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Jun 19.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8화-

안녕, 지훈아!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건너편 침대에 하얗고 순박한 얼굴의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민박집 도미토리에는 이층 침대 2개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언제 왔어요?


자본주의에 콧바람을 쐬러 온 오지랖 쿠바 언니는 새로운 인물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지훈이라고 했다. 나보다 하루 전에 멕시코에 도착한 지훈이는 이제 20대 초반이었고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우왕, 첫 해외여행을 멕시코로 왔다니 대단해요. 그것도 혼자서!


나는 ‘기분이 어떠냐, 얼마나 있을 거냐...’라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런 나에게 쑥스러운 미소로 약간은 쭈뼛쭈뼛하며 대답을 하는 지훈이를 보며 ‘아직 어린애구나!’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계속 얘기를 해 보니 이 어린 친구는 자기 생각도 뚜렷했고 철이 든 똑똑한 아이였다.


지훈이는 요리사라고 했다. 요리 전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그런 학교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곳에서 성적이 매우 뛰어나 중국 연수도 공짜로 다녀왔다. 딱히 대학을 갈 필요성을 못 느껴 바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한 경력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고 하는 지훈이. 마지막에 일한 곳이 멕시코 음식점이었는데 어떠한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훈이는 멕시코 음식이 좋았는지 멕시코 음식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과감히 홀로 멕시코로 온 거였다. 여행 기간은 2주였다.


나는 그런 지훈이가 마음에 들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그걸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찾아 머나먼 길을 왔다는 게 참 멋져 보였다. 그런데 그런 이유를 떠나서 지훈이는 착하고 마음이 고운 아이였다. 요즘 아이들(흔히 매스컴에서 얘기하는) 답지 않게 경우도 아주 발라서 함께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고 좋았다.


지훈이도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쿠바에서 뿅 하고 나타난 수다쟁이 (이모 같은) 누나가 자신을 잘 챙겨주는 게 나쁘지 않았는지 민박집에 있는 내내 누나, 누나 하면서 나를 꽤나 잘 따랐다.


지훈이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거실로 갔다. 한식 조식을 보자 나는 다시 삼 개월 전으로 돌아갔다.


그래, 이 맛이야! 내가 이 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요?


그러면서 사장님이 해 준 맛난 조식을 가득 담아와서 반찬이랑 싹싹 긁어먹었다. 지훈이는 그런 나를 보면서 옆에서 씨익 웃고 있었고 아무 말없이 자신의 밥과 국을 다 먹고는 설거지를 하러 갔다. 나는 밥을 다 먹고 예전처럼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식탁에 앉아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 이번에는 9박 10일이라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에 쇼핑은 천천히 하기로 했다. 어느새 지훈이는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나의 얘기가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었다.


이번에 갈 곳은 한인마트, 월마트, 수뻬라마(동네 슈퍼마켓), 리베르뿔(백화점), 오피스디포(문구점) 그리고 내 사랑 미니소... 대략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코스트코는 멤버십 카드가 필요하니 사장님이 가면 나도 따라갈 예정이었다. 물론 중간에 새로운 곳이 추가가 되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가방도 하나 더 가져왔으니 쇼핑을 제대로(?) 해 보리라는 대단한 각오도 함께 말이다. 






아침을 먹고 난 사장님이 “아, 맞다. 오늘 목요일이죠? 목요일에는 집 근처에 목요 시장이 있어요. 일요시장보다는 크지는 않은데 먹을 걸 많이 팔아서 점심은 거기서 먹으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했다.


와우, 정말요? 일요 시장도 있더니 목요 시장도 있어요? 그럼 당연히 가야지!


시장이랑 시장은 다 섭렵해보고 싶었다.


지훈아, 너도 같이 갈래?


네, 저도 갈래요.


요리사답게 지훈이도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던 나는 배가 하나도 꺼지지 않아(꺼질 틈이 없지) 지훈이에게 조금 쉬다가 가자고 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여자 동생 한 명이 민박집에 왔다. 밴쿠버에서 왔다는 동생은 피곤했는지 잠시 쉰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우리 셋은 목요 시장에 함께 갔다.


