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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30.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17화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마지막 저녁은 나를 포함해서 7명이 함께 하였다. 효은이보다 멕시코에 3개월 먼저 와서 숙소를 구했고 우남대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는 윤희는 멕시코에 갓 도착해서 아무 정보도 없는 효은이에게 아낌없이 정보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효은이는 마치 계라도 탄 듯이 좋아하며 윤희가 알려주는 꿀 정보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하며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는 둘이서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졌다.


삼겹살이 어느 정도 익자 우리는 오가닉 떼낄라를 한잔 하면서 아삭아삭한 로메인 상추에 쌈을 싸서 정신없이 먹었다. 쿠바에 비해서 멕시코는 한국음식을 구하기도 먹기도 훨씬 쉽긴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삼겹살 같은 음식은 자주 먹기가 쉽지 않아 다들 이런 기회가 있으면 몸보신을 하 듯 열심히 먹어주어야 했다. 오가닉 데낄라는 음...맛이 다른 데낄라와 좀 다르긴 했다. 그런데 어떤 맛인지 말로 표현을 하기가 애매했다. 오가닉이라고 하니 괜히 좀 더 몸에 좋을 거라는(술은 다 몸에 좋지는 않지만) 생각으로 마신 것 같다.


사실 나는 오가닉 떼낄라도 좋은데 내 입에 가장 잘 맞는 떼낄라는 민박집 부엌 위쪽 선반에 한 줄로 쭈룩 진열이 되어있던(모두 빈병) 말발굽 그림이 인상적인 에라두라(Herradura, 스페인어로 ‘말발굽’)였다. 민박집 사장님의 강력 추천으로 마셔봤는데 프리미엄급의 이 떼낄라는 확실이 다른 떼낄라와 맛이 달랐다. 뭐라고 할까 에라두라만의 독특한 향이 있는데 이 향이 나는 아주 좋았다. 이 프리미엄 떼낄라는 아쉽게도 공항 면세점에서 판매를 하지 않아서 무조건 시내에서 사 가지고 가야 하는데 나는 이미 오가닉 떼낄라를 샀기 때문에 에라두라는 다음으로 미뤄 두기로 했다.


다 들 밥은 배불리 먹고 술은 적당히 마셨다. 나도 짐을 싸야 한다는 마음에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20대인 지훈이와 효은이는 알아서 들어갔고(시킨 거 아님) 30대 이상만 좀 더 얘기를 나누면서 한잔 씩을 더 했다. 그리고 윤희와 남자 동생은 우버를 불러서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사장님과 나는 아쉬움에 좀 더 얘기를 하다가 함께 뒷정리를 하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윤희는 집으로 가기 전에 나에게 리베르뿔 백화점 카드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쇼핑에 제 몫을 단단히 한 백화점 카드는 앞으로 윤희의 쇼핑을 위해서 윤희 지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녕 카드야! 이번에 몹시 고마웠어. 


방에 들어온 나는 ‘열흘도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었다. 열흘이면 충분히 여유 있게 쇼핑도 하고 놀러도 갈 수 있는 시간일 줄 알았는데 벌써 쿠바로 돌아갈 시간이라니. 남편을 보는 건 좋은데 자본주의를 좀 더 누리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 아쉬움을 인터넷을 보면서 달래어 보았다. 그렇게 뒤척이면서 아쉬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마지막 한식 조식이었다. ‘이 밥을 먹고 나면 한동안 남이 해 주는 한식을 먹기는 힘들겠지 하면서 야무지게 다 먹었다. 짐을 싸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마음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후딱 원두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었다. 쇼핑한 물건들을 전체적으로 쭈욱 살펴본 후에 어느 가방에 무엇을 어떻게 넣을지 머릿속으로 설계를 하였다. 꼼꼼하게 짐을 요령껏 싸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짐은 싸도 싸도 쉬운 적은 없었다.(아, 몇 년 전 영국 갈 때 오분만에 가방 두 개에 짐을 때려 넣은 적 빼고)


단단하고 큰 것부터 하나씩 트렁크 바닥에 깔고 깨질 만한 것들은 옷으로 둘둘둘 말아서 막 던져도 안 깨어지게 꼼꼼히 포장을 하였다. 간장이나 샴푸 같은 액체류는 사장님에게 빌린 큰 테이프로 입구를 단단히 막아서 만의 하나 터질 경우를 대비했다. 무엇보다도 가방의 무게가 아주 중요하기에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가방 두 개에 나누어 잘 배정하였다. 큰 것들과 무게 나가는 것들을 차곡차곡 넣고 난 다음 작은 소품들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서 가방에 틈이 없도록 했다.


