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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28.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16화

마지막 쇼핑은 백화점이 되겠습니다


며칠 전에 민박집에서 어떤 팸플릿을 하나 봤는데 멕시코 시티에서 좀 떨어진(차로 가면 5시간) 곳에 있는 온천을 소개 해 놓은 것이었다.


예전에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우나에 가서 피로도 풀 겸 아주머니에게 때를 밀고 마사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한 번은 때를 미는 아주머니께서 깔깔한 때 타올로 얇은 내 피부에 비누칠도 많이 하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 버리셨는지 피부가 허옇게 다 일어나 버렸다.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그다음부터 대중목욕탕이나 사우나에 가는 것을 끊어 버렸다. 대신 집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반신욕을 한다거나 가끔 물이 좋은 온천에 가서 몸을 담그곤 했었다.


그런데 (물이 귀한 섬나라인) 쿠바에 온 이래로 반신욕은커녕 온천을 못 갔더니 온천에 대한 그리움이 늘 마음 한켠에 있었더랬다. 쿠바에도 아바나 서쪽에 있는 Pinar del Rio(삐나르 델 리오)라는 주에 가면 자연 온천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직접 가 본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가보지를 못했다.


사진으로는 얼핏 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온천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2007년에 내가 태국에서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할 때 북쪽에 있는 예술가 마을인 파이(Pai)에서 갔던 산속에 뜨거운 물이 흐르는 그런 곳일 거라는 예측을 해 보았다. 그때 뜨거운 물에 삼겹살도 익혀 먹었었는데. 그런데 쿠바 온천은 물이 아주 뜨겁지는 않고 따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가 봐야 이 궁금증이 풀릴 것 같다.


그런데 멕시코에 이렇게 멋진 온천이 있다니! 사장님 말로는 우버 택시를 타면 당일 치기도 가능은 하지만 왕복 10시간이 되는 거리를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힘이 들 수도 있으니 1박을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캠핑도 할 수도 있고 호텔이 있어 숙박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팸플릿을 보니 물 색깔도 예쁘고 리조트처럼 아주 잘해 놓은 것 같아서 지훈이에게도 팸플릿을 보여주었다.


지훈아, 이거 봤어? 멕시코에 이렇게 멋진 온천이 다 있네. 여기 정말 끝내준다!
우와, 정말 좋네요. 만약에 누나가 가시면 저도 갈래요.
그래? 그럼 윤희한테도 물어볼까?


그래서 윤희한테 연락해서 말해 보았다.


언니, 나도 거기 얘기만 듣고 아직 못 가 봤는데 가 보고 싶더라고. 언니 언제 갈려고?


가능한 날짜를 봤더니 하필이면 그 날 윤희 학교에서 시험이 있다고 했다. 지훈이랑 둘이서 갈까 했는데 입술에 수포도 올라오고 몸 상태도 안 좋아서 도저히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힘들었다. 지훈이는 다시 언제 한국에서 머나먼 나라 멕시코를 올 지 몰라서 꽤나 가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말만 꺼내고 결국 못 가게 되어 괜히 또 미안해졌다.


이번에는 열흘 동안 있는 거라 일박 이일 나들이를 다녀왔어도 좋았을 텐데 벌써 가야 할 시간이라니...라는 생각을 하며 아침부터 그 온천 팸플릿을 다시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결국 나는 11월에 멕시코에 4번째 쇼핑을 왔을 때 그곳을 가게 되었다. 무려 9명의 동반자들과 함께. 정말 엄청난 곳이었다. 


대충 이런 곳이다(11월에 찍은 사진)


다음날이면 나는 멕시코를 떠나 쿠바로 갈 것이고 이제는 3개월마다 멕시코에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다음이 언제 될지 몰라 더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할 일 목록]을 보니 인터넷으로 해야 할 일은 노트북에 보안 프로그램 다운로드하는 게 남아있었고(지훈이의 도움으로 완료) 쇼핑을 보니 식탁보가 남아있었다. 일요시장을 갔을 때에도 월마트에서도 산타페 쇼핑몰에서도 식탁보를 찾아보았는데 내가 원하는 천으로 된 예쁜 식탁보 같은 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지를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백화점을 가기로 했다. 3월에 숙소에서 갔던 리베르뿔 백화점은 우버를 타면 금방 가는 곳이라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잔하고는 딩굴딩굴하다가 대충 짐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방바닥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많은 짐들을 보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백화점 다녀와서 한 번에 정리하는 게 낫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잠시 동네 슈퍼마켓 수뻬라마(Superama)를 혼자서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혹시 빠진 게 있나 점검도 하고 할머니 약 3개 중 1개가 이 곳에 있는지도 확인을 할 겸 간 것이었다.