목요 시장은 일요 시장보다 숙소에서 더 가까웠다. 품목은 일요 시장과 비슷했는데 규모는 훨씬 작았다. 평일이라 손님들도 적었다. 일요시장이 이미 내 쇼핑 리스트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어서 목요 시장에서는 딱히 무언가를 사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천막을 친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중에서 손님들이 적당히 있는 곳에 가서 우리 셋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서빙하는 아저씨가 오셔서 테이블을 한번 쓰윽 닦아 주셨다. 그리고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셋 중에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여기는 뭐가 유명해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세트 메뉴를 가리키며 저게 괜찮을 거라고 했다. 타코에 들어갈 고기 부위는 고르면 되는 거라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 셋은 타코 세 조각에 음료 한 병이 포함된 세트 메뉴를 시켰고 부위는 각자가 원하는 부분으로 했다. 셋다 그리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어서 꼴랑 타코 세 개를 먹었는데 이미 배가 불렀다. 이렇게 먹었는데 한국 돈 이천 원이 안 되었다. 멕시코는 먹거리가 저렴해서 참 좋았다. 특히 길거리나 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은 확실히 가격이 저렴한 데다 맛도 더 좋았다. 아마도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 때문에 더 맛있게 여겨졌을 수도 있을 테다. 


목요시장에서 먹은 타코-멕시코에 오면 일일 일 타코를 해야 하는데 나는 한식이 더 좋아 그러지 못했다


타코를 보니 예전에 내가 멕시코에 살았을 때, 길거리 포장마차 그 자리에서 타코 50개를 먹었던 남자아이(청년)가 생각이 났다. 내 손바닥만큼 작은 타코였지만 50개는 정말 대단한 거였다. 그 당시 나는 5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는데 말이다. 남자 둘이서 타코 먹기 내기를 했고(별 걸 다한다) 50개는 그때 승자의 기록이었다.






타코를 먹고 우리 셋은 천천히 걸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 사장님이 구경 잘했냐고 물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쿠바에서 삼 개월 만에 린다 언니가 오셔서 오늘 저녁에 삼겹살 파티를 할 건데 같이 먹을 사람!


동생들 둘 다 함께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나를 위한 파티니 나는 당연히 참석이었다. 곧이어 사장님이 삼겹살을 사러 동네 슈퍼마켓인 수뻬라마(superama)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가야지!”라고 말하자 지훈이도 같이 가겠다고 하며 따라나섰다.


아, 슈퍼마켓 쇼핑은 왜 이렇게 할 때마다 좋은 지 모르겠다. 각종 알록달록 과일과 야채들 그리고 종류도 아주 다양한 치즈를 보니 또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식탐도 없는데 말이다.(호호호)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혼자서 다른 나라 여행을 할 때에도 딱히 살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네 슈퍼마켓은 꼭 가서 구경을 하곤 했다. 슈퍼마켓마다 파는 물건들이 다 달라서 구경하는 그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파는 물건들을 살펴보면 그 나라 국민들의 취향이나 정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물건을 고르고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사장님이랑 지훈이가 고기랑 야채를 살 동안 나는 혼자서 후다닥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혹시 뭐 새로운 게 있나?’ 하고 전체적으로 눈팅을 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쇼핑은 혼자 와서 조용히 하는 게 좋았다. 그래야 집중을 해서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눈팅을 마친 나는 주류 코너에서 레드 와인 두 병을 골랐다. 사장님이 고기와 야채를 준비하니 나는 술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삼겹살은 레드와인이 좋을 것 같았다.


민박집 숙박비에 저녁 식사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사장님이 따로 재료를 준비해서 같이 저녁을 먹고 나면 총비용에서 1/N씩 각출하는 시스템이었다. 꼬망스네 사장님들은 자신들의 인건비는 감안도 하지 않고 식료품비만 정확히 나누어서 저녁식사를 한 손님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아무리 푸짐하게 밥을 먹어도 돈이 얼마 나오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꽤나 해 본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게 정당한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이것도 엄연히 비즈니스기 때문에 인건비도 계산해서 받는 게 정상이다) 한인 민박의 특성상 대부분 배낭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고 그들에게는 한 푼 두 푼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걸 배려해서 사장님은 그냥 식료품값만 청구를 한다고 했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저렇게 하면 고생만 하고 돈은 벌기가 힘들 텐데 하면서.


