쿠바 영사관 두 군데에서 영사 인증을 받아와야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한국에서도 외교부에 가서 영사 인증을 받아 왔었다.) 그리고 쿠바에 있는 해당 기관에서는 그 서류들을 꼼꼼히 확인 후 다음 서류를 진행을 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시간도 많이 들지만 돈이 특히 많이 든다. 왜?


쿠바에서 외국인은 호구니까!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하자면, 쿠바에서 외국인 배우자가 혼인 신고를 할 때 영사 인증이 필요한 서류는 총 3종류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스페인어로 번역 공증을 한 이 서류들을 멕시코 주재 대한민국 영사관에 가지고 가면 서류당 미화 4달러인가(기억이 가물가물) 청구를 한다. 그러면 3종류의 서류를 영사 인증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단지 미화 12달러이다.


그런데 그 같은 서류를 쿠바 영사관에서는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나누어 각각의 언어에 영사 인증 비용을 매긴다. 장 당 영사 인증 비용이 약 한국 돈 15만 원이고 3종류에 두 가지 언어이니 총 6장이다. 그럼 영사 인증 비용만 90만 원이 든다. 순 날강도들이다. 나는 혹시 몰라 범죄 수사경력 회보서도 영사 인증을 받았더니 총 8장이어서 120만 원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훗날 이 서류는 영주권 신청에 사용이 되어 또다시 멕시코로 와야 하는 수고는 덜었다.)


아..., 내 사랑은 왜 이리 비싼가요? 


혼인신고 필요 서류에 영사인증을 받는 데에는 2박 3일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 더 여유를 두는 게 좋겠다 싶어 3박 4일로 예약을 했는데 아뿔싸! 2박 3일로 예약을 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밤 비행기로 멕시코에 도착을 해서 다음 날부터 매일 쿠바 영사관에 갔는데 결국 모든 서류가 마무리가 된 게 멕시코 도착 4일째 오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멕시코 항공 예약도 한국에서 짐을 싸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깜박한 탓에 인천 공항에서 쿠바 행 비행기를 탑승한 후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부랴부랴 예약을 하느라 이 짧은 비행(2시간 30분)에 65만 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해야 했다. 미리 예약하지 못한 내 잘못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20여 년 전에 멕시코에 일 년 간 살았지만 남쪽에 위치한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에 살았기 때문에 멕시코 시티는 잘 몰랐다. 한 번 놀러 가보긴 했는데 그 당시 멕시코 시티는 전 세계에서 대기 오염이 당당히 1위여서 공기가 아주 좋지 않았고(하늘이 회색이었다) 도둑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운 마음에 며칠만 있다가 과달라하라로 금세 돌아왔었다.


그런데 다시 가 본 멕시코시티는 엄청나게 발전을 해 있었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는 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물며 내가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는 발을 딛는 순간 와우!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테리어가 감동적이었다. 혼자라 방 하나를 예약했었는데 하루에 $20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파트의 퀄리티는 거의 일박에 $200 수준이었으니 나는 완전 봉 잡은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예약한 이 숙소는 멕시코시티에서 부자들만 산다는 ‘뽈랑꼬(Polanco)’라는 지역에 있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이나 한남동이랄까? 비가 오는 늦은 밤에 도착을 해서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다음 날 아침 쿠바 영사관까지 걸어가면서(30분 정도 걸림) 동네를 살펴보니 ‘여기가 멕시코인가?’ 할 정도로 동네가 아주 정갈했고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도 때깔이 달랐다.


참 멋진 내 숙소의 거실-멕시코답게 프리다 칼로 그림도 세 점 있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쿠바 영사관으로 걸어가는 길이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쿠바 영사관은 아주 유명한 큰 도로의 끝자락 즈음에 있었는데 그곳에 가려면 수많은 명품 샵들과 고급 레스토랑, 커피숍들을 지나가야 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걸어가면서 멋진 숍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의 가게들


첫날 오전에 숙소를 나가서 여기저기에서 볼일을 마친 후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보니 집주인의 어머니라고 하는 중년의 여성이 맞은편 방에서 나왔다. 나는 그녀가 무슨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 우아한 자태에 과하지 않게 친절하였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딸이 유럽에 있는 어느 나라의 축구선수와 결혼을 해서 유럽에 살고 있어서 딸 대신 이 집에 살면서 관리를 해 주고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대략 내 또래 같았지만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에게 근처에 쇼핑할 만한 데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리베르뿔(Liverpool)’을 추천했다. 그곳에 웬만한 건 다 있을 거라고 했다. 월마트는 아주 멀어서 본인은 잘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녀가 알려준 ‘리베르뿔’ 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대형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이면 비쌀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층씩 둘러보았다. 주방 가전제품이 있는 층에 발길이 멈추었다. 예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그곳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핸디 진공청소기를 하나 샀다. 짐이 너무 많아서 쿠바에 가져가려고 샀던 분리형 진공청소기를 한국에서 못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이 청소기를 사면서 리베르뿔 백화점 고객 카드도 받게 되었다. ‘저 여기 안 살아요’ 하면서 괜찮다고 했는데 친절한 아저씨가 하나 있으면 좋을 거라고, 다음에 오면 포인트를 쓸 수 있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훗날 그 포인트가 제대로 일을 했다. 아저씨 고마워요!)