드디어 지퍼를 올렸다. 하나씩 들어 보았다. 가방 두 개다 너무 무거웠다. 25킬로가 넘을 것 같았다. 남자 사장님도 가방을 들어보더니 “누나, 이거 둘 다 무게 초과할 거 같은데요.”라고 하며 걱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사장님이 내 핸드캐리 가방을 보더니 누나, 프라이팬은 위험물품(무기)으로 간주되어서 핸드캐리 가방에 넣으면 공항에서 뺏기니까 수하물에 넣으셔야 해요.”라고 했다. “프라이팬이 위험물품이라고?” 하면서 깜짝 놀라 다시 가방을 열었다. 수하물 가방에 들어있던 식탁보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프라이팬을 넣고 식탁보는 핸드캐리 가방에 넣었다.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프라이팬으로 사람을 때릴 수가 있어서 정말로 위험물품으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사장님 덕분에 그때 수하물 가방으로 옮겨서 쿠바로 잘 가져온 이 프라이팬은 요즈음 매일매일 나와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사장님, 너무 고마웠어요!


무게가 넘을 것은 확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게 추가 요금 낼 각오를 하고 다 가져가기로 했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지훈이가 많이 서운해했다. 나도 그랬다. 민박집에 있는 열흘 내내 지훈이와 함께 있었으니 안 서운한 게 이상한 걸 테다. 공항에서 지훈이에게 카톡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처음에 왔을 때 혼자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누나 덕분에 재미있게  잘 지냈어요. 감사해요.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만날 거라 생각해요 ㅎㅎ’라고 지훈이가 답장을 하였다. ‘녀석, 다 컸네.’ 하며 뿌듯하게 웃었다. 


지난번 6일에 이어 이번에는 열흘 동안 꼬망스네 민박에 있다 보니 거의 친동생처럼 친해져 버린 꼬망스네 사장님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지난번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은 이미 그리워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꺄르르르 효은이도 “잉, 언니, 조심히 가세요. 저 쿠바 놀러 가면 꼭 연락드릴게요!”라고 하며 아쉬워하였다.(그리고 효은이는 9월에 쿠바에 왔다.) 남자 사장님과 지훈이의 도움으로 가방을 건물 아래까지 잘 내렸고 디디 기사가 오자 모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기분이 멍했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가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인터젯 항공이어서 지난번과 터미널이 달랐다. 기사님이 트렁크에서 가방을 다 꺼내어 바닥에 놓아주고는 떠나 버렸다. ‘아, 이걸 이제 어떻게 들고 가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공항에서 일하시는 한 아저씨가 큰 카트를 잽싸게 끌고 오셔서, “아가씨,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비용을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네”라고 대답을 했고 아저씨는 내 수하물을 카트에 실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아저씨가 안 오셨으면 혼자 끙끙대며 가방을 카트에 싣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을 테다.(가방이 정말 무거웠다.)


나는 아저씨에게 수하물 가방을 랩핑해야 하니 그리고 가자고 했다. 가방 두 개를 다 랩핑 할 예정이었다. 랩핑 하는 곳에 도착을 해서 수하물 가방 두 개의 무게를 재어 보았다. 둘 다 25킬로가 넘었다. 인터젯 항공은 수하물 하나의 무게가 25킬로그램이어서 두 가방의 합계가 50킬로가 되어야 하는데 내 가방의 합은 55킬로그램이었다. 어쩐담… 하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가방 하나는 25킬로에 맞추고 하나는 30킬로에 맞추기로 했다. 랩핑 하시는 분의 얘기로 가방 무게 최대가 30킬로라고 했다. 게다가 핸드캐리 가방 두 개도 무게를 확인해 보니 12킬로가 넘었다. 핸드캐리는 최대 10킬로 까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핸드캐리 가방을 신경 쓸 시간이 아니었다. 일단 수하물 가방 2개를 옆으로 가져가서 열고는 무게 조정을 해 보았다. 이 가방에서 저 가방으로 물건들을 옮기고는 지퍼를 닫고 무게 재기를 두 번 정도 하고 나니 가방 하나는 25킬로, 다른 하나는 30킬로가 되었다. 언른 랩핑을 했다.


