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4
빼르빽도Perfecto.
완벽하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말이 불편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내 삶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 얼마나 좋은지, 난생처음으로 아침이 기다려질 정도다.
알람이 울리기 전, 일찍 눈이 떠진다. 출근이 딱히 싫지 않다. 출근길은 정신 차리기 딱 좋은 만큼,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 걸으면 된다. 일은 즐겁다. 보람도 있다. 인정도 받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다. 다들 유능하며 책임감 있다. 개그 코드도 나랑 비슷해서, 일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즐겁다.
일도 적당히 분주하다. 할 일들에 정신을 쏟고 있다 보면 해는 뉘엿뉘엿 지고, 퇴근시간은 문뜩 온다. 항상 저녁은 미리 만들어둔 카레나 짜장. 저녁을 먹고, 집 근처를 가볍게 뛴다. 적당히 땀이 흐를 때쯤 돌아와 찬물로 씻는다. 그리고 에어컨 아래, 유튜브를 보며 제로 탄산을 마신다. 그러다 보면 벌써 내일로 갈 시간이다.
주말이 고프지 않다. 도리어 주말이 두렵다. 할 일이 딱딱 있는 삶, 적당한 텐션 속에서 지내다가 주말이 오면 모두 풀어진다. 아침에 일찍 눈은 떠지지만 할 일이 없다. 할 것이 없다. 그냥 습관적으로 씻고 나와 가볍게 출근길 따라 걷는다. 멍하게 토요일 아침 걸으며 고민한다. 오늘은 뭘 하지.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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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늘 주말은 느리게 간다. 무엇을 하든 재미가 없다. 게임도 한두 판이면 질린다. 아니하기도 전에 질린다. 스팀 세일 때 산 문명 6은 한판도 제대로 못하고 내 컴퓨터에서 지워졌다. 광활한 유튜브조차 질린다. 구글 인공지능 선생님은 내가 흥미로워할 영상들을 기가 막히게 추천해준다. 하지만 왠지 끌리지 않는다. 무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굴린다. 내 엄지가 도착하는 영상이 가끔은 있지만 1,2분도 못 보곤 끈다.
할 것이 없다. 누워서 멍하게 있는다. 시험기간일 때, 힘들고 지쳤을 때는 이렇게 멍하게만 있어도 즐겁고 시간이 잘 흘렀는데. 지금은 시간이 흐르는 1분 1초를 한 알 한 알 인식한다. 무겁게 느껴진다. 그 시간의 무거움이 침대에 있는 나를 짓누른다.
삶이 평화롭다는 증거는 무료함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은 심심할 수 없다. 너무 바쁘면 삶이 고통스럽지만, 삶이 너무 평화로워도 고통스럽다. 기타 줄의 텐션이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원하는 소리를 못 내듯, 삶도 적당히 바쁘고 무료해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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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무료한 주말 덕분에 도리어 내 삶이 생각보다 더 좋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전화위복이다. 지금이 무료하고 심심하고 고통스럽기에, 평소의 내가 감사해진다. 좋다. 일 때문에 힘들어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삶도 아니고, 평생 일이 필요 없는 건물주의 막막하고 무료한 시간들도 부럽지 않다.
돌아보면 그러했다. 학교도 군대도 해외생활도 지금도. 난 항상 좋았었고, 좋고, 또 좋아질 거다. 부러울 게 없다. 다 뻬르빽도.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