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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Valerie Mar 14. 2019

#3.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적기란 사실

출산과 육아, 내 삶의 방향을 지정해주다.


[이 글은 1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019년 1월,


100일 잔치를 끝내고 나니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6개월이 되면서부터 잊고 있던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사회에 언제 복귀하지..?'


회사를 다니다 육아 휴직을 한 사람이라면 돌아가는 곳도 날짜도 정해져 있지만,

창업 실패 후 프리랜서처럼 일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사회복귀는 온전히 본인 의지에 달렸다.

거기다 남편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어다 주는데 굳이 핏덩어리를 놔두고 사회에 나갈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난 나 스스로에게 아이의 첫 생일 '돌 잔칫날'을 사회로 돌아가는 데드라인으로 정해 두었다.

내가 이제껏 가방 끈 길게 늘어놔놓고 열심히 스펙 쌓아놓은 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시간을 정해두지 않으면 평생 세상으로 돌아갈 기회를 놓치게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왔다. 거기다 얼마나 됐다고 세상에 나가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언제 돌아갈지는 정해졌으니 어디로? 란 질문에 답할 때가 됐다. 그건 6개월간 고민을 해보자란 마음으로 스타트업 관련 콘퍼런스, 박람회,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와 수업들을 참석하며 잠깐 잃었던 감각을 되찾고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 그려봤다.


그중,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패스트캠퍼스의 'VC(Venture Capitalist) Camp'였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VC란 직업은 지적 호기심이 많고 스타트업 운영 경험이 있는 내게 잘 맞아 보였다. 채용공고가 잘 나지도 않지만 직종 특성상 아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추천해 채용되는 곳이니...


'공고 없어도 이곳저곳 원서를 내볼까? 계약직 애널리스트부터 시작해볼까? 인턴을 해볼까?' 등

다양한 생각들로 가득했지만 결국 내가 찾은 답은 '창업'이었다.


'임테기의 흐릿한 두줄 사건' 다음날

난 스스로에게 이런 이야길 했었다.


'이렇게 임신하게 된 바에는 출산과 육아하면서 힘든 점을 스타트업으로 만들어 봐야겠어.'


그래서 시작된 아이디어의 시작은 임산부 대소변 클리너(만삭이 되니 화장실에서 대소변 닦는 게 불편했다. 쉽게 닦을 수 있는 클리너 장치 같은 게 있음 어떨까란 생각을 했지만 요즘 대중 화장실에도 비데가 설치돼 있기에 패스), 아기 공갈젖꼭지 휴대용 살균기(일명 쪽쪽이를 가지고 나갔다 아이가 바닥에 떨어뜨리면 대략 난감하다. 휴대용으로 공갈젖꼭지를 살균해주는 살균기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 혹시 시중에 나온 게 있나 검색해보니 한 달 전 출시된 쪼비를 보고 패스), 그다음으로는 수유실 파인더(아이와 외출 시 어디에 수유실이 있는지, 어떤 비품들이 준비돼 있는지, 아이를 씻길 싱크대, 이유식을 데필 전자레인지는 있는지 등은 너무도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수익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단 판단에 패스) 등등 중구난방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 조사하는 일을 습관처럼 하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들이 쌓이게 됐고, 어쩜 내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창업'이란 사실을 돌아 돌아 알게 됐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돌잔치 이후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늦게나마 폭발해버린 모성애가 문제였다.

100일 이후 수개월간 심려를 기울여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았고

또 몇 개월간 호흡을 맞춰보고서야 사무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2017년 4월 ~ 2019년 1월,

처음으로 삶에 공백기를 가졌다.


그 공백기는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결코 쉬기만 했던 시간들은 아니었다.

잠시 멈춰 서 정리 정돈을 했고, 그 정리가 끝나고 나니 희미했던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시간을 통해 생각지도 않게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게 됐다.


모든지 삶에서 준비되었을 때가 적기라 생각하며 살았던 내 신념이 깨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그래도 괜찮다.

준비되었다 생각하는 내 생각의 기준이 어쩌면 오류였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달콤하지 않았던 내 신혼은 아이를 낳고서야 달콤해졌으니

남들이 말하는 적기는 우리가 정해놓은 '그때'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됐다.

내 모성애도 제시간에 오지 않았던 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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