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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18.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7화-

애정표현에는 감자가 최고예요!


마지막 밤이었다. 

각자 알아서 저녁을 먹고 식탁에 모인 우리는 내가 슈퍼에서 사 온 떼낄라를 한잔 하며 마지막 수다 타임을 가졌다. 삼 개월 간 수다를 못 떨어 한이 맺혀있던 쿠바 언니(나)는 열정을 다해 마지막까지 수다를 떨었고 동생들은 그런 쿠바 언니가 아쉬운지 맞장구를 잘 춰 주었다.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정말 다음에 또 만나게 되었다.






다음 날 쿠바 행 비행기는 저녁 시간이었다. 평소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마지막 (한식) 조식을 먹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가슴 한 구석이 아린 느낌이다. 이 맛난 집밥을 내 배에 좀 더 못 채워 가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마지막 날이라 조금 서둘렀다. 아침을 먹고 커피는 건너뛰었다. 바로 설거지를 후딱 하고는 짐 정리를 대강 했다. 가방을 보니 쬐금 여유가 남는 듯했다. 그래서 사장님에게 물어보았다.


사장님, 지난번에 간 ‘미니소’ 말고 여기에서 갈 만한 또 다른 ‘미니소’는 없을까요?


사장님이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찾아보더니 한 군데를 알려 주었다. 메트로 버스를 타면 금방 가는 곳이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버스를 타 보지 않은 데다가 공항에 가는 날이라 불안해서 또 우버를 불렀다. 도로 일직선으로 쭉 달리더니 나를 건물 앞에 세워 주었다.


오전 10시가 안 되어서인지 문이 아직 안 열렸다. 안을 보니 사람들이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열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 거리를 걸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이것저것 많이 팔고 있었다. 심심해서 구경을 하다가 돼지코 몇 개(쿠바는 110 볼트를 사용한다), USB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미니 선풍기(금방 고장남)와 손전등 두 개를 샀다.(시댁 하나, 우리 하나) 정전에 얼마나 대비하려고 손전등을 볼 때마다 사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되었다. 다시 미니소로 갔다.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안에서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곧 열겠지 하면서 그 앞에서 계속 기다리기를 삼십 분, 사람들이 쪽 문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왜 문을 안 열지?’하면서도 나는 바보같이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났다. 그제야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문은 언제 열 거냐고. 그랬더니 그 날은 임시휴업이라고 했다. 이런 망….!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화내는 시간조차 아까워 침착하게 이 근처에 다른 미니소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저 위로 쭉 가다가 큰길 건너서 좌회전하면 하나 있다며 알려주었다. 그래서 알려준 길로 쭉 걸어갔다. 가다가 보니 무슨 쇼핑 몰 같은 게 눈에 또 들어왔다.


저기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살짝 들어가 보았다. 널찍한 게 잡화점(별별 걸 다 파는 곳) 같았다. 한쪽에 여성복들이 즐비했다. 점퍼 슈트를 못 사서 한이 맺혔는지 옷 파는 곳에 가서 매의 눈으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나의 레이다망에 꽃무늬 점퍼 슈트 비스무리한 옷 하나가 포착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가서 그 옷을 꺼내어 보니 그나마 본 것 중에 젤 나았다. 몸에 대어보니 대략 맞을 것 같았다. 가격표를 보니 만 이천 원(?) 정도 했다. 우왕 싸다! 일단 합격. 딱 붙는 옷도 아닌 데다 시간이 아까워서 입어보지도 않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했다. 카운터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남편 발에 좋을 듯한 신발 깔창도 함께.


가볍고 편해서 여름에 막 입기 좋은 그때 구입한 내 최애 점퍼슈트 —남편이랑 시엄마


미니소를 향해 다시 걸어가다 보니 오피스 디포가 나왔다. 오, 멕시코에도 오피스 디포가 있었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괜히 반가운 마음에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재빨리 시계를 한번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후딱 둘러만 보고 나오자며. 하지만 내가 그럴 리가! 결국 나는 그곳에서 작은 스케치북과 크레용 그리고 노트 몇 권을 샀다. 아, 남편 이어폰도 하나 샀구나.


성인이 되고 나서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생겼는지 입버릇처럼 ‘나는 나이 들어서 은퇴(?)하고 나면 그림을 그릴 거야.’라고 말하곤 했었다. 20년 전에 멕시코에 살았을 때 만났던 5개 국어를 하는 금발머리의 스위스 여자 친구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는 홀딱 반해서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스케치북을 열고는 크레용에서 원하는 색을 골라 그림을 한 번 그려 보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림이 나왔다. 그 날로 나는 스케치북을 덮었다. 그리고 크레용과 함께 공사현장에 있는 내 트렁크 안에 잘 보관해 두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그리겠지’하는 생각으로.


