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서울 신당동에서 떡볶이 꽤나 먹었던 엄마는 하루에 버스 한 대 겨우 다니는 강원도 깡촌으로 시집을 왔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세탁기도 없이 개울에서 빨래를 했고, 부뚜막에서 요리를 하며 중학교를 다니던 시동생들을 돌봤다.
여름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겨울이면 얼음을 깨야 물을 길을 수 있었고, 아궁이 불을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주워야 했다. 고작 나이 오십이 조금 넘었던 젊은 시어머니는 제 손으로 속옷 하나 빨지 않았다고 하니, 엄마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됐을지... 짐작이 된다.
시골집 앞에는 3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하나 있다. 엄마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곳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유행가도 부르고, 찬송가도 부르며 그냥 멍-하게 있는 시간을 즐겼다는 엄마.
영화 <님은 먼곳에>를 보면 주인공 ‘순이’가 남편을 군대 보내고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유일한 낙으로 나온다. 그 모습이 마치 옛날 우리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난 겨울에 찍은 시골집 앞 느티나무. 지금쯤이면 초록잎이 무성해 싱그러움이 가득할 것이다.
내가 열 살 때인가. 엄마는 종종 뭔가를 웅얼거리셨는데, 그 내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밥 타령, 반찬 타령, 돈타령... 타령, 타령, 타령... 어후~~” 노래처럼 멜로디는 있는데, 민요 같기도 하면서 곡소리(?) 같기도 했다. 한번 들으면 이상하게도 따라 하게 되는 중독성도 있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고모 원, 투, 쓰리가 들어왔고 엄마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할머니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친정집을 찾은 고모들은 말이 많았다. 매년 생신 때마다 잡채에 갈비, 보쌈, 냉채 등 푸짐하게 상을 차리는 것은 바로 우리 엄마였는데, 생색은 고모들이 다 냈던 것이다.
“올케는 왜 맨날 표정이 저렇게 뚱해?” “누가 아니겠어? 죽상이잖아.” “아니, 다른 집 며느리들처럼 시어머니한테 좀 살갑게 굴고, 웃는 얼굴로 다니면 누가 잡아가나?” “저게 다 친정에서 못 배워서 그래. 부모가 있어야 그런 걸 배우지...”
내가 아무리 어렸다 해도, 고모들은 내 앞에서 거침없이 엄마 욕을 했다.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럴 때마다 모른 척 무시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하고, 생일상 차려 이웃들을 먹이는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악! 밥 타령! 반찬 타령! 돈타령! 그만해~~” 난 그렇게,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열 살짜리 쬐끄만 애가, 무섭디 무서운 고모들에게 소릴 지른 것이다. 나도 멍했지만, 고모들은 한 대 얻어맞은 듯 황당무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 틈에 슬며시, 방을 나와버렸다. 심장이 마치 고막 옆에서 뛰는 듯 쿵쾅거려, 작은방으로 숨어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며 밥도 먹지 않고 그냥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무슨 일 있느냐 물었지만, 나는 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뒤로 고모들은 더 이상, 최소한 내 앞에서는 엄마를 욕하지 않았다. 아!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번 하려다가, 내 눈치를 보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로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내가 좀 더 큰 아이였다면, 논리적으로 말할 줄 아는 나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본인 어머니 생신 상은 본인들이 차려주라고! 못 차리면 돈이라도 내놓으라고! 그것도 못하겠으면 최소한 설거지는 하고 가라고! 효도는 우리 엄마한테 대리시키지 말고 당신들이 하라고! 이 썩을 놈의 타령 좀 그만하게 해 달라고!”
사건 이후로도 엄마의 푸념과 하소연, ‘아이고~ 아이고~’ 하는 타령 비슷한 것들은 계속됐다. 그래도 내가 점점 자라나고 있었기에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시댁이란 탑에 갇힌 가녀린 엄마를 구해내진 못해도 호위 정도 해주는 무사처럼, 대신 발언해주는 변호인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를 지켜냈다.
이젠 나도 결혼을 해 고모들 얼굴 볼 기회가 거의 없고, 엄마 역시 명절은 대충 넘길 수 있는 연차가 쌓이셨다. 그래도 가끔 엄마는 그때의 시간들이 욱하고 올라오나 보다.
코로나로 요 몇 달 친정에 자주 갔는데,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노래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참 구슬펐다. 유행가도 부르고, 찬송가도 불러보지만 지나온 사연을 이제 예전처럼 노랫말에 무심하게 흘려보낼 수 없는지... 세월의 흔적과 고단함이 주름 깊숙이, 무겁게 남은 듯하다.