약국은 슈퍼마켓 입구 쪽에 있어서 먼저 약국부터 방문을 했다. 약이 있는지 물어보니 다행히도 있었다. 그리고 이 약국은 다른 약국에 비해서 약값이 조금 더 저렴했다. 모든 약은 아니었지만 할인이 되는 약이 다른 곳보다 많았었다. 간혹 2개를 사면 1개를 끼워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 약도 완벽하게 다 구매를 하였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슈퍼를 돌면서 오아하까 치즈 작은걸 하나 샀다. 웬만한 걸 이미 월마트에서 다 사 버려서 살 것도 별로 없었다.(월마트에서 아주 휩쓸었네. 이렇게 살 게 없기도 쉽지 않은데) 살 게 별로 없자 또 괜히 아쉬웠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고 잠시 쉬다가 지훈이와 효은이에게 같이 백화점에 갈 건지 물어보았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동생들도 백화점에 함께 가겠다고 했다. 우버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일전에 사장님이 알려줘서 다운을 받아 놓았던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생각이 났다.






멕시코에서는 대표적인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이 2개가 있는데 우버(Uber)와  디디(DiDi)이다. 버는 전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하고 나도 외국 여행을 하면 늘 사용을 하는 거라 친숙했는데 디디는 멕시코에서 처음 본 것이었다.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디디를 한번 사용해 보려고 숙소에서 백화점까지의 요금을 확인해보니 처음으로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할인이 적용이 되어 백화점까지의 거리는 거의 무료였다. 나는 거의 무료인 것에 현혹이 되어 디디를 불렀다. 그리고는 두 동생들과 오후 늦게 백화점으로 향했다.


리베르뿔 백화점은 멕시코 시티 여기저기에 위치해 있는데 숙소에서 가까운 이 지점은 두 번째 방문이라 괜히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구가 있는 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일단 나는 목표인 식탁보를 찾기로 했다. 먼저 전체를 둘러보고는 일하시는 분에게 식탁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종업원인 멕시코 아주머니께서 역시나 아주 친절하게 나를 식탁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보여주시며 비교 설명을 해 주셨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예쁘다고 하며 보여주시는 대부분의 식탁보는 꽃무늬가 있거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올드한 스타일이어서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일단 아주머니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좀 더 둘러보겠다고 했다. 백화점에 있는 식탁보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를 사도 제대로 된 걸 사야 겠다는 마음에 신중히 골라야 했다. 이 식탁보는 새 집에 식탁을 사면 깔 예정이라 최대한 내 마음에 쏙 드는 멋진 것으로 사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서 동생들에게는 다른 데 가서 가구 구경을 하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나는 식탁보에 집중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일하는 분께서 내가 못 본 식탁보 몇 가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중에 찐한 청색의 리넨 소재의 식탁보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눈에 홀딱 빠진 게 아니어서 이것저것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식탁보 근처에는 각종 식탁 매트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맑은 빨강과 맑은 연두색의 두 매트가 내 눈을 사로잡아 버렸다. 다른 매트처럼 사각이 아니라 물결무늬 원형 모양의 매쉬로 된 매트였다. 그래서 그 둘을 가져와서 진한 청색의 식탁보 위에 놓으니 색의 대비가 완벽했다. 드디어 식탁보가 결정이 났고 덕분에 내 맘에 쏙 드는 매트까지 사게 되었다.


내 맘에 쏙 든 식탁 매트-접시는 산타페 몰에서 구매한 것-남편 작품


목표가 달성되자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것을 구경하러 갔다. 역시나 내 발걸음은 주방용품 코너로 향했고 그중에서도 프라이팬들이 쭈욱 진열된 곳에서 멈춰 섰다. 한국에서 가져온 테팔 프라이팬을 하도 많이 썼더니 코팅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어서 산타페 쇼핑몰에서도 프라이팬을 하나 살까 하면서 살펴보다가 결국 사지 않았었다. 그런데 언제 다시 멕시코에 올 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 사이에 프라이팬에 문제가 생기면 쿠바에서 괜찮은 프라이팬 사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하나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살 거면 오래 사용이 가능한 좋은 걸 사야겠다는 마음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살펴보았다.


맘 같아서는 무쇠 팬을 사고 싶었지만 그걸 사게 되면 지금까지 산 물건 중 몇 개를 놓고 가야 해서(아주 무겁다) 결국 이것저것 비교해 보다가 사각으로 된 이태리 브랜드의 가벼운 프라이팬으로 결정을 했다. 큰 프라이팬 옆에 아주 앙증맞은 계란 프라이용 프라이팬이 있길래 그것도 하나 샀다. 떼팔(T-fal) 이 아닌 진짜 테팔이었다. 