그곳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난 후 지불방식을 달리했다. 다른 손님들처럼 밥 먹을 때마다 내는 게 아니라 마치 외상 장부에 매일 먹은 걸 기록해 놓았다가 월말에 한꺼번에 계산을 하는 것처럼, 사장님이 내가 숙박을 하는 동안 조식 외에 따로 먹는 걸 기록을 해 놓고 떠나는 마지막 날에 총 얼마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장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장님이 워낙 꼼꼼하고 정직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나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철저하다) 물론 내가 술을 사거나 고기를 사면 그 날 식사값은 따로 외상 장부에 기재하지 않았다.


말이 별로 없는 지훈이는 이번에도 사장님이 고기랑 야채 사는 걸 옆에서 조용히 구경하고 있더니 계산을 하고 카트에 있는 물건들을 에코백에 넣은 다음 들고나가려고 하자, “사장님, 제가 들게요. 이리 주세요.” 하며 알아서 무거운 걸 척척 들었다. 내가 이러니 어째 지훈이를 안 예뻐 할 수가 있겠는가!


슈퍼마켓을 나왔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 귀염둥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봤더니 그곳은 개 주차장이었다. Dog parking!  


세상에, 별게 다 있네. 너무 신기하다. 개 주차장이라니!


얌전히 쇼핑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귀염둥이의 인증숏을 하나 찍고는 숙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멕시코에 개 공원(dog park)이 있다는 건 들어봤는데 개 주차장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멕시코 사람들의 개 사랑은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슈퍼마켓에 있는 개 주차장에서 귀염둥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자 사장님 커플이 분주히 움직였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보니 둘이서 척척 잘도 했다. 도와줄 게 없는지 물어보고는 유리 식탁에 신문지를 깔았다. 벌써 나의 음식취향을 파악한 사장님은 고기 옆에 내 사랑 아스파라거스와 버섯도 함께 준비해 놓았다. 쌈 야채는 아삭아삭하고 싱싱한 연둣빛의 로메인 상추였다.(지금 이 순간 그 식감이 무척이나 그립다) 썰어도 크기를 숨길수가 없는 큼직한 멕시코 마늘도 쏭쏭 썰어 놓은 고추와 쌈장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이건 뭐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어린 두 동생들은 술을 잘 못 마셨다. 그래서 사장님 커플과 나만 레드 와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장님이 구워주는 꿀맛 나는 삼겹살을 로메인 상추에 싸서 정신없이 먹었다. 물론 정신없이 먹으면서도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썰을 풀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다를 떨고 나면 뭔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암튼 그 자리가 재미있었다는 건 기억에 남았다. 어린 동생들은 먼저 꿈나라로 갔고 우리 셋은 좀 더 얘기하다가 또 새벽에 잠이 들었다.


쿠바댁 린다 언니를 위해 열심히 삼겹살을 굽는 (여) 사장님






다음 날 아침은 얼큰한 부대찌개로 해장을 했다. 뭔 게시를 받았는지 아님 내 맘 속에 들어와 봤는지 사장님이 내가 딱 먹고 싶었던 부대찌개를 해 놓은 것이었다. 부대찌개는 쿠바에 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는데 사장님이 말했다.


언니, 이따가 커피 선생님이랑 일행분이 돌아오실 거예요.


사장님이 커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은 커피 심사위원이라고 했다. 온두라스나 콜럼비아처럼 커피가 유명한 나라에서 커피 대회를 할 때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아서 일 년에 몇 번씩 멕시코에 오시는데(멕시코는 한국에서 중남미 다른 나라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다) 오실 때마다 꼬망스네 한인민박에 숙박을 하시는 분이셨다. 얼마 전에 꼬망스네에 오셔서 트렁크 하나를 맡겨 두시고는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다른 나라에 커피 심사를 하러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거라고 했다. 커피 심사위원이라.. 좀 멋져 보였다.


우왕, 드디어 나도 커피 선생님을 만나는 거야?


사장님에게 커피 선생님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은 터라 어떤 분인지 기대가 살짝 되었다.


커피 선생님이니 커피 향이 나는 멋진 분일까? 


이번에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에서 ‘띵똥’ 소리가 나면서 두 분의 어른 남자가 민박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커피 선생님과 일행분이었다.






이전 07화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7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