다시 카트에 수하물을 싣고 이번에는 비자를 구입하러 갔다. 아에로 멕시코 항공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은 인터젯 사무실에서 비자를 구입하면 되었다. 이제 탑승권을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차례였다. 특별 국가인 쿠바는 기계 탑승권 발권이 불가해서 반드시 카운터에서 비자를 확인하고 탑승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카트를 밀며 도와준 아저씨가 자신은 이제 할 일을 다 해서 가방을 두고 가실 거라며, “가방을 저기 앞 쪽에 두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여기에 두고 본인이 앞 쪽까지 옮기겠어요?”라고 물어보셨다. 공항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끌고 갈 테니 여기 두시라고 했다. 그리고 도와주신 비용이 얼마인지 여쭤보았다. 이 건 딱히 정해진 금액이 없고 팁을 주는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꺼내어 드렸더니 아저씨 얼굴이 갑자기 굳어버리셨다. 나는 그 정도 금액이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아저씨는 인사도 안 하고 쌩하니 떠나셨고(다른 손님을 찾으러) 나는 커다란 수하물 2개와 핸드캐리 가방 하나와 함께 남겨지게 되었다. 내 등에는 내용물로 꽉 찬 무거운 배낭도 하나 있었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갈 때마다 나는 낑낑대며 가방들을 앞으로 밀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내 담당은 중년의 남자분이셨다. “올라(Hola,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 하면서 여권을 주었다. 그가 내 여권을 확인하는 데 내가 말을 했다.


저는 수하물이 두 개여서 가방 하나를 추가할 거예요. 그런데 가방 하나는 25킬로인데 다른 하나는 30킬로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이실 짓고를 해 버렸다. 그러자 그가 알겠다며 신용카드를 달라고 했다. 나는 수하물 추가 요금이 얼마인지 그리고 무게 추가 요금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카드를 주었다. 인터젯 항공의 수하물 추가 요금이 미화 50 불인 건 알고 있었지만 25킬로 이상일 때 무게 별 추가 요금은 얼마인지 몰랐었다. 그는 카드를 받고 씩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주었다. “무게 별 추가 요금은 얼마예요?”라고 내가 살짝 물어보았더니, “그건 따로 계산 안 했어요” 하며 다시 씨익 웃었다. 내가 먼저 선방을 날려서인지 그는 가방 하나 추가 요금인 미화 50불만 청구를 했었다. ‘어머, 이게 웬 떡이야!’ 하며 날아갈 듯 기뻤다.(보통 무게 별 추가 요금이 가방 추가 요금보다 더 높다.)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나의 이런 열띤 반응이 그도 좋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인터넷 항공은 처음 타는 거라 혹시나 해서 핸드캐리 무게도 확인을 해 보았다. 12.7킬로였다. 그래서 그에게 “핸드캐리는 10킬로까지만 되는데 이거 들고 탈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이 정도는 괜찮아요.” 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제야 그동안 쌓여 있었던 모든 긴장이 확 다 풀렸다. 여권과 탑승권을 주면서 어느 게이트에서 탑승을 하면 된다고 친절히 설명해 준 그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스페인어로’ 대단히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탑승 수속을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하도 가벼워서 날아갈 뻔했다. 호호호


랩핑한 수하물과 핸드캐리 가방(배낭은 등짝에 있어서 못 찍음)


갑자기 인터넷 항공이 좋아졌다. 저가 항공이라는데 멕시코 국적기인 아에로 멕시코 항공보다 비행기도 더 좋고 자리도 더 넓었다. 게다가 가방 무게 오버 차지도 따로 청구하지 않고 핸드캐리도 2킬로 정도는 괜찮다고 하니, ‘이제부터 나 인터젯 항공 팬 클럽에 가입할래!’라고 온 세상에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입이 귀에 걸린 채 나는 룰루랄라 하면서 출국심사를 받았고 면세점 안까지 무사히 잘 입성을 하였다. 면세점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하지만 나는 이미 짐이 많아서 면세점 쇼핑은 패스했다. 배낭 무게도 만만찮아 어깨가 아파서 가방을 내려놓고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곧바로 게이트로 걸어갔다.






게이트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쿠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두고 핸드캐리 가방 물건을 한번 확인한 다음 핸드폰을 꺼내어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핸드캐리는 가방 2개까지 가능하며 가방 무게의 합이 10킬로입니다. 가방이 두 개인 분은 앞에 나와서 가방 무게를 확인하기 바랍니다. 만약 총무게가 10킬로가 넘을 경우 탑승을 못 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가방 무게를 확인하기 바랍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핸드캐리 가방 무게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니? 20년을 넘게 비행기를 타면서 한 번도 못 겪어본 일이었다. 탑승구 앞에 저울을 두고 가방 무게를 확인하는 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왜 오늘이야? 아까 분명히 인터젯 카운터 아저씨는 12킬로 정도는 괜찮다고 했는데 그래서 아무 걱정을 안 하고 있었는데… 큰일 났다. 갑자기 그렇게 고마웠던 아저씨가 야속해지지 시작했다.


배낭을 다시 매고 손에 가방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울 위에 가방 2개를 모두 올렸다. 12.7킬로였다. 직원이 2.7킬로를 빼라고 하였다. 아니면 비행기를 못 탈거라고 했다. 


