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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y 27.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1화-

휴지 네 칸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이 곳은 자본주의 나라들처럼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만약 물건이 들어오면 줄이 참 길다. 걸어 다니다가 줄이 길면 ‘또 뭐가 들어왔나?’ 하고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별게 아니다. 그럼 난 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만약에 뭔가 특별한 게 있으면 줄 길이를 확인한다. 짧으면 서고 너무 길면 패스다. 그런데 이건 음식뿐 아니라 생필품에도 적용이 되고 ATM에도(돈이 없다), 약국에도(약이 없다) 모든 곳에 적용이 된다. 뭐가 참 없다!






작년 여름에 아바나 시내에 한국 식당이 오픈을 했다. 이 곳에도 불어온 한류의 흐름에 맞게 이름도 BTS(Buenas Tardes Señorita)였다. 찾아가 보았다. 목이 좋은 곳에 위치를 했다. 메뉴는 6개였다. 카레 돈가스 덮밥과 갈비 덮밥이 맛있다고 해서 먹어보았더니 맛있었다. 감자전이 있길래 기쁜 마음에 주문을 했는데 많이 짰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그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린 친해졌다. 20대 청년 두 명이 젊은 패기로 운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스페인어는 할 줄 아세요?”

“아니오”


젊은 그들은 한식당이 없는 쿠바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을 해서 3개월 동안 시장 조사를 하며 준비를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외국인은 이 곳에서 집을 살 수도 없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난 영주권자라 가능하지만) 그래서 그들은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쿠바인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일단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들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재료 공수가 만만찮을 텐데...


그런데 메뉴를 보니 이 식당에는 김치나 된장 같은 전통 한식은 없었고 모두 분식이었다. 그래서 순수 한식 재료는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한 그릇에 한국돈 육천 오백 원 정도였고 가장 비싼 라면밥(라면은 없고 매운 고기 국물에 밥 말아먹는)이 칠천오백 원이었다.(다른 외국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은 더 비싸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저렴할 수밖에 없었고 오픈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가격을 올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또 그들이 걱정되었다. 


월급이 3~4만 원인 쿠바 현지인들에게는 비싸서 먹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 곳의 월세와 재료비 그리고 인건비에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까지 계산을 해보면 저 금액을 받아선 안 되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적에 베트남 식당에 투자를 한 경험(동업자와 마음이 안 맞아서 마지막에 투자 비용을 다 빼 버렸지만)이 있어서 식당을 보면 대략 매출이나 이익이 계산이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쿠바라는 나라는 그들이 생각하는 블루오션이 절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난 비즈니스 오너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젊은 그들은 두 달만에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빨리 잘 접었다고 생각했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잃어버리는 게 훨씬 많고 힘들어질 테니. 그리고 그들은 아직 젊으니까, 젊을 때에는 그런 패기도 있어야 하고 새로운 곳에서 고생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여 나는 이 곳에서 실패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잃은 게 많겠지만 무엇보다 값진 경험을 얻었으니. 그리고 그 경험은 그들이 다음에 다른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확신한다.






[휴지에 관한 에피소드 1]


그동안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볼 때마다 몇 봉지씩 사서 모아두었는데(한 겹인데 작아서 너무 빨리 쓰는 이유로) 작년 여름에 이사를 여러 번 하다 보니 휴지가 몇 개가 남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휴지가 다 떨어져 가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나는 휴지를 찾아 가게를 돌기 시작했다. 생필품인 휴지는 이 가게에도 저 가게에도 없었다. 덥기는 무지 덥고 땀도 엄청나는데 그건 문제 안 되었다.



내 목표는 오직 휴지였다!



휴지가 아무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비닐 안의 내용물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휴지를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몸은 이미 아주머니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니 저기 뒤에 있는 가게에서 샀다고 했다. 냉큼 달려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지막 사람을 확인하고 나도 줄을 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내 앞에서 휴지가 끊겨 버렸다. 더 이상 휴지가 없다고 했다.


뭐라고???


갑자기 맥이 풀렸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가게 점원에게 혹시 휴지가 있는 다른 가게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점원이 어디 어디로 가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조금 먼 거리였다. 가게를 나와서 그곳을 향해 가려는 찰나에 어떤 아저씨가 휴지를 들고 내 앞을 지나갔다. 아저씨를 세우고는 휴지를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보았다. 아저씨가 알려 준 곳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바로 그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들어가 보니 덩그러니 큰 가게였고 사람들은 몇 없었다. 그곳에 휴지가 있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이런 느낌일까?


할렐루야가 나왔다.

몇 안 되는 사람 뒤에 줄을 섰고 휴지 몇 봉지를 샀다. 세어보니 휴지를 사려고 열 군데가 넘는 가게를 뛰어다녔다. 그래도 목표 달성을 하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이렇게 한번 센 경험을 한 나는 그때부터 휴지를 보면 사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는데 휴지가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대체 휴지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공장이 문을 닫았나?