오피스디포를 나와서 큰길을 건너 좌회전을 했더니 코너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며 스벅의 인테리어며 다른 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도 예뻤다. 또 다른 부자 동네 중의 하나였다. 미니소는 바로 옆 옆에 있었다. 두 번째 미니소였는데 첫 번째 미니소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물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흥분하거나 망설일 틈이 없었다. 침착하게 딱 필요한 것들만 후다닥 바구니에 담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곧장 우버를 불렀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마지막으로 가방을 재 정리했다. 트렁크 23kg 그리고 핸드캐리 10kg가 공식적으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무게였다. 근데 핸드캐리는 무게가 조금 넘어도 봐줄 테니(나의 바람) 핸드캐리에 최대한 많이 담아 보았다.


드디어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침 사장님 커플도 며칠간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확인해보니 나와 공항 터미널이 달랐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우버를 불러서 같이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우버보다 디디(멕시코에서 유명한 또 다른 자동차 공유 애플리케이션-중국 거다)가 더 저렴하다고 해서 우리는 결국 디디를 타고 공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국제선인 나를 먼저 내려주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여자 사장님이랑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또 하다 보니 금세 국제선 공항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사장님이 울컥하자 나도 울컥했다. 6일 동안 우리는 정이 꽤나 많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6월에 다시 오겠다며 그때까지 잘 있으라고 하고 뜨거운 포옹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을 했다. 






지난번에 사기당한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공항 안에 들어가서 가방 랩핑 하는 곳을 가 보았다. 가격이 만원 이상 저렴했다. 랩핑 하기 전에 트렁크 무게를 확인해보니 23kg가 넘었다. 이런...역시...하면서 아저씨께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근처에 의자 있는 곳으로 갔다. 핸드캐리 배낭을 의자 위에 올려두고 트렁크를 열었다. 약간 무게 나가는 물건 몇 가지를 꺼내어 여분으로 가져간 작은 천 가방에 넣었다. 핸드캐리는 2개까지 괜찮다고 했다. 트렁크를 다시 잠그고 무게를 재어보니 23kg이었다.


아저씨, 이제 랩핑 해 주세요!


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오케이”하면서 버튼을 눌러 랩핑을 시작했다. 299페소(한국돈으로 만 팔천 원 정도, 지난번에는 499페소였음-거의 삼만 원)여서 300페소를 주고 1페소 잔돈을 받아 챙겼다. 지난번처럼 아에로 메히꼬(Aero mexico) 사무실에 가서 쿠바 비자를 산 후에 카운터에 가서 보딩패스를 받았다. 한번 경험이 있다 보니 이번에는 좀 더 빨랐다.(지난번 보다) 하지만 다른 종착지에 비해 쿠바행은 항상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된다. Kiosk 기계로 수속을 할 수가 없고 반드시 카운터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 명씩 쿠바 비자를 확인한 후에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쿠바로 보내는 수하물이 많은 쿠바인이 앞에 서 있게 되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사히 면세점에 도착을 해서 남편에게 선물할 떼낄라 한 병을 샀다.(한 때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Patrón, 홍콩에 갔더니 한 잔에 만 이천 원이 넘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던 술) 그리고 달달구리라면 사죽을 못 쓰는 남편을 위해 초콜릿도 두 봉지 샀다. 쿠바도 멕시코도 술이나 초콜릿 모두 공항이 가장 비쌌다. 하지만 비싼 공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쉽게도 가방 무게 때문이다. 


이것이 ‘빠뜨롱’이다






늦은 밤에 아바나 공항에 도착을 했고 무사히 세관을 통과해서 나오니 저기서 남편이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남편을 보니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남편이 수고했다며 카트를 밀고 택시 있는 곳까지 갔다. 밤늦은 시간이었고 원래 교통 체증도 없는 아바나여서 30분도 안 되어 집에 도착했다.


거실 불을 켰더니 활짝 핀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로맨티스트 남편이 준비한 환영 선물이었다.


자기, 환영합니다!


어머나 자기, 너무 예뻐!


그리고 방에 가서 불을 켰는데 침대 위에도 장미꽃 한 송이가 예쁘게 누워져 있었다.


“어머, 자기 뭐야? 또 있네 장미가?”