아 참, 내가 백화점에 온 목표가 헤어 드라이기를 사는 거였지?


한국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나의 헤어 드라이기는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에어도 빵빵하게 잘 나오고 성능도 아주 좋았으나 다른 더 중요한 것들을 가져오느라 엄마께 드리고 왔다. 그래서 쿠바에서 사용할 드라이기를 하나 사야 했는데 눈에 띄지를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보고는 결국 백화점 1층에서 살 수가 있었다. 근데 헤어 드라이기가 꽤나 비쌌다. 그래도 샀다. 옵션이 별로 없었으니까. 알고 보니 이태리 수입품이었고 이 드라이기도 내가 한국에서 사용하던 것 못지않게 성능이 아주 좋아서 만족도는 200% 였다. 백화점 식품관에 참기름과 유통기한이 긴 팩 두부가 있길래 그것까지 구입을 하고는 집으로 가려고 나와서 쬐금 걸었는데 스포츠 용품점이 눈에 떡하니 띄었다.


남편은 헬스 그리고 나는 필라테스를 하다 보니 스포츠 용품점이 보이면 자석에 끌리듯 일단 들어가고 본다. 이것저것 한참 살펴보다가 결국 요가매트를 하나 샀다(첫 번째 요가매트이다). 그리고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 남편 운동용 허리 벨트(나이키라 좀 비쌌다)와 수경을 하나 샀다. 그런데 이 수경은 왜 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쿠바에는 실내 수영장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언젠간 유용할 때가 있겠지? 모든 것들은 다 때가 있으니까.


짐이 꽤나 많아졌다. 양 팔에 큰 가방 하나씩을 매고 숙소로 돌아가는 데 큰 슈퍼마켓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를 가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좀 더 속도를 내어 숙소에 도착한 후 쇼핑한 물품들을 한 편에 가지런히 두고는 다시 숙소를 나와 그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뭐야? 여기 다 있었네?


수뻬라마(Superama)라는 그곳에는 오만가지 음식들과 생필품들이 다 있었다. 가격을 찬찬히 살펴보니 아주 저렴했다. 쿠바보다 2~3배 저렴한 건 물론이고 같은 물건도 한국보다 저렴했다. 


띠용! 눈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쿠바보다 세 배나 저렴한 마요네즈-갈 때마다 두 개씩 사 온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 있는 물건들을 다 쓸어오고 싶었지만 나에겐 트렁크가 하나뿐이었다. 이미 부피가 나가는 물건들을 몇 가지 샀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적당히(?) 사야 했다. 일단 쇼핑카트에 옷걸이 한 묶음을 담았다. 그리고 히말라야 핑크 솔트, 아보카도 오일, 마요네즈와 각종 가루들도 다 담았다. 계속 돌다 보니 스팀다리미가 눈에 쏙 들어왔다. 다리미도 안 가져왔으니 너도 함께 가자꾸나, 하며 카트 아래칸으로 모셨다. 무게도 부피도 점점 늘어났다.


아, 이것도 꼭 필요한데...
어머, 이게 왜 여기 있어?
이거도 사고 싶은데 가방에 다 들어갈까?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아쉽지만 몇 가지는 남겨두고 쇼핑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가서 줄을 섰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내가 준비를 해 간 스포츠 용품점에서 준 에코백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에코백을 하나 구입했다. 두 군데에 나눠 담고는 낑낑대며 숙소로 가져왔다.