귀하디 귀한 한겹짜리 재활용 쿠바 휴지-한 봉지에 4롤



[휴지에 관한 에피소드 2]


작년 9월에 멕시코에서 만난 친한 동생 커플이 쿠바로 여행을 하러 왔었다. 쿠바에 장기로 있었던 그들이 10월의 어느 날 트리니다드(아바나에서 차로 5시간 걸림)에 간다길래 마침 나도 볼 일도 있고 해서 그들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되었다. 3박 4일을 있었는데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그곳은 마을이 작아서 웬만한 데는 다 걸어서 다니는데 아바나에서 동쪽 아래에 위치한 10월의 트리니다드는 아바나보다 훨씬 더 더웠다. 오후가 되자 더위가 절정에 달했고 우리는 가게에서 물 하나만 사서 집으로 가자고 하면서 가게를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휴지가 8개나 들어 있는 처음 보는 큰 봉지가 있었고 나는 그걸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며 재빨리 생각을 했다.


살까 말까?


1초간 생각한 후 나는 그 휴지 봉지를 들고 계산대에 섰다. 계산을 한 후 그 봉지를 가슴팍에 안고 신이 나서 숙소로 가는 모습에 동생들은 무척이나 놀래 했다. 휴지를 보고 저렇게나 신나 하다니! 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휴지만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바나까지 그 휴지를 잘 모셔왔다.


그때 그 휴지를 안 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바나에서는 계속해서 휴지가 귀했고 그 휴지는 아바나에서 파는 것보다 퀄리티도 더 좋은 흰색이었고 같은 한 겹이어도 길어서 좀 더 오래 쓸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지에 관한 에피소드 3]


올 2월에 내 브런치 스승이자 3월에 ‘조지아(대체 조지아에는 뭐가 있는데요?)’ 책을 출간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권호영 작가(이하 ‘에린’)와 그녀의 단짝이 쿠바로 여행을 왔었다.


여행서적 베스트셀러가 된 권호영 작가의 첫 작품


센스 만점인 그녀는 나의 SNS에 쿠바에 휴지가 귀하다고 쓴 것을 보고는 트렁크 한 면에 세 겹짜리 향기 나는 두루마리 휴지 30개짜리를 가득 넣어 가지고 왔다. 그뿐만 아니라 쿠바에 오면서 맡겨 놓았던 내 물건들, 특히 내 최애 부츠와 초코파*, 진짬*, 떡볶이, 맛김, 전복죽, 비빔소스, 소주도 종류별로 해서 3병, 엄마가 보내신 물건들이랑 친한 언니와 동생이 보낸 것까지 이것저것 아주 꼼꼼하게 잘 챙겨서 왔다. 그리고 우주 최강 감성을 지닌 그녀답게 각 물건마다 어여쁜 감동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렁크 한면을 꽉 채운 세겹에 향기까지 나는 휴지와 이것저것
우주 최강 감성의 그녀가 하나하나 직접 쓴 감동 노트(이 외에도 많음)
마음뿐만 아니라 얼굴도 무척 이쁜 에린이와 나 그리고 에린이가 가져온 내 최애 부츠를 신고 한껏 멋을 낸 나님


그녀가 주고 간 세 겹의 향기가 나는 두루마리 휴지는 이 곳 사람들에게는 신세계이다. 휴지 몇 개를 시댁에 보내었고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는 처음 본 한국산 휴지에 무척 감탄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길이도 무척 길어 쿠바 한 겹 휴지에 비해서 오래 사용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크나 큰 장점이었다.


나는 요즈음 에린이가 준 이 휴지를 쓰고 있다. 원래도 휴지 구하기가 힘든데 요즈음은 코로나로 휴지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고 한 사람당 한 봉지만 살 수가 있다. 그러니 에린이의 두루마리 휴지는 나에게는 휴지가 아닌 금지이다. 그런데 많다고 생각했던 휴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 같아 어느 날부터 기록을 해 보니 5일마다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몇 개 안 남았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릴 때 아빠가 하신 말씀이 문득 떠 올랐다.


절약정신이 강하셨던 아빠는 휴지를 쓸 때 네 칸이면 충분하다며 네 칸 이상 사용을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 생각이 떠오른 그때부터 나는 아빠 말씀대로 한 번에 네 칸씩 끊어서 사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열흘 동안 사용할 수가 있었다. 사용 기간이 무려 두 배로 늘어난 것이었다. 갑자기 어릴 적 나에게 이런 고된(?) 훈련을 시켜 주셨던 아빠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주방세제이다. 마지막 퐁퐁이라 이게 떨어지기 전에 새 거를 사야 하는데 남편 말로는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했다. 이 곳 사람들은 주방세제가 없어서 가루 빨래 비누를 풀어서 설거지를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거는 못하겠다. 60일을 넘게 집콕인 내가 만약에 마스크를 끼고 외출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퐁퐁 때문이지 않을까?


이렇게 쿠바에 생필품이 부족하다 보니 나는 물자가 풍족한 이웃 나라 멕시코에 비행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편부터는 장 보러 국경을 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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