예쁜 접시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물론 대부분 유리 제품들이라 두 눈에만 실컷 담았다. 월마트에서 플라스틱과 쇠로 된 접시와 밥그릇도 여러 개를 샀기 때문에(지금 잘 사용하고 있다.)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체 월마트에서 얼마나 산 거야?) 대신 아주 예쁜 행주 세트와 물건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컬러의 집게 같은 소품들을 종류별로 하나씩 골라서 바구니에 넣었다.(이것도 아주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컬러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나는 컬러풀한 주방 소품들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며 모두 다 바구니에 담고 싶은 욕심이 마구 솟아났지만 그때마다 이게 꼭 필요한 지 세 번 이상을 생각하고 세 번 다 대답이 예스가 나오면 그제야 바구니에 담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벌써 다 샀겠지만 쿠바에는 보관할 공간도 없고 이사도 가야 하는 데 짐이 너무 많아지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엄청난 자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주방용품 코너에서는 요리사인 지훈이도 물건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역시 직업정신은 속일 수가 없지. 아직 살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효은이는 “언니, 이거 너무 예뻐요.” 하면서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그냥 다 예뻤다.


눈요기를 실컷 하고는 프라이팬과 주방 소품을 계산하러 카운터로 갔다. 계산을 하시는 분이 백화점 카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12월에 처음 리베르뿔 백화점에 왔을 때 한 친절한 아저씨의 권유로 카드를 만들었고 이번에 멕시코에 올 때 카드를 지갑에 챙겨 왔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카드를 건네 드리자 확인을 하시더니 내 카드에 포인트가 만 오천 원 정도가 있다고 하셨다. 


우와, 포인트가 있다고요?

네, 이 포인트로 오늘 물건 산 걸 결제할 수가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 입은 귀에 걸려서 한참을 내려오지 않았더랬다. 12월에 백화점에서 핸디 진공청소기랑 헤어 드라이기 등을 사면서 포인트가 쌓여 있었던 것이었다. 앗싸!


덕분에 나는 예쁜 행주 세트를 공짜로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프라이팬과 다른 소품들도 모두 할인이 20~30%가 적용이 되어(무슨 할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완전 땡잡은 기분이었다. 급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월마트 가기 전에 백화점에를 먼저 왔었어야 했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쿠바에 있으면 자주 나오기가 힘드니 저렴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보다는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는 게 더 유용하기 때문이었다.(월마트에서 산 물건 중 몇 개는 시간이 지나니 녹이 슬어서 11월에 백화점에서 비슷한 걸로 다시 구매를 하였다.)


카드 포인트에 할인까지 받아서 기분이 업이 된 나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동생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늘 말이 없는 지훈이는 조용히 구경을 하고 효은이와 나는 “어머, 이건 뭔데 왜 이렇게 예쁘지?” “언니, 이것 좀 보세요. 까아악, 너무 예뻐요.”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가 소파 베드 있는 곳을 지나가는 데 갑자기 얼음처럼 멈춰서 버렸다.


새 집 거실에 저 소파 베드 하나 두면 정말 좋을 텐데. 저거 하나만 배에 실어가면 안 될까?


쿠바에서 침대, 소파 그리고 식탁을 판매하는 건 보았는데(촌스럽고 엄청 비쌈) 소파베드를 판매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소파베드가 있는 집주인들에게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면 다들 마이애미, 멕시코, 파나마, 스페인에서 사서 배로 가져왔다고 했다.


데려가고 싶었던 소파베드


아쉬운 마음을 접고 우리는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쭉 내려갔다. 지하에는 각종 디저트류를 많이 팔았는데 그중에서도 초콜릿 분수가 눈에 따악 띄었다.(대문 사진) 마시멜로를 초콜릿 분수 안에 담갔다가 뺀 다음 먹는 거였다. 나는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함께 따라와서 나의 쇼핑을 도와준 효은이와 지훈이에게 하나씩 사 주었다. 우리는 맛나 보이는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는 민박집 사장님과 함께 먹으려고 생 초콜릿을 몇 개 산 후 다시 디디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이번 쇼핑 대단원의 막은 백화점을 마지막으로 내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백화점에서 쇼핑한 물건들을 다른 물건들 옆에 두니 내 짐만 어마 무시했다. 한 숨을 쉬고는 거실로 나왔다. 사장님과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 먹고는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떠나는 나를 위해 다 함께 숙소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커플과 지훈이와 효은이 그리고 윤희와 3월에 민박집에서 윤희와 함께 있었던 다른 남자 동생도 한 명 오기로 했었다.


식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나는 방에 가서 일전에 사 두었던 유기농 떼낄라를 꺼내어 왔다. 조금 있으니 윤희가 왔고 그 후에 남자 동생이 도착을 했다. 지훈이와 효은이가 나와서 처음 만난 남자 동생과 인사를 했다. 윤희와 효은이도 초면이라 깜찍이 효은이가 나에게 한 것처럼 윤희에게도 “언니 안녕하세요!”라고 톤을 높여 생기발랄하게 인사를 했다. 둘은 숙소 찾기와 학교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던지라 할 말이 많은듯했다.


한편 식탁 저 편에서는 또 한 동안 그리워질 삼겹살이 지글지글 굽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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