2.7킬로를 어떻게 빼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무게 나가는 것 중에 버릴 게 있는지 보았다.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소중한 것들이었고 쿠바에서 다 필요한 것들이었다. 절대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중에 가방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혹시 핸드캐리 가방이 하나인지 물어보았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물어보았다. 역시나 쿠바인들은 모두 다 가방이 2개였고 무게의 여유가 단 일도 없었다. 다들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아, 큰일이다. 아무도 없네!’ 내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사람들은 나를 그저 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 들 지 코가 석자인데 누구를 도와주겠냐고. 충분히 이해한다 이해해.

 

내 옆에 보니 6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그래서 아저씨께 혹시 가방이 몇 개냐고 여쭤 봤는데 가방이 없다고 하셨다. ‘뭣이고라?’ 그런데 그분은 쿠바행이 아니라 스페인행이라고 하셨다. 좋았다가 힘이 쫙 빠져 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쩌지’ 하는 나에게 그 옆에 앉아 계시던 그 아저씨의 부인인듯한 아주머니가 와 보라고 하셨다.


가방 무게가 얼마야? 얼마를 빼야 하는 거야?

2.7킬로를 빼야 해요.

네 가방 좀 보여줘 봐.


그녀는 먼저 가방 안에 있던 식탁보를 꺼내시더니 포장을 벗기셨다. 그리고는 그 큰 식탁보를 목에 걸치라고 하셨다. 모자 2개도 꺼내시더니 머리에 다 쓰라고 하셨다. 더워서 가방에 넣어 두었던 검정색 카디건을 보시더니 입으라고 하시더니 카디건 주머니에 작은 물건들을 마구 담으셨다. “이런 박스들이 무게를 꽤나 차지한단 말이지.”라고 하시며 박스들을 다 꺼내어 버리시고 내용물만 가방에 담으셨다. 그 아주머니는 손이 아주 빠르셨다. 현란한 아주머니의 솜씨에 나는 홀린 듯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었다. 이 아주머니 보통이 아니었다. 완전 선수였다.


더워 죽겠는데 기다란 검정색 카디건을 입고는 그 위에 배낭을 메었다. 식탁보는 목도리처럼 걸치고 모자 2개를 겹쳐 썼다. 옷에 있은 모든 주머니에는 무언가가 채워져서 불룩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조심스레 웃기 시작했고 나도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웃겨서 하하하 소리 내면서 마구 웃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각설이의 모습이었다. 아주머니가 “이 정도면 됐을 거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렸다. 내 웃음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내가 웃으니 사람들도 편하게 웃었다. 마침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나는 천천히 나가서 맨 끝자락에 줄을 섰다. 각설이 몰골까지 하며 무게를 줄이긴 했지만 혹시라도 10킬로가 넘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내 바로 뒤에 계시는 아주머니를 보니 가방이 하나였다. 중간 사이즈의 핸드백이어서 무게도 얼마 나가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내 가방 하나만 들고 탑승해 주실 수 있겠냐고 여쭤보았다. 멕시코인인 그녀는 알겠다고 하였다. 나는 준비해 둔 다른 에코백에 물건 몇 개를 담아서 그녀에게 주었다. 내 차례가 되어 탑승권을 확인하길래 조마조마하며 가방 무게를 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보며 웃더니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만세!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비행기 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뒷자리 아주머니로부터 내 가방을 받았고 가방을 들어준 그녀에게 감사의 의미로 초콜릿 한 봉지를 드렸다. 아주머니는 초콜릿을 보시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그제야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카디건을 벗고 식탁보며 모자며 모두 다 벗어서 가방에 다시 넣었다. 내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비행기를 타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힘들게 쇼핑한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다 쿠바로 가져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비행기는 쿠바에 무사히 도착을 하였고 나는 쿠바에서도 세관에 걸리지 않고 랩핑 한 가방을 그대로 잘 가지고 나왔다. 6월의 쿠바는 찌는 듯한 더위였다. 열흘 만에 만난 남편은 나를 꼭 안아 주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남편은 얘기를 듣더니 너무 고생 많았다며 토닥토닥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풀었더니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물건의 총무게는 67.7킬로였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결혼 전 나는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걸 질색해서 가방도 최대한 가볍게 들고 다녔고 무거운 게 있으면 바로 택시를 탔었더랬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해서 쿠바에 살다 보니 혼자서 거의 70킬로가 되는 가방을 가지고 온 것이다. 환경이 바뀌니 사람도 이렇게 변한다. 쿠바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소브레비비르(Sobrevivir) 이다. 생존하다.


그렇다. 내가 한 이 모든 쇼핑은 쿠바에서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생존을 위한 것들이 바닥을 보일 때 즈음에 다시 비행기를 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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