화장대를 보니 또 다른 와인 병에 어여쁜 새빨간 장미가 꽂혀 있었다.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군데에나 장미를 준비해서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 것이었다. 이건 뭐 쓰리쿠션도 아니고.(나 당구 모름)


나를 열렬히 환영해 준 장미들


나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이 잠시 후 회심의 미소로 “자기, 사랑해요!”라고 하며 봉지 하나를 들고 와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안을 보니 감자였다. 당시 감자 구하기가 힘들어서(계란은 아직 못 구했을 때였다) 우리의 애정표현을 감자로 할 때였다. 


하하하 자기, 고마워요!


하고는 답례로 면세점에서 산 떼낄라를 주었다. 남편은 너무 좋아하며 고마워했고 우리는 감자와 떼낄라 인증숏을 찍으며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그 감자로 다음 날 남편이 감자튀김을 해 주었는데 맥도널*는 명함도 못 내밀게 맛있었다. 사랑으로 무장한 감자였으니 당연한 거겠지!


사랑 고백은 감자로 해 주세요!






어느새 삼 개월이 후딱 지나 6월이 되었다.

이제 나는 삼 개월마다 쿠바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항공권도 이미 사놓았고 민박집도 예약을 해 놓았으니 예정대로 멕시코를 삼 개월 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공사가 달랐다.

멕시코 저가항공인 인터젯(Interjet)이었다. 저가항공이라고 해서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항공사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수하물 하나의 무게가 23kg 이 아니라 25kg이었다. 무려 2kg 이 더 허용이 되었다. 그리고 수하물 추가 요금이 US 50이라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국제선의 경우 에어캐나다 CND80, 러시아 항공 US200이다.)


지난번에 보니 5박 6일도 너무 짧아 이번에는 화끈하게 9박 10일로 늘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하물도 2개를 챙겼다. 쿠바에서 멕시코로 갈 때에는 최소한의 짐만 가져가는데(많이 사 와야 하니까) 원래 가져가는 트렁크 안에 빈 이민가방 하나를 접어 넣어서 한 개로 만들었다. 그래서 갈 때는 수하물 추가 요금이 없었고 올 때만 추가 요금을 내면 되었다.


인터젯은 처음 타 보는 비행기였는데 좌석이 널찍하니 좋았다. 이 항공기는 연착에 대한 악명이 높아 지난번처럼 또 연착이 될까 봐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건지 연착도 없이 제시간에 아바나 공항에서 출발했고 무사히 멕시코 공항에 시간 맞춰 잘 도착을 하였다.


인터젯 첫 경험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공항 터미널이 지난번과 달랐는데 이 터미널은 아에로 메히코 항공이 내리는 터미널에 비해서 입국 심사하는 곳의 규모도 훨씬 작았고 뭔가 복잡한 듯했다. 입국 심사대에 도착해 보니 이미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나도 사람들 뒤에 줄을 서서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멕시코 입국카드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보통 항공사에서 준비를 해서 내리기 전에 승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데 인터젯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가항공인가?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입국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입국심사를 하려면 입국카드가 반드시 필요했다. 줄이 점점 짧아지자 저 멀리 입국 심사대 근처에 입국 카드가 있는 게 보였다. 뒤에 서 계시던 외국인 아주머니께 저기 가서 입국 카드를 가져오겠으니 내 자리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고는 일행이 몇 명인지 여쭤보았다. 그리고는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입국 카드를 숫자만큼 들고 왔다. 혹시 몰라서 2장만 빼고(잘못 쓸 수 있으니) 나머지는 모두 자리를 맡아주신 뒷자리 아주머니께 다 드렸다. 아주머니는 몹시 고마워하셨다.


카드를 가져오긴 했는데 작성은 어디서 하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주머니께 다시 한번 자리를 부탁하고는 입국 심사대 근처 선반 위에 가서 카드를 작성하였다. 작성을 다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줄어 서고는 무사히 입국 심사를 마쳤다.


늦은 밤이었지만 환전소들은 여전히 열려있었고 나는 삼 개월 만에 다시 밟은 이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본주의의 열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회주의에서 살다가 자본주의에 오면 모든 게 새로워 보이는 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테다. 기본으로 100불을 환전하고는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멕시코 심카드 데이터를 충전했다. 그런 다음 우버 앱을 켰다. 작동을 했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민박집에 가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시작은 환전소


고향집에 온 듯 민박집 사장님 커플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자 사장님과 둘이서 삼 개월 동안 못다 한 수다를 떨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오랜만에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한식으로! 다시 나의 식탐에 시동을 걸리 시작했다. 부릉부릉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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