맞다. 나는 멕시코에 도착 한 둘째 날 오후에(영사관은 오후 1시에 문을 닫음) 한국 식당이 모여있다는 곳을 찾아갔더랬다. 운이 좋게 한국 영사관에서 멕시코 시티의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는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에게 한국 레스토랑과 식품점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아서 간단한 정보가 있었다. (인터넷에 찾으면 정보가 다 나오는데 왜 굳이 물어보냐고 하면 나는 인터넷 데이터를 구입을 하지 않아 숙소에서만 wifi를 사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그래서 밖에서는 인터넷 데이터가 없어서 이동 시에 우버를 탈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한국인들은 잘 타지 않는다는 (위험할 수 있다는) 멕시코 택시를 줄곧 타고 다녔다.(두 번째 방문부터는 달라졌다)


그 학생이 알려준 동네에 도착을 해서 걷다가 눈에 띄는 한국 식당이 있길래 반갑게 들어가서 된장찌개를 시켰다. 그리고는 한국에서는 잘 마시지도 않던 막걸리도 하나 시켰다. 밥값이랑 똑같은 막걸리는 왜 시켜서 결국 반도 못 마시고 버리게 되어 마음이 몹시 아팠다. 별로 맛이 없었던 된장찌개를 깨끗이 먹고는(반찬은 맛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나와서 식료품점이 있다는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아주 작은 한국 식료품점 하나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작은 사이즈의 된장, 고추장, 간장, 천일염, 소주 한 병(한국에서 소주는 마시지도 않았는데), 믹스 커피 등을 샀다. 더 사고 싶었지만 가방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곳을 나와서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가다 보니 다른 한국 식료품점 하나가 또 눈에 띄었다. 아까는 분명 없었는 데 말이지. 그래서 그곳에도 들어가 보았다. 일단 기본적인 것은 샀으니 그냥 둘러만 보고 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국 식료품점, 백화점, 스포츠용품점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구입 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바닥에 진열을 한 다음 하나씩 트렁크에 담기 시작했다. 상자는 사진으로만 남겨두고 모두 버렸다. 차곡차곡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담다 보니 조금 공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들어보니 꽤나 무거워서 이 정도면 수하물 제한 무게인 23킬로는 나오겠다 싶었다.






다음 날 오전에 쿠바 영사관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시간이 남아 마사지까지 받고(내 최애 선글라스를 두고 온 가슴 아픈 곳)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금요일 오후의 멕시코 시티 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금요일에는 사람들이 오후 3시부터 퇴근을 한다더니 차란 차는 모조리 도로에 집합한 것 같았다. 숙소에서 여유 있게 출발을 했는데도 공항에 도착을 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문득 차값이 비싸서 여유로운 쿠바의 도로 상황이 고맙게 느껴졌다.


택시에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가방을 랩핑 해 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인지 보니 멕시코 돈으로 499뻬소였다. 한국 돈으로 약 삼만 원이다.  


12월 1일에 남편과 함께 쿠바 공항에 도착을 해서 가방을 찾았는데 가방 6개 중 1개의 자물쇠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아예 자물쇠를 떼고 편하게 몇 가지 물건들을 훔쳐 간 것이었다. 어쩐지 수하물이 나올 때 정전이 세 번이나 되더라니!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쿠바에 가져가는 트렁크는 무조건 랩핑을 하기로 했다.


랩핑을 하는 곳에 저울이 있어서 일단 가방 무게를 먼저 확인해 보았다. 22킬로였다. 향신료 몇 개를 더 샀어도 됐었다. 하지만 무게가 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위로하며 그 비싼 랩핑을 하고는 (알고 보니 그곳이 다른 데보다 비싼 거였다)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기계로 체크인을 하길래 나도 기계 앞에 서서 여권 앞면을 스캔해 보았다. 그랬더니 나는 목적지가 쿠바여서 기계로는 체크인이 안 된다며 카운터로 가서 직접 체크인을 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참, 안 걸리는 데가 없구먼!


카운터를 가기 전에 쿠바 여행자 카드(비자)를 먼저 구입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아에로메히꼬(Aeromexico) 항공 사무실에 가서 여행자 카드를 구입했다. 그러고 나서 카운터로 갔는데 쿠바행이라고 하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것저것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다른 목적지의 경우는 별 질문이 없는데 말이다.


쿠바 비자 있어요?

비자요? 아... 여행자 카드 말씀하시는구나. 여기 있어요.


양쪽에 동일한 내용을 기재한 비자를 건네주었더니 뭐가 이상한지 자신의 동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한국 여권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뜯어본다고 뭐가 나오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남자 아무래도 초짜인 것 같았다. 아, 시간도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항공사 직원에게, '저기요, 혹시 초짜예요?’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지켜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연구해도 별 게 없으니 그 남자 직원이 씨익 웃으며 ‘여기 있어요!’ 하며 보딩패스를 주었다. 그제야 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Muchas gracias!(대단히 감사합니다!)를 외치고는 곧바로 짐을 챙겨 보딩을 하러 총총걸음을 하였다.


아... 쿠바 한 번 들어